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아산 맹씨행단과 고불 맹사성 기념관

청백리의 상징, 고불 맹사성의 발자취를 따라 걷다

2021.12.22(수) 08:36:38 | 들꽃향기 (이메일주소:rkdrudtnr419@naver.com
               	rkdrudtnr41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

지난 주말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어서 가까운 아산시 배방에 있는 조선시대 우의정을 지낸 대표적인 청백리 고불 맹사성 고택을 찾았답니다. 소탈하고 청렴한 고불 맹사성의 고택답게 고택 주변에 있는 기념관과 교육장 등도 그리 넓지 않고 아담한 모습이었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2

먼저 고불 맹사성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아담하게 꾸며놓은 기념관 안에는 고불 맹사성의 일대기와 삶의 흔적들을 엿볼 수 있었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3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4

고불 맹사성 교육관은 아이들의 교육과 인성 등을 가르치는 곳으로 사용되는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대문만 열어놓은 상태였습니다. 겨울빛이 따스하게 들어오는 이런 장소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피어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곳이었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5

기념관을 지나 맹씨행단으로 들어섭니다.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라고 생각하는게 제일 정확할 듯 하네요. 아름드리 은행나무 두 그루가 웅장하게 서있는 맹씨행단 주변의 풍경은 겨울이었지만 아름답고 소박했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6

맹씨행단은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제일 오래된 가옥으로 원래는 고려 시대 충신 최영이 살던 곳이었는데 맹사성의 인품을 살피던 최영이 손주 사위로 삼으면서 내린 집이랍니다. 작지만 기품이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7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8

은행나무의 크기와 형태 등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암, 수 한 그루씩이 사이좋게 맹씨행단을 지키고 서 있었는데요, 단점이라면 은행이 떨어져 있어 냄새가 ~~ ㅎㅎ, 아이들은 조금 멀리하는 공간이었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9

고불 맹사성의 사당입니다. 문이 닫혀 있어 내부는 볼 수 없었지만 향이 피워져있는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후손들이 아침마다 향을 피워놓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공간이었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0

맹씨행단의 모습입니다. 곳곳에서 여러 번의 보수 과정이 거쳐간 흔적들을 볼 수 있었지만 집의 형태와 모양은 원형에 가깝다 하니 고려 시대 살림 가옥의 형태를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1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2

맹씨행단 주변으로는 호젓하고 소박한 공간들이 있답니다. 크고 작은 소나무들과 돌담이 정겨운 모습이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걷기에도 아주 좋았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3

조금은 흐린 겨울날이지만 그렇게 춥지는 않아 맹씨행단을 돌아보는 동안 봄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분의 고택답지 않게 너무 소박해서인지 친근하게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4

아산맹씨행단과고불맹사성기념관 15

맹씨행단의 좋은 점은 마을과 함께 한다는 것이었답니다. 청백리 고불 맹사성의 고택답게 늘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모습, 지금도 작은 마을을 지키는 거목처럼 그 자리를 빛내고 있는 것은 고불 맹사성의 삶이 아름답고 청렴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서 지금의 우리가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옵니다.
 

들꽃향기님의 다른 기사 보기

[들꽃향기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