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미소
백제의 미소
오랜만에 서산 마애삼존불상의 봄 풍경을 보러 길을 나섰다. 마스크를 끼고 생활하는 것이 일상이 되면서 답답한 마음이 쌓여만 가는 듯해 투박하지만 온화한 백제의 미소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왠지 출발하면서부터 내 얼굴에도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어렴풋하지만 몇 년 전에 보았던 그 미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빛에 따라 달라진다는 그 아름다운 미소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늦봄의 우울감을 달래주었으면 하는 기대에 마음은 이미 용현 계곡을 건너고 있었다.
계곡을 가로질러 돌계단을 오른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숲은 많은 것들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쉬지 않고 들려오는 새소리와 곳곳에 피어있는 야생화, 그리도 바람까지, 천천히 걸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리고 왠지 백제의 미소는 세상을 느리고 편안하게 바라봐야 나오는 웃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천천히 그 미소를 향해 계단을 올라갔다.
이유 없이 웃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유 없이 웃었다.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몸이 울릴 만큼의 깊은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개구쟁이 같은 천진난만한 웃음도 있었고, 누구에게나 모든 것을 내어주는 듯한 인자한 미소도 있었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내 아버지와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의 웃음도 있었다. 세 불상을 번갈아가며 나도 다른 웃음을 웃을 수 있었다. 얼마 만인가? 이렇게 몸이 느낄 수 있도록 웃어본 것이....
일상의 여행
가까운 곳을 잊고 있었다. 아마 일상을 잊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말수도 줄고, 모임도 줄고, 웃음도 줄고, 마스크를 낀 모습들이 일상이 되어가면서 무뚝뚝함은 당연한 것이 되고 있었다. 이런 때에 찾아가야 하는 곳이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아닐까?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불상과 서로 바라보며 웃어도 되고, 바라봐도 되는 시간.
보원 사지
기분 좋은 웃음을 간직한 채 용현계곡을 따라 백제시대 절터이자 사적 제316호인 보원 사지 절터를 찾았다. 10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 제102호인 석조와 보물 제103호 당간지주, 그리고 보물 제104호인 오층 석탑 등의 유물과 초석이 남아 있는 곳이다. 몇 년 전에는 발굴 때문에 출입 제한이 있던 곳이었는데 발굴이 끝난 것인지 절터는 이미 초록의 풀들이 뒤덮여 여름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아주 천천히 급할 것 없는 걸음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