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성에서 보는 공주의 또 다른 아름다움
공주(公州)에 가면 공주(公主)는 몰라도 공산성(公山城)은 꼭 봐야 한다. 공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번지에 우뚝한 삼국시대 포곡식(包谷式)으로 축조된 백제의 성곽이며 산성이고 사적이다.
▲공산성 가는 길
공산성은 백제시대는 물론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다. 백제가 멸망한 직후에는 의자왕이 잠시 거처하였다는 설도 있다. 또한 이곳을 거점으로 나당연합군에 대항하는 백제부흥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그 뒤 조선시대 당시였던 1623년 이괄(李适)의 난 때는 인조가 잠시 피난하기도 하였다고 전해진다.
▲공주 옥룡동 은개골 유적 안내판
백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고 불렀으나 고려시대 이후에는 ‘공산성’이라고 불렸다. 예부터 왕의 피신처가 될 만큼 공산성은 전략적으로도 뛰어난 군사거점이었다.
▲공산성 안내
공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표고 110m의 공산과 인접한 금강이 천연의 요새이자 해자(垓子) 역할을 하였기 때문이다. 해자의 중요성은 두 말 하면 잔소리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도 쉬이 봐 왔듯 해자는 일부러라도 만들었던 것이 과거 역사의 상식이었다. 이는 군주가 백성을 살리기 위한 당연한 선택이었다.
▲광복루 안내판
그런데 공산성은 그 아래 푸른 금강이 천연의 해자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다. 공산성의 또 다른 압권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이 이름 지은 광복루(光復樓)다. 이 건물은 원래 공산성 내에 군사가 주둔했던 중군영의 문루였다. 이를 일제강점기 초기에 이곳으로 옮겨 세워 ‘웅심각’이라 불렀던 것을 광복 이후 다시 ‘광복루’라 고쳐 불러 지금에 이른 것이다.
▲역사 깊은 광복루
광복루라고 작명하게 된 것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4월에 백범 선생과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선생이 이곳에 와서 나라를 다시 찾았다는 뜻을 기리고자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광복루와 백범 김구
당시 공주를 방문해 누각에 오른 백범 김구 선생을 보려고 나온 환영 인파가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전해진다. 백범 선생의 나라사랑을 새삼, 그리고 흠뻑 느낄 수 있는 역사적 상징물이 아닐 수 없다.
▲공산성 임류각
백범 선생이야 삼척동자도 다 아는 우리 겨레의 스승이자 큰 별이지만 그와 동행했던 이시영은 누구였던가. 그는 한말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였다. 만주 신흥강습소를 설립하여 독립군 양성에 힘썼다. 임시정부, 한국독립당에도 참여했으며 1948년엔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공산성에서 바라본 공주시내 모습
이시영은 이른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불리던 명문가의 후손이었다. 하지만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자 형인 건영(健榮)·석영(石榮)·철영(哲榮)·회영(會榮)과 동생 호영(頀榮)과 함께 6형제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한 집안으로 유명하다.
▲공산성에서 내려다본 공주시 풍경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인 194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공산성에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절 영은사(靈隱寺) 외에도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들어차 있다. 백제 유적지구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기쁨과 자긍심까지 덩달아 누릴 수 있음은 물론이다.
▲금강의 푸른 물길이 충남 농촌의 옥토를 이루는 일등공신
공산성의 주문(主門)은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다. 공산성을 다시 찾은 날은 공산성과 해자의 ‘모라토리엄’을 살피고자 진남루가 아니라 일부러 공주시 옥룡동을 경유하여 올라갔다.
▲공산성은 산책에도 으뜸
모라토리엄(moratorium)은 전쟁과 지진, 경제 공황, 화폐 개혁 따위와 같이 한 나라 전체나 어느 특정 지역에 긴급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 국가 권력의 발동에 의하여 일정 기간 금전 채무의 이행을 연장시키는 일을 뜻한다.
▲공산성의 위용
공산성에 ‘모라토리엄’을 결부시킨 것은 본 기자의 역사에 대한 묵직한 채무(債務)와 관련된 소회 때문이다. 채무는 재산권의 하나인데 특정인이 다른 특정인에게 어떤 행위를 하여야 할 의무를 이른다. 즉 공산성은 지난 역사에 있어 우리 민족에게 힘이 없는 민족은 강대국에게 당한다는 묵직한 채무적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고운 꽃은 봄의 상륙을 알리고
더불어 평소 자강불식(自强不息)의 국방력 제고로 다시는 외침을 당하지 말아야한다는 교훈까지 파란 금강의 물길처럼 선명한 명징(明澄)으로 전하고 있었다. 공산성 주변에 곱게 피어오르는 꽃들도 그렇다며 미소로 화답하는 것 같다.
▲시원한 나무그늘은 공산성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식혀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