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15일 충남도립공원 대둔산 정상 마천대(해발878m)를 오르내리며 담은 이야기
충남도립공원 대둔산 정상 마천대(해발878m)를 오르는 등산길은 아홉개 정도의가 있는데 등산길마다 거의 이름이 없어 산객들의 어려움도 많고 등산이야기 만들기가 쉽지 않다, 오래전 부터 등산로 이름을 만들자고 제안을 했지만 아직까지 뚜렸하게 명명되지 않았다, 이에 필자는 대둔산을 50여년간 수없이 오르내리며 보고 느낀대로 아래와 같이 아홉개의 코스로 구분해 명 하고 지속적으로 대둔산 산길 이야기를 쓰고자 한다
충남도립공원 대둔산 마천대(해발 878m)를 오를 수 있는 산길들을 아래와 같이 각각 이름을 지어본다
1코~스 :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군의 경계인 배티재에서 오르는 금남정맥길
2코~스 : 금산군 행정리 충남도립공원관리소에서 태고사를 경유해 오르는 태고사길
3코~스 : 논산시 벌곡면 도산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는 송곳바윗길
4코~스 : 벌곡면 수락리 상수락(버스정류장)에서 수락폭포와 낙조대를 경유하는 낙조대길
5코~스 : 수락 주차장에서 수락계곡을 경유 석천암 ~ 석천암뒤 능선으로 오르는 독수리바윗길
6코~스 : 주차장~수락계곡~군지계곡입구 ~허덩골계곡을 따라 오르는 낙조산장길
7코~스 : 주차장~수락계곡~군지계곡입구~ 계단길로 올라 능선으로 마천대를 오르는 마천대길
8코~스 : 수락계곡~군지계곡입구~계단길~군지구름다리~능선길로 오르는 허둔장군절터길
9코~스 : 수락계곡~ 얼레지다리~바람재에서 남쪽 능선길로 헬기장을 지나 충남과 전북의 경계능
(금남정맥)으로 오르는 충전(충남 전북)도계길 로 명명 했다
이번 산행은 6코스인 수락주차장에서 수락계곡을 경유 허덩골 코스인 낙조산장길로 정상(마천대)에 올라 8코스인 허둔장군절터길 로 군지구름다리를 경유 수락주차장까지 원점회귀 코스로 약 8km의 산길이다
지난 7월에 다시 만들어진 대둔산충남도립공원 수락 사무소, 수락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행은 이곳에서 부터 시작 된다도로길 50여미터 지점 캠핑장 안내판이 있는데 캠핑장은 우측으로 300여미터 지점 숲속에 있고 승용차로 갈 수 있다, 보이는 산은 철쭉으로 유명한 월성봉 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다리성봉 이다
산행은 평탄한 도로길, 길 양쪽 심겨진 단풍나무가 가을이면 붉게 물들어 대 장관을 이룬다 계속 도로를 따라 500여미터 오르면 작은 주차장과 왼쪽으로 승전탑으로 가는 돌계단이 나타나고 등산안내도가 세워져 있는데, 산길은 전면 데크길이다
장군절터에서 오름길로 15분정도 오르면 만나는 낙조산장(무인대피소)이다
7~80년대엔 흙집으로 지은 움막집이 있었던 자리로 필자는 이곳에 대한 이야기와 사연이 꽤 많다
지정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76호
위치 :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산14-1
시대 : 고려 말 조선 초
대둔산 정상(마천대)에서 북으로 뻗은 능선 약1km 지점 낙조대에서 남서향 100m지점 바위 벽면에 양각으로 만든 불상이다. 이 불상은 대둔산에 위치한 어느 사찰에 속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애불의 법의(法衣)는 양쪽 어깨에 걸쳐 발까지 내려와 있다. 오른쪽 팔은 쭉 펴서 자연스럽게 늘어뜨렸고, 왼쪽 손은 가슴 부위로 올려 손가락을 펴서 몸체에 붙인 형태이다. 제작연대와 제작자는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조각기법으로 보아 고려 말 또는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마천대 가는길에서 만난 위 바위를 필자는 이렇게 생각했다 "심판바위"
대둔산 아래 상수락마을에 촌장 박영감댁에 건장한 청년인 석돌이와 천돌이 라는 두 머슴이 10여년 동안 촌장말씀을 잘 들으며 열심히 함께 살고 있었다 촌장은 안방에 작은 불상을 모셔놓고 조석으로 열심히 불공을 드리며 살고 있는데 그 덕으로 집안이 나날이 부유해지며 머슴들 새경도 넉넉히 주곤 한다 이를 수년간 지켜보던 두 머슴은 날이 갈수록 부러워하며 항상 촌장의 명령을 잘 따르며 일도 서로 경쟁적으로 열심히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촌장이 먼 곳의 친구 한테로 수 일간 놀러 갔다, 그 사이 머슴 천돌이가 내가 곧 머슴살이가 끝나면 집을 짓고 살건데 내가 저 불상을 모시면 이렇게 부자가 되겠구나 하고 욕심을 부려 석돌이 모르게 그 불상을 훔쳐 산속에 감춰두었다 몇일 후 촌장이 집에 와 보니 안방에 모셔놓은 불상이 사라진 거다 촌장은 두 머슴을 불러 다그쳤으나 서로 자기는 아니라고 다투게 되어 두 머슴을 데리고 대둔산에 올라 이 바위앞에 서서 두 머슴에게 말하기를 “저 바위사이에 들어가면 거짓말을 한자는 바위가 합해져 압사를 하니 여기서 심판을 하겠노라” 라고 두 머슴에게 말을 하니 이말을 들은 천돌이가 갑자기 줄행랑을 친거다 즉 범인은 천돌이라는게 판명이 되었다 해서 심판바위라 한다. 그때 사라진 불상은 지금 낙조산장 뒤 바위절벽에 마애불로 회생되었다
이렇게 걸어서 드디어 대둔산 정상 마천대(해발 878m)에 도착
마천대(馬天臺 충남 논산시와 전북 완주군의 경계)
대둔산 최고봉은 해발878m인 마천대(馬天臺)다, 마천대란 세상이 어수선하고 어려움이 있을때 마다 하늘에서 선인이 말을 타고 이곳으로 내려와 어수선한 사회를 바로 세우며 어려운 중생들을 보살피고 다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 간다는 자리라 해서 마천대(馬天臺)라 한다. 그런데 1968년에 전라북도에서 그 지역을 전북도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인부들을 시켜 세멘트와 철근을 올려 거창한 콩크리트 탑을 만들고 개척탑 이라고 명명 했고, 그 후 최근에 철판으로 덧붙여 현 모습을하고 있다, 해서 저 뾰쪽한 철탑 때문에 선인이 말을타고 내려앉을 자리가 없어 중생을 구 할 수 가 없어 사회가 어수선한거 같다 -필자생각-
정상에 도착하니 참나리가 하늘하늘~ 반긴다
마천대에서 동북으로 바라보는 금강산 같은 절경과 멀리까지 드리우는 산하
마천대에서 남으로 보이는 서각봉(중앙) 그리고 왼쪽 뾰쪽한봉은 한듬산이다
마천대에서 바라본 전라북도 지역 케이불카와 구름다리 그리고 삼선교 일부가 조망된다
8코스로 하산을 하며 옆으로 조망된 금남정맥, 왼쪽 봉은 필자가 종종 비박을 즐기는 곳 이고 오른쪽봉은 서각봉이다 그리고 두 봉 중간지점 등산로 서쪽 30여m지점에 3년전에 자연보호논산시협의회에서 옹달샘을 만들고 "마천샘" 이라 명명했다(인터넷 검색 : 마천샘)
마천대에서 8코스로 약 2km를 하산하며 만난 군지구름다리 즉 군지계곡 중간지점 상류에 놓여진 다리로 좌 우로 계곡을 내려볼 수 있다
1950년 9월 북으로 패주하던 북한 괴뢰군의 패잔병이 험준한 대둔산을 근거지로 삼아 벌곡, 양촌, 연산, 가야곡, 논산, 강경, 금산, 공주, 대전등 충청남도지역은 물론 완주군 진안군등 전라북도 지역까지 출몰하여 양민학살과 식량약탈, 관공서 습격등 갖은 만행을 자행하였다, 대둔산 지역의 공비는 지리산, 덕유산등지에 거점을 둔 공비와도 상호 연계되어 한때는 자칭 남한 빨치산 총책 남충렬등을 비롯하여 소위 백두산 압록강 두만강 38선 한듬산 부대장등 거물급 공비들이 총 집결되어 20,000여명이 넘는 경시 할 수 없는 세력으로 치안 기반을 압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치안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충청남도경찰국에서는 대둔산 지역의 공비토벌을 전담할 대둔산지구 전투경찰대를 창설하여 공비토벌 작전을 수행케 하였는바 공비출몰지역에 거주하는 청장년들도 분연히 궐기하여 경찰작전에 동조 하므로서 명실공히 지역주민과 경찰관이 혼연일체가 된 향토방위 작전을 전개 하였다
1950년 9월부터 1955년 1월까지 장장 6년간 적과 조우하여 혈전을 거듭하기 수 백회 전방전선인 38선에는 이미 휴전이 성립되어 포성이 멎은지 오래 되었어도 후방지역인 대둔산지역의 공비토벌 작전은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충용무쌍한 전투경찰대원들은 조국수호와 향토방위의 일념으로 온갖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며 용전분투하여 적 사살2,287명, 생포 1,025명, 이 외에 다량의 무기와 탄약과 장비등을 노획하는 전과를 올린 반면 작전중에 경찰관, 의용경찰 및 애국청년등 1,376명이 조국의 수호신으로 장렬하게 산화하였다, 1955년 1월2일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항거하던 공비 압록강부대장 김종하를 생포함으로써 충남의 산하에는 총성이 멈추고 잃었던 평화를 되찾게되었다,
6,25전란이 멎은지 33년 대둔산 공비토벌작전이 끝난지도 어언 30년이 흘렀으니 지난날의 이 엄청난 비극과 승리의 역사를 아는 사람이 그 몇이나 되겠는가 때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라도 충청남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조국의 수호신으로 산화한 호국영령의 전공을 자손만대에 길이 선양하고 자라나는 후손들에게는 충절의 교육도장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옛 격전지인 대둔산 기슭에 승전탑을 세운다,
승리의 용사상이 부조된 높이 20m의 첨예한 석탑은 하늘을 찌를 듯한 승전의 기쁨을 상징하고 탑신하단의 삼각지주는 경찰과 지역주민이 혼연일체가된 향토방위작전을 상징하며 전면 좌측의 경찰관과 평화의 여인상은 경찰의 공비토벌로 충남지역에 평화를 되찾게 되었음을 뜻하고 전면 우측의 경찰관과 부부농민상은 국민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는 경찰이라는 것을 뜻하며, 후면의 경찰관과 애국청년의 용진상은 당시의 공비토벌작전을 총괄적으로 상기케 하고자 한 것이다.
삼가 오늘도 구천에서 조국의 산하를 지켜주실 호국영령의 명복을 빌며 선열들의 위훈이 청사에 길이 빛나기를 바란다
1985년 12월 충청남도경찰국장 주병덕
승전탑 아래 왼쪽에 세워진 "護國忠節" 1985년 12월 20일 충남도지사 안응모
승전탑에 참배하고 오전에 올랐던 도로길따라 수락주차장까지 하산, 총거리 약 8km의 산길을 무사히 마쳤다
충남도립공원 대둔산 이제 가을의 풍경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