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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눈이 하얗게 내리는 날은 수덕사로 가자

2022.02.18(금) 12:39:48 | 설산 (이메일주소:ds3keb@naver.com
               	ds3keb@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수덕사 대웅전
▲ 수덕사 대웅전

지속되는 겨울 가뭄으로 산길에는 먼지가 풀풀 날리는 날의 연속이고 세상이 어떠하더라도 내 가 알게 뭐라는 듯 무심한 세월은 빠르게 흘러 설을 지낸 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월 대보름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간밤에 눈이 하얗게 내렸다. 겨울 가뭄도 해소하고 모처럼 보는 색다른 풍경이 마음을 움직여 길을 나서게 한다.
아무래도 이렇게 눈이 내리는 날 산사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 머물고 싶어 수덕사로 가는 21번 국도 위에는 하얀 눈이 내리기도 하고 또 멈추기도 한다.
반도의 서쪽 산천이 평평한 내포 들녘에 솟은 가야산 남쪽에 있는 덕숭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 아래 널찍이 자리 잡은 수덕사는 내포 땅 가야산의 이름 높은 대찰일 뿐만 아니라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절집이다.
이렇게 눈이 하얗게 내리는 날 산사를 찾는 사람이 없을 것 같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긴 하지만, 동안거 기간이니 더욱 그럴 것 같다는 내 예상은 빗나가 이런 날이 오기를 기다린 상수들이 있다.
선문에 들어서 먼저 가본 부도전의 부도들은 안내판이 없어 누구의 것이고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일일이 알 수는 없지만, 그 섬세한 돌조각에 시선이 머물고, 수덕사 대웅전의 맞배지붕을 형상화하여 지었다는 외형이 독특해 보이는 불교 전문미술관인 선 미술관은 휴관하는 날이어서 문이 닫혀있다.

수덕사 부도전▲ 수덕사 부도전

수덕사 선 미술관
▲ 수덕사 선 미술관

수덕사 선 미술관 앞 돌조각
▲ 수덕사 선 미술관 앞 돌조각

수덕사 선 미술관
▲ 수덕사 선 미술관

미술관 옆 예의 초가지붕을 벗겨내고 수리를 위해 임시 비닐이 씌워진 수덕여관이 담고 있는 애틋한 이야기가 떠올라 서성거려진다. 누
구의 삶이 되었던 사람의 몸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다 보면 가슴 저리고, 아프고 시린 이야기들이 왜 없겠는가.
살아생전 우리 어머님께서도 “내가 살아온 얘기를 책으로 엮으면 몇 권은 족히 될 것”이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었다.
그러더라도 이응로 화백이 수덕여관의 문을 열었다는 1944년부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 무대인 이 여관을 둘러싸고 등장하는 일엽 스님, 나혜석, 이응로 화백, 화백의 본부이며 수덕여관의 안주인 박귀희 여사, 일엽 스님의 아들인 일당 스님, 일엽 스님을 사랑했고 일당 스님의 일본인 아버지 오다 세이조, 이응로 화백과 파리로 건너간 제자 박인경 여사까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애잔하다.

수덕여관▲ 수덕여관

수덕여관
▲ 수덕여관

여관을 한 바퀴 돌아 우물이 있는 뒤 뜰에 오면 평평한 바위 앞면에 문자추상화가 새겨져 있다.
이응로 화백이 1968년 이른바 ‘동백림사건’으로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끌려 국내로 돌아와 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르는 동안 옥바라지를 했던 본부인 박귀희 여사가 운영하던 수덕여관에 머물면서 새긴 문자추상화로 이 여관의 안 주인은 다시 파리로 돌아간 이응로 화백이 마치 선물처럼 남기고 간 이 추상화를 보면서 2001년 돌아가신 그날 그 순간까지 이응로 화백을 미워하고 또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수덕여관 뒤뜰에 있는 이응로 화백이 새긴 문자추상화▲ 수덕여관 뒤뜰에 있는 이응로 화백이 새긴 문자추상화

수덕사는 대찰답게 대웅전까지 가려면 선문과 일주문을 지나고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야 한다.
하늘 가득 하얀 눈이 내리는 길을 따라 금강문과 사천왕문을 지나고 황하정루를 지나서 마주한 대웅전에도 온통 내리는 눈발로 눈을 제대로 뜨기조차 어려운데 이상한 것은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리는데도 눈이 쌓이지 않는다. 대웅전 지붕 위에도 대웅전 너머 소나무 가지에도…,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가 금세 다시 눈이 내리기를 반복한다.

수덕사 일주문
▲ 수덕사 일주문

수덕사 사천왕문
▲ 수덕사 사천왕문

수덕사 대웅전이 있는 너른 앞마당에서 본 풍경
▲ 수덕사 대웅전이 있는 너른 앞마당에서 본 풍경

대웅전 앞마당 소나무와 연등
▲ 대웅전 앞마당 소나무와 연등

그동안 몇 차례 와본 수덕사는 덕숭산까지 주로 산행을 하기 위해 건성으로 지나가는 정도여서 자세하게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갈 때면 맞배지붕의 장중하고 엄숙한 품격에 머리가 숙어지곤 했었다.   
내리는 눈발 너머로 보이는 대웅전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스라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눈에 들어온다.
그러다 잠시 눈이 흔들리며 내리는 것인지, 대웅전이 흔들리는 것인지, 지금 이 세상에서 보는 풍경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아무래도 이렇게 눈이 하얗게 내리는 특별한 날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에서 풍기는 범상치 않은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내리는 눈 속에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수덕사 대웅전▲ 내리는 눈 속에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수덕사 대웅전

유홍준 교수는 그의 책 『산사 순례』에서 수덕사가 황화정루 앞뒤 돌계단 때문에 중국 무술영화 세트처럼 괴이한 형상을 하여 많이 망가졌지만, 이 대웅전 건물이 건재하는 한 수덕사를 사랑하고 “이 대웅전 하나만을 보기 위해 수덕사를 열 번 찾아온다고 해도 그 수고로움이 아깝지 않다”라고 했다.
나 역시 이런 풍경을 보기 위해 눈이 펄펄 내리는 도로를 달려 온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눈 내리는 수덕사 대웅전
▲ 눈 내리는 수덕사 대웅전

이 대웅전은 지금으로부터 714년 전인 1308년 고려 충렬왕 34년에 지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건물 중 하나로 앞면 3칸, 옆면 4칸의 주심포 맞배지붕으로 단청이 없고 앞면 3칸에는 9개의 마름모꼴 사방연속무늬 창살이 이 건물의 정숙한 기품을 더해 준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 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옆면의 장식적인 요소가 매우 아름답다.
또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형태미가 뛰어나 한국 목조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수덕사 대웅전은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참조 : 문화재청 홈페이지,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 순례』]

수덕사 대웅전
▲ 수덕사 대웅전

대웅전으로 가는 계단에 올라 측면에서 본 지붕의 앞면과 뒷면의 사람 인(人)자 모양으로 배를 맞댄 맞배지붕의 경건함과 엄숙함이 있고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텨왔으면 나무의 진이 다 빠져 하얀 백골처럼 변했을까 싶어 배흘림기둥을 가만히 만져본다.

맞배지붕의 수덕사 대웅전▲ 맞배지붕의 수덕사 대웅전

측면에서 본 대웅전
▲ 측면에서 본 대웅전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웅전 배흘림기둥
▲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웅전 배흘림기둥

그러는 동안 무섭게 내리던 눈이 그치고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흡사 여기까지 왔으니 파란 하늘 아래서 보는 대웅전도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가라고 하는 듯, 그리고는 이내 파란 하늘이 닫히고 흐려지더니 다시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파란 하늘 아래 수덕사 대웅전▲ 파란 하늘 아래 수덕사 대웅전

정혜사로 가는 산길의 비탈에 선 나무들은 이 겨울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묵언수행 중인 듯하고 내린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워 조심스러운데 얼마쯤이나 올라갔으려나 더 올라가지 말라는 듯 갑자기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다.

정혜사로 오르는 산길▲ 정혜사로 오르는 산길

정혜사 가는 산길에 있는 사면불상
▲ 정혜사 가는 산길에 있는 사면불상

산에서 내려와 대웅전 마당을 지나면서 다시 눈발에 흔들리며 수묵화처럼 보이는 대웅전이 사랑스럽다.
이 자리에 오래 남아 세상살이에 힘들고 지쳐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위로와 평안이 되기를 바라면서 산문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되뇌어 본다.

수덕사 여행 시 참고사항
- 주소 : 충남 예산군 수덕사 안길 79, 041) 330-7700
- 입장료(성인) : 3,000원
- 주차요금(소형차) : 2,000원
- 선 불교 전문미술관 휴관일 : 매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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