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여행

공주 공산성과 해자(垓子)의 모라토리엄

공주 공산성, 어디까지 보셨슈?

2021.03.12(금) 06:35:16 | 홍경석 (이메일주소:casj007@naver.com
               	casj007@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산성에서 보는 공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
▲공산성에서 보는 공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
 
공주(公州)에 가면 공주(公主)는 몰라도 공산성(公山城)은 꼭 봐야 한다. 공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에 우뚝한 삼국시대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이며 산성이고 사적이다. 
 
공산성 가는 길
▲공산성 가는 길
 
공산성은 백제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거처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이곳을 거점으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당시였던 1623년 이괄(李适)의 난 때는 인조가 잠시 피난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공주 옥룡동 은개골 유적 안내판
▲공주 옥룡동 은개골 유적 안내판
 
백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고 불렀으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공산성’이라고 불렸다. 예부터 왕의 피신처가 될 만큼 공산성은 전략적으로도 뛰어난 군사거점이었다.
 
공산성 안내
▲공산성 안내
  
공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표고 110m의 공산과 인접한 금강이 천연의 요새이자 해자(垓子)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해자의 중요성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쉬이 봐 왔듯 해자는 일부러라도 만들었던 것이 과거 역사의 상식이었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살리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광복루 안내판
▲광복루 안내판
 
그런데 공산성은 그 아래 푸른 금강이 천연의 해자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다. 공산성의 또 다른 압권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이름 지은 광복루(光復樓)다. 이 건물은 원래 공산성 내에 군사가 주둔했던 중군영의 문루였다. 이를 일제강점기 초기에 이곳으로 옮겨 세워 ‘웅심각’이라 불렀던 것을 광복 이후 다시 ‘광복루’라 고쳐 불러 지금에 이른 것이다.
  
역사 깊은 광복루
▲역사 깊은 광복루
 
광복루라고 작명하게 된 것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백범 선생과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선생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광복루와 백범 김구
▲광복루와 백범 김구
 
당시 공주를 방문해 누각에 오른 백범 김구 선생을 보려고 나온 환영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전해진다. 백범 선생의 나라사랑을 새삼, 그리고 흠뻑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공산성 임류각
▲공산성 임류각
 
백범 선생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우리 겨레의 스승이자 큰 별이지만 그와 동행했던 이시영은 누구였던가. 그는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다. 만주 신흥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임시정부, 한국독립당에도 참여했으며 1948년엔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모습
▲공산성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모습
 
이시영은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리던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형인 건영(健榮)·석영(石榮)·철영(哲榮)·회영(會榮)과 동생 호영(頀榮)과 함께 6형제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한 집안으로 유명하다.  
 
공산성에서 내려다본 공주시 풍경
▲공산성에서 내려다본 공주시 풍경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공산성에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 영은사(靈隱寺) 외에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들어차 있다. 백제 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기쁨과 자긍심까지 덩달아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다.  
 
금강의 푸른 물길이 충남 농촌의 옥토를 이루는 일등공신
▲금강의 푸른 물길이 충남 농촌의 옥토를 이루는 일등공신
 
공산성의 주문(主門)은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다. 공산성을 다시 찾은 날은 공산성과 해자의 ‘모라토리엄’을 살피고자 진남루가 아니라 일부러 공주시 옥룡동을 경유하여 올라갔다.  
 
공산성은 산책에도 으뜸
▲공산성은 산책에도 으뜸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전쟁과 지진, 경제 공황, 화폐 개혁 따위와 같이 한 나라 전체나 어느 특정 지역에 긴급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 국가 권력의 발동에 의하여 일정 기간 금전 채무의 이행을 연장시키는 일을 뜻한다.  
 
공산성의 위용
▲공산성의 위용
 
공산성에 ‘모라토리엄’을 결부시킨 것은 본 기자의 역사에 대한 묵직한 채무(債務)와 관련된 소회 때문이다. 채무는 재산권의 하나인데 특정인이 다른 특정인에게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의무를 이른다. 즉 공산성은 지난 역사에 있어 우리 민족에게 힘이 없는 민족은 강대국에게 당한다는 묵직한 채무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운 꽃은 봄의 상륙을 알리고
▲고운 꽃은 봄의 상륙을 알리고
 
더불어 평소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국방력 제고로 다시는 외침을 당하지 말아야한다는 교훈까지 파란 금강의 물길처럼 선명한 명징(明澄)으로 전하고 있었다. 공산성 주변에 곱게 피어오르는 꽃들도 그렇다며 미소로 화답하는 것 같다.
 
시원한 나무그늘은 공산성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식혀준다
▲시원한 나무그늘은 공산성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식혀준다
 

홍경석님의 다른 기사 보기

[홍경석님의 SNS]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kyungseok.hong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