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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마음으로 보는 갈매못 순교성지

2021.03.11(목) 00:05:35 | 설산 (이메일주소:ds3keb@naver.com
               	ds3keb@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간재미로 유명한 오천항은 요즘에도 많이 잡히는지 항구에 늘어선 가게의 수족관에는 마름모꼴 몸집에 비해 큰 입을 뻐끔거리는 간재미가 한구석에 모여 있고 수돗가에는 키조개 손질로 바쁘다. 크고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는 항구와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 거리를 벗어나 천수만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물길을 따라 난 갈매못 성지 가는 길을 걸으면서 충청수영성이 있던 옛날에는 꽤 번성했을 이곳에 지금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여 살고 있을까 싶어 검색해 보았더니 보령시의 5.1%에 해당하는 2,664 가구 5,176명의 사람이 살아가는 한적하고 평화로운 동네다. 
 
도롯가에 늘어선 제법 굵은 벚나무에 물이 올라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망울이 제법 굵어졌다. 머지않아 겨우내 키워왔을 꽃망울을 터뜨려 세상을 온통 화사하게 장식할 찬란한 봄날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다.  
 
휘어진 길을 따라 한 굽이 돌았더니 물이 빠져 드러난 갯벌에 널브러져 있는 이끼 낀 폐목선이 눈에 들어온다. 한때는 거침없이 바다로 나아갔을 저 배는 언제부터 희망을 버리고 지금 이 모습대로 여기에 있었던 것일까. 이 쓸쓸한 풍경을 담기 위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삼각대를 세워놓은 사진가들이 물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갈매못 성지 가는 길에 본 폐목선
▲갈매못 성지 가는 길에 본 폐목선
 
바닷물이 빠지지 않은 항구 가운데는 빨갛고 커다란 기둥이 세워진 범상치 않아 보이는 용도로 쓰일 것 같은 작업선 네 척이 정박해 있다. 오천항은 이렇게 천수만에서 갈라진 물길을 따라 보령방조제까지 2.9km까지 별도의 방파제 시설이 필요 없는 천혜의 자연항구에 크고 작은 배들이 닻을 내리고 있다.
 
오천항에 정박 중인 배
▲오천항에 정박 중인 배
 
오천항에 정박 중인 배
▲오천항에 정박 중인 배
 
또 이 길을 걷다 보니 물 빠진 바닷가에서 굴을 따는 사람도 보이고, 바다 건너 천북면 학성리일 것 같은 바닷가 마을과 그 뒤쪽으로는 길게 뻗은 안면도가 옅은 해무에 덮여 있다.
 
오천항에 건너 천북면 학성리 바닷가
▲오천항에 건너 천북면 학성리 바닷가
 
굴 따는 사람
▲굴 따는 사람
 
그러다 나타난 갈매못 성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의외의 장소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바닷가 바로 곁에 있다. '목마른 말에게 물을 먹이는 연못'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갈매못은 산속 어디쯤에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줄곧 했는지 모르겠다.
 
갈매못 성지
▲갈매못 성지
 
어서 오라는 듯 두 팔을 벌리고 계신 예수성심상 옆에 천주교 병인박해가 절정으로 치닫던 1866년 3월 30일 수난 성금요일에 프랑스 신부 3명을 비롯한 다섯 성인이 순교한 장소임을 알려주는 순교터 둥근 자연석 위 비문에는 “성인들은 망나니의 칼날 아래 한 분 한 분 목이 잘렸고 순교자들의 솟아오르는 피는 이 바닷가 모래사장을 짙붉게 물들여 놓았다. 다섯 분의 머리가 기둥 위에 걸렸을 때 은빛 무지개 다섯 개가 하늘을 뚫고 내려와 주위를 놀라게 했다”라고 적혀 있다.
 
갈매못 성지 예수성심상
▲갈매못 성지 예수성심상
 
갈매못 성지 순교복자비
▲갈매못 성지 순교복자비
 
이분들이 이 갈매못에서 순교하게 된 것은 쇄국정책을 펼친 흥선 대원군이 군문 효수 장소로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프랑스 세실함장이 침범했던 외연도에서 가까운 오천의 수영을 선택했고, 병인년 3월은 고종의 국혼을 앞두고 있어 사형수들을 가급적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형을 집행하기 위해 충청수영성이 있는 이 바닷가를 택했다고 한다. 155년 전 지금과 같은 봄날에 이곳에서 있었던 끔찍했던 일을 떠올리니 두 손이 모이고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刑場으로 택한 곳은 바닷가 모래사장이었다”라는 글이 새겨진 야외 제대 검은 벽돌 판에 다섯 분의 초상화를 뵈니 오늘날 우리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주어지는 많은 것들이 앞서 어두운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목숨을 바친 분들의 계셨기에 가능했구나 싶고 특히, 조국을 떠나 멀리 타국에 와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그 마지막 봄날 떨어져 내린 꽃잎처럼 생을 마감했을 외국인 신부님들의 고난을 생각해 보게 한다.
 
갈매못 성지 기념관과 야외 제대
▲갈매못성지 기념관과 야외 제대
 
갈매못 성지 야외 제대의 새겨진 석판
▲갈매못 성지 야외 제대의 새겨진 석판
 
갈매못 성지 기념관 내부
▲갈매못 성지 기념관 내부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상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상
 
승리의 성모성당으로 오르는 길에 이제 조금씩 피기 시작한 동백꽃 빨간 꽃잎이 유난히 붉어 보이고 십자가의 길 1처에서 14처까지 작은 조각상은 아무런 말도 없고 설명문 하나 붙어 있지 않음에도 절절하게 다가온다.

승리의 성모성당 가는 길에 핀 동백꽃
▲승리의 성모성당 가는 길에 핀 동백꽃
 
십자가의 길(4처 예수님이 성모님을 만나심)
▲십자가의 길(4처 예수님이 성모님을 만나심)
 
십자가의 길(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십자가의 길(6처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림)

성모성당 돌계단에는 성인들이 순교한 지 150주년을 기념하여 봉헌한 다섯 분의 성인 흉상이 세워져 있다. 성 안 다블뢰 안토니오 주교, 성 오메트르 베드로 신부, 성 민 위앵 루카 신부, 성 장주기 요셉 회장, 성 황석두 루카 회장. 또박또박 그리고 나직하게 다섯 성인의 이름을 읽어보게 된다.

승리의 성모성당 앞 다섯 성인상
▲승리의 성모성당 앞 다섯 성인상
 
이곳 갈매못 성지에서 성인들의 유해가 옮겨진 길을 따라 서짓골 성지까지 성지 순례길이 조성되어 있어 순례길을 걷는 사람들이 확인 스탬프를 찍는 곳도 있고 순례자들이 쉬어 갈 수 있는 휴게소도 있다. 누군가 휴게소 유리병에 꽂아둔 동백꽃도 참으로 붉다.

성지 순례 휴게소 동백꽃
▲성지 순례 휴게소 동백꽃
 
성지 순례에 관심이 많아 갈매못 성지 입구에 있는 성지 순례길 안내판에 적힌 “이 길을 지나셨던 신앙의 선조들을 생각하며 경건하게 순례하시면서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가지기 바란다.”라는 글과 홈페이지에 갈매못 성지 담당 신부님의 “눈으로 보면 관광이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순례”라는 글에 공감하면서 성지를 나오는데 성지 바로 앞바다에 곧 바다로 나갈 것 같은 작은 배가 정박해 있어 자꾸 눈길이 간다. 아마도 안내판에서 읽은 네 분의 유해를 “신자들이 풍랑과 뇌우 속에서 바닷길과 산길을 통해 운구하여 서짓골에 안장했고 두 달 후에 운구한 신자들도 발각되어 순교하였다.”라는 대목 때문인 것 같다.
 
성지 순례길 안내판
▲성지순례길 안내판
 
갈매못 성지 앞바다에 떠 있는 배
▲갈매못 성지 앞바다에 떠 있는 배

우리 충청지방에 특히 많은 성지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은 언제나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오게 되는데 다섯 분 성인의 순교 현장인 이곳 갈매못 성지를 나서는 길은 마치 무거운 납덩어리를 가슴에 안고 나오는 것 같다. 그 무거움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갈매못 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이 기사는 갈매못 성지 홈페이지(http://galmaemot.or.kr/content/mn1sub1)를 일부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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