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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화전별곡을 쓴 자암 김구선생의 묘소를 찾아가보았어요.

2021.04.14(수) 15:22:37 | 서영love (이메일주소:hush7704@naver.com
               	hush7704@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김구가 인생의 마지막을 보냈던 곳은 예산입니다.
하지만 그는 남해에서 오랜 유배생활을 보냈던 사람입니다. 명필이라고 알려졌지만 따듯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역사문화 사적을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이해하고 그 시대적 사상과 이념,  가치관을 얼마나 수용하고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알려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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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선비인 자암 김구는 ‘화전별곡’에서 남해를 ‘일점선도’(一點仙島), 즉 ‘신선의 섬’이라고 노래했었습니다.
봄 햇살에 은빛으로 부서지는 바다와 초록 물결 넘실거리는 양지바른 언덕에서 그는 어떤 광경을 보았을까요. 예산의 자암 김구선생묘소에는 화전별곡이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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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 1장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까요.  

‘가없는 저 하늘 끝없는 지평선 한점의 신선의 섬이어라 왼쪽은 망운산 오른쪽은 금산 봉내와 고내 흐르네 산천은 수려하고 호걸남아가 많이 나서 인물 번성하네 아, 하늘남쪽 아름다운 곳 그 경치가 어떠한가 풍류주색 즐기는 한때의 인물들이, 풍류주색 즐기는 한때의 인물들이 아, 나까지 몇 분이나 되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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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이 비에 새겨져 있는데 글의 유려함이 돋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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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 선생의 화전별곡의 1장은 화전의 경치, 2장은 교우(交友), 3장은 연락(宴樂), 4장은 연락 중의 음악, 5장은 술과 안주의 풍부함, 6장은 자신의 생애를 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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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묘소를 찾아서 걸어서 들어가 봅니다.
자암 김구 선생은 자학 연구에 전념하여 학문이 조광조·김식과 견주었으며, 음률에도 뛰어나 악정에 임명된 적도 있었던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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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전형적인 내륙지역이지만 그가 걸어갔던 길이 있기 때문에 바다의 향기가 느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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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의 노도라는 섬 이름은 옛날 이곳에서 배의 노를 많이 생산했다고 하여 노도(櫓島)라 불리게 된 곳이라고 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유배를 간 김구 선생은 남해의 노도에 머물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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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논산의 강경에도 죽림서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자암 김구가 13년간 남해 적소 생활을 마치고 이배 된 임피에도 이미 봉암서원이 1694년 창건되어 배향하고 있는데 도학을 강론한 남해에 이제 죽림서원을 창건하여 자암 김구를 배향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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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1488 - 1534)는 조선 중종 때의 문신이며 서예가이며 어려서부터 학문에 능통하여 16세 때인 연산군 9년(1503)에 한성시에 일등으로 뽑혔고 중종 2년(1507)에 생원, 진사시에 장원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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