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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꽃처럼 떨어져 사라진 그녀들, 그리고 궁녀사

부소산 낙화암 백화정과 궁녀사를 보며 젖는 마음의 상념

2021.03.21(일) 10:19:15 | 이종섭 (이메일주소:dslskj55@hanmail.net
               	dslskj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제의 융성하고 찬란했던 역사는 의자왕 20년(660)에 무너졌다.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떨어지던 3000 궁녀들은 적군에게 붙잡혀 몸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낙화암에서 꽃처럼 떨어졌다..
훗날 후손들은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궁녀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
 
지금 부여군 부소산에 올라가면 만날 수 있는 ‘궁녀사’.
그것이 1965년에 세운 사당인데, 부소산과 박물관 정림사지5층석탑, 금동대향로와 낙화암까지는 잘 알아도 궁녀사에 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봄 오는 길목에서 한번쯤 돌아보고자 부소산을 올랐다.
 
궁녀사를 탐방하기 위해 걸으면서 먼저 멸망기 긴박했던 백제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궁녀사와 낙화암, 백화정이 있는 부소산 입구

▲ 궁녀사와 낙화암, 백화정이 있는 부소산


부여지구

▲ 부소산은 백제역사지구로 지정돼 있다.


나제 동맹이 깨지고 한강 유역을 신라에 빼앗긴 백제는 국력을 키우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다가 제30대 무왕 때에 이르러서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신라를 공격하기에 이른다.
 
무왕의 뒤를 이은 의자왕 또한 신라의 서쪽 지방을 공격하여 40여 개의 성을 빼앗고, 신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대야성(지금의 경상남도 합천)까지 점령했다. 또한 당성(경기도 화성에 있는 산성)도 점령해 신라가 힘겹게 마련한 당나라와의 통로를 막아 버렸다.
그 와중에 백제는 또한 고구려와 사이좋게 지내면서 신라를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부소산 정상에서 본 백마강 줄기.

▲ 부소산 정상에서 본 백마강 줄기.


신라로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였고, 백제가 가장 두려운 존재가 되었다.
결국 신라는 살아남기 위해 당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만들어진게 신라와 당나라가 합친 나당연합군이다. 나당 연합군은 힘센 고구려보다 백제를 먼저 공격하기로 했다.
 
서기 660년 6월 21일, 13만 대군을 실은 당나라의 수많은 배가 덕적도 앞바다에 도착해 신라군과 합류했다. 이때부터 시작된 양국의 군사공격으로 인해 결국 융성했던 백제는 한순간에 역사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백화정과 낙화암

▲ 백화정과 낙화암


백화정

▲ 백화정


나당 연합군의 창칼과 연기 속에서 그나마 겨우 빠져나온 백성들은 의자왕이 버티고 있을 부소산으로 올랐다. 하지만 이장왕은 이미 공주 웅진성으로 피신한 상황.
송월대(사자루)에서 내려다 보던 왕후와 궁녀들은 마지막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저들에게 투항해 능욕을 당한 뒤 굴욕적으로 살 것인가, 차라리 여기서 죽음을 택할 것인가.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던 사이 숲 속에 있어 연이어 종을 울리던 서복사지쪽의 종소리가 멎었다. 그쪽 즉 부소산 한켠도 이미 나당연합군의 수중에 떨어졌고, 곧 그들이 부소산 정상으로 들이닥칠 기세였다.
 
그사이 부소산에 있던 고란사도 불타고 있었다. 밀려드는 적병들, 갈 곳 없는 궁녀들...
뒷걸음 뒷걸음... 결국 그들은 하염없이 절벽 아래 백마강으로 낙엽처럼 떨어져 갔다.
 

궁녀사로 가던중 만난 연?.

▲ 궁녀사로 가던중 만난 소나무 연리지.


인근에 태자숲길도 있다.

▲ 궁녀사 안내문. 인근에는 태자숲길도 있다.


이른 봄, 벌써 초록이 보인다.

▲ 이른 봄, 벌써 초록이 보인다.


저기 궁녀사 솟을대문이 있다.

▲ 저기 궁녀사 솟을대문이 있다.


초봄의 나른한 오후, 식곤증마저 진하게 온몸을 엄습하는 훗날 2021년 3월의 부소산과 궁녀사는 그 어느때보다도 외롭고 쓸쓸했다.
 
궁녀사를 향해 발걸음 하던중 만난 태자의 숲길이며, 그들이 몸을 던졌던 낙화암과 그 정상에 그녀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놓은 정자 ‘백화정’까지.
모두 이른 봄의 따사로운 햇살의 위무를 받으며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궁녀사 사당

▲ 궁녀사 사당


꽃처럼떨어져사라진그녀들그리고궁녀사 1


궁녀사 안의 초상화

▲ 궁녀사 안의 초상화


부소산의 숲길은 부여읍 시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정갈하게 잘 정리된 숲길, 철마다 곱게 몸치장하듯 수백년동안을 그자리를 지키며 백제 사직의 흥망성쇠를 지켜보았던 이름모를 나무들....
땅속 깊은곳, 과거의 시간은 아직도 깨어날 줄 모르고 단지 깊이 뿌리내린 곳으로부터 수액을 빨아 올려 피고지는 무성한 잎새들만이 그들의 살과 피, 그리고 눈물을 토양 삼으며 오늘을 지탱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척이나 짠~ 하다
 
궁녀사 솟을 대문을 들어서면서 비로소 “아, 그 피할수 없었던 고대국가 왕실의 궁녀들의 운명이란...” 하는 생각에 긴 숨을 몰아쉬었다.
 
사당 안, 초상화처럼 그려진 어둠속 영정이 밝게 웃고는 있었지만... 그때는 얼마나 절박하고 당혹스러웠을까. 그 당혹이란게 한번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부지할수 없는 생사의 갈림길이었으니 오죽 했을까.
 

사당에서 바라본 솟을대문쪽의 맑은 봄날의 모습

▲ 사당에서 바라본 솟을대문쪽의 맑은 봄날의 모습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음이 짠하다.

▲ 그때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마음이 짠하다.


'허'한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린다.

▲ '허'한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린다.


지금...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름없이 스러져 간 궁녀, 그들을 다시 기억하며 명복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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