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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룡시에 오면 꼭 들려야 할 곳 신원재와 모원재

도심속의 고택을 만나다.

2021.03.24(수) 20:42:35 | 태블리 (이메일주소:taihyeon0503@hanmail.net
               	taihyeon0503@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계룡시에 오시면 꼭 들러볼 곳이 신원재와 모원재입니다.
계룡 시청에서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도심 속의 고택입니다.
더욱 좋은 건 도심과도 가깝지만 완전히 시골이라 한적하니 조용하고 좋더라고요.
신원재는 안채까지 개방을 하여 들어갈 수 있었으나 모원재는 입구가 잠겨 있어서 안쪽을 못 봐서 많이 아쉽더라고요.  

신원재
 ▲ 신원재 

충청남도 계룡시 두마면 왕대 2길 43 (두마면)에 있으며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79호(2002.01.10 지정)입니다.
조선 중기에 건립된 사계 김장생의 9번째 아들인 김비(1913~1699)의 재실입니다.
신원재 앞은 넓은 공터라 주차도 편하며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입니다.

신원재안채
 ▲ 신원재 재실

입구에 들어서면 정면에 재실이 보입니다.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우측 2칸은 온돌방 좌측 2칸은 대청마루 구조이며, 전면에 신원재라는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신원재 현판
▲ 신원재 현판

 신원재(愼遠齋)는 부친이 돌아가시자 그의 형제인 신독재 김집과 그 형제들이 1632년 함께 건물을 짓고 이곳에서 그의 조부 및 부친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의 저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곳입니다.
신독재 사후 그의 막냇동생 김비가 황강행장 및 실기, 사계, 신독재 전서 등을 정리 집필하였던 유서 깊은 곳으로써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으나 한옥 재실로서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기의 전통 한식 목조 형태라고 합니다. 김비는 조선 효종 장수, 이인, 평구, 등 역임하였다 합니다.
 
모원재
▲ 모원재

모원재(摹遠齋)도 충청남도 계룡시에 있으며 신원재에서 걸어서 5분이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모원재는 김국광(1415∼1480) 선생의 사당이며, 1989년 4월 2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8호로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모원재
▲ 모원재 정면 

김국광의 분묘 조성 후엔 건립되어 여러 차례 보수되었으나 한옥 재실로서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김국광은 세종 23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고 세조의 즉위를 도와 두터운 신임을 얻게 되었으며, 『경국대전』편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벼슬이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과 좌의정에 올랐다고 합니다.

모원재
▲ 모원재 재실 

인조 원년에 지은 모원재는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의정공 김국광은 조선시대 문신으로 본관은 광산이며 김철산의 아들입니다.
세조 6년에는 함경도 경차관으로써 오랑캐를 회유하여 물러나게 하였으며, 세조 13년에는 이시애의 난 때 병조판서로서 남이장군과 함께 난을 평정하였다 합니다. 

모원재 전경
▲ 모원재 전경

모원재 뒤쪽에서 본 모습입니다. 계룡시에 아이들과 함께 오신다면 꼭 신원재와 모원재를 방문하셔서 아이들에게 역사의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연스럽게 역사 공부를 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재실 : 능이나 종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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