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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윤보선 전대통령 생가를 찾아

2021.03.19(금) 00:38:44 | 가람과 뫼 (이메일주소:caption563@naver.com
               	caption563@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생가 전경
▲생가 전경
 
윤보선전대통령생가를찾아 1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이었던 전 윤보선 대통령은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서
1897년 8월 부친인 윤치소와 어머니 이범숙 사이에서 9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해평(海平)이요, 호(號)는 해위(海葦)이다.
  
그의 호인 해위는 정신적인 스승이던 신규식 선생께서
'바다의 갈대는 바람이 불어도 꺽이지 않는다'라는 의미로 지어 주셨다 한다.
 
대대로 명문가요 만석지기셨던 그는 어려서 고향에서 조부로 부터 한학을 배웠고,
초등학교에 입학할때는 한양으로 가셨다 한다.
 
상해에서 신규식 선생을 만나 선생의 지시로 독립운동자금을 조성하는 등 활동을 하시던 중
선생의 권유로 영국 유학을 하셨다 한다.
 
해방 후 서울시장과 상공부장관을 역임한 그가 남긴 일화 중
상공부 장관을 나가실 적에 가족들을 모아 놓고 말씀하시기를
'누구든 이권운동(利權運動)을 하면 나는 장관직을 맏지않겠다' 하셨으며
실제 상공부장관이 된 후에는 일상용품은 물론이요, 도시락을 지참하여 출근을 하였다 한다.

대문
▲대문
 
문간채
▲문간채
 
완만한 구릉지에 아늑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는 생가는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건축을 하였다 하며 국가 민속문화재 제196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남향을 하고 있는 생가는 행랑채·안채·안사랑채가 있으며,
행랑채 옆에 있는 바깥사랑채는 건축 양식으로 보아 추후에 지어진 듯싶다.
 
안채와 행랑채가 연결된 곳에는 가운데에 솟을대문이 있고
안방과 건넌방은 툇마루로 연결되어 있다.
건물의 구조와 배치에서 당시의 상류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며
흡사 할머니댁이라도 들른 듯 편안함이 느껴진다.
 
사랑채
▲사랑채
 
윤보선전대통령생가를찾아 2
 
행랑채
▲행랑채 
 
안채
▲안채
 
안채를 돌아본 후 뒤란으로 가니 굴뚝의 모습이 우뚝하니 정겨운 모습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흔히 뒤란 양지쪽에 조성하였던 장독대를 볼 수 없었던 점이다.
장독대를 보면 그집의 살림의 규모를 가늠해볼 수 있을텐데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직은 이른 탓인지 화초의 화려함은 없지만 정성스레 관리를 하였음이 집안 곳곳에 묻어난다.
 
굴뚝
▲굴뚝
 
뒤란
▲뒤란
 
모처럼 맑은 하늘이 오늘따라 참 곱다.
그가 장관직에 나가며 가족에게 일렀다는 말씀이 귓가에 맴돈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금과옥조로 삼을 말씀이지 싶다.

봄이 깊어지면 다시 방문을 하여 생동감 있는 모습을 보고 싶다.
 
윤보선전대통령생가를찾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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