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나무숲이 우거진 낮은 구릉위에 조성된 왕릉이 후백제를 세운 견원의 묘라고 알려진 곳으로 전견훤묘 또는 견훤왕릉이라고 불린다.
문화재청에서 1981년 12월 21일 충청남도기념물 제26호 전견훤묘로 지정한 견훤왕릉은 낮은 구릉 정상부에 지름 17.8m, 둘레 70m, 높이 4.5m로 조성되어 왕릉의 크기를 유지하고 있다.
천안논산간 고속도로 연무 ci에서 견훤왕릉 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인터체인지를 나와서 8.6km를 달리면 금곡4리 마을 길앞에 조성된 견훤왕릉 주차장 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견훤왕릉 주차장에 차를 대고 견훤왕릉공원이라는 안내표지판 옆에 세워진 견훤왕릉 계단 이용 이라는 화살표 안내를 따라 서촌교회 옆으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300m 를 올라가면 견훤왕릉이 나온다.
견훤은 문경시 가은읍에서 아자개의 아들로 태어나 문경에서 기병하여 서기900년 완산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우고 중국의 오와 월과 국교를 맺고 왕건과 자웅을 겨루었다.
견훤은 927년 경주 포석정에서 연회를 하던 경애왕을 자살하도록 하고 경순왕을 왕으로 내세우는 등 세력을 떨쳤으나 왕위계승을 둘러싸고 아들 신검과 내분으로 인해 서기936년 후백제가 멸망하였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황산불사 라는 절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해지는 견훤은 삼국사기에 기록되기를 “걱정이 심하여 등창이 나 수일 후 황산의 한 절에서 죽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죽을 때 후백제를 일으킨 곳이 그립다고 하면서 전주 완산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겨 완산의 칠봉이 보이는 이곳에 묘를 썼다고 전해진다.
낮은 구릉지 위에 조성된 견훤왕릉은 실제로 맑은 날에는 멀리 전주의 모악산이 보여서 견훤이 묻혀 있는 곳에서 자신이 세운 도읍지를 바라볼수 있는 위치에 모셔졌음을 알수가 있다.
견훤왕릉은 그 흔한 지석도 없이 왕릉만 자리잡고 있고 왕릉 오른쪽 백일홍 나무 사이로 1970년 견씨 문중에서 세운 비석 후백제왕견훤능 이라는 표지석만 자리잡고 있다.
견훤의 묘라 하지만 확실한 고증이 없어 전할 전(傳)자가 붙어서 전견훤묘로 문화재청에 등록이 되었는데 1757년에 간행된 여지도서에 “현남 12리에 견훤묘, 현남 13리 금곡사우”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전견훤묘 견훤왕릉
충청남도기념물 제26호
주소: 충남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산18-3번지
주차장: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왕릉로 122
금곡서원은 조선시대 숙종 때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수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은진현 가약곡면 조정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사액현판을 받았으나 1773년(영조 49)에 조령으로 훼철되었다.
견훤왕릉이 자리잡은 동산 아래에 1784년(정조 8) 이건하여 복원된 금곡서원은 1863년경에 성삼문과 조계명을 추가 배향하면서 위세를 올렸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8호에 지정된 금곡서원은 3칸의 사우, 동재와 서재, 중앙의 마루로 된 강당, 중앙의 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내삼문과 외삼문, 4칸의 고직사, 3칸의 전사청이 자리잡고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78호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왕릉로 17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