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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해의 아름다운 포구 오천에 반하다

2021.03.04(목) 18:50:38 | 설산 (이메일주소:ds3keb@naver.com
               	ds3keb@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보령의 북쪽에 있는 작은 포구 오천으로 가기 위해 21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 보니 바람결이 얼마 전보다 한결 따뜻하다. 이제 봄이 가까이 와 있는 것 같은 기운이 느껴진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한 번 내리고 나면 성큼 다가올 것만 같다. 
 
광천을 지나고 청소면을 지나니 보령방조제가 보이고 바다로 향한 언덕 위에 영보정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영보정을 보면서 언덕을 한 굽이 돌아 도착한 충청수영성 주차장에는 의외로 찾아온 사람들이 많은지 차들로 가득하다.
   
수줍은 듯한 그 빨간 꽃을 피우기에는 아직은 이른 동백나무 두 그루가 보초처럼 양쪽에 서 있는 아치형 망화문을 지나다 고개를 돌려 보면 오랜 세월 이 문을 드나들던 사람들을 지켜보았을 것 같은 파란 하늘 끝에 걸린 고목의 앙상한 가지가 애잔해 보이고 굵은 나무기둥에 귀 기울이면 옛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충청수영성 망화문
▲충청수영성 망화문
 
망화문 옆 고목
▲망화문 옆 고목
 
성안으로 들어가 이 성문을 중심으로 좌우 100m 정도 축성 당시 석축이 남아 있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니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번듯한 한옥이 한 채 나타난다. 수영에서 가난한 백성을 구제할 목적으로 곡식을 꾸어주고 거두어들이던 진휼청으로, 성안의 장교청·공해관과 더불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이라고 하니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수영이 폐지되면서 영보정을 제외하고 허물어진 건물에 대한 복원을 제대로 하지 않아 이제 막 파랗게 돋아나는 풀로 덮인 성안 공터가 쓸쓸해 보인다. 그래서 시간을 거슬러 조선시대에 와 있는 것이나 아닌가 싶은 착각이 더 강해진다.
  
진휼청
▲진휼청
 
진휼청과 성벽
▲진휼청과 성벽
 
조선시대 서해의 해군사령부 역할을 했던 충청수영성은 거북이 모양의 지형을 이용하여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조선 중종 4년(1509)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쌓아 올린 석성으로 둘레는 1,650m로 높은 곳에 치성 또는 곡성을 두어 바다와 섬의 동정을 살핀 해안방어의 요충지이다. 충청수영성은 4대 성문과 소서문이 두었고 성내에는 동헌과 아사를 비롯 38채의 공해를 갖고 있었으며, 본영인 이곳에만 3300명의 수군이 주둔했던 큰 규모였다고 한다.
 
영보정과 성벽
▲영보정과 성벽
 
바다로 향한 성벽 끝에 서서 오천항을 내려다본다. 천수만의 물길을 따라 내륙 깊숙하게 물이 들어와 별도의 방파제를 축조하지 않아도 파도와 풍랑으로부터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수 있었던 천혜의 자연 항구 오천항은 백제 때부터 중국과 교역하며 ‘회이포’라 불리었고, 고려시대에는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많은 군선을 두었으며, 조선 세조 12년(1466년)에 수영을 설치하여 서해안을 방어하였다고 한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바다는 말이 없고 말 없는 바다에는 요트를 비롯해 크고 작은 배들이 떠 있다.
 
오천항에 정박 중인 배들
▲오천항에 정박 중인 배들
 
이곳에서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촬영되었던 모양이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 촬영지라고 팻말이 붙어 있는 곳은 틀림없이 경치가 좋거나 느껴지는 무엇인가가 있는 듯한데, 해 질 무렵 이곳에서 보는 노을에 물든 하늘과 바다는 더할 나위 없이 고울 것 같다.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표지판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표지판
 
딱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충청수영성의 대표 시설이라는 영보정은 1504년(연산군 11) 충청수사 이량에 의해 건축되었다가 1878년(고종15) 화재로 소실된 이후 137년 만인 2015년에 다시 복원되었으며, 복원된 영보정은 팔작지붕 형식으로 정면 6칸, 측면 4칸에 넓이가 175.44㎡ 규모라고 한다.
  
영보정
▲영보정
 
측면에서 본 영보정
▲측면에서 본 영보정
 
정자에 올라 천천히 한 바퀴 둘러보니 조선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경치를 즐기며 시문을 남길 만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다산 정약용은 '세상에서 호수·바위·정자·누각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을 으뜸으로 꼽는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해가 질 무렵 하늘과 바다에 펼쳐지는 저녁노을이 물드는 풍광을 보면 누구라도 이런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 같다. 우리는 오늘 과연 온전하게 붉은 노을이 펼쳐지는 광경을 보게 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영보정
▲영보정
 
충청수영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령 천수만 일대와 오천항 주변의 경관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충청수영해양경관전망대가 있고, 전망대로 향하는 상사봉 등산로는 보기보다 꽤 가파르다. 색바랜 청미래덩굴 열매를 몇 번 보면서 산길을 따라 전망대에 올라보니 천수만 일대의 크고 작은 섬들과 멀리 안면도와 원산도를 잇는 원산대교, 충청수영성과 곧게 뻗은 보령방조제와 방조제 건너 천북면 학성리가 눈에 들어온다.
 
충청수영해양경관전망대
▲충청수영해양경관전망대
 
충청수영해양경관전망대
▲충청수영해양경관전망대
 
전망대에서 본 영보정과 오천 앞 바다
▲전망대에서 본 영보정과 오천항 앞바다
 
전망대에서 본 천수만 섬들
▲전망대에서 본 천수만 섬들
 
전망대에서 본 원산대교와 인근 섬들
▲전망대에서 본 원산대교와 인근 섬들
 
전망대에서 본 천수만과 오천항 일대
▲전망대에서 본 천수만과 오천항 일대
 
전망대에서 보는 충청수영성 언덕 아래 간재미로 유명한 오천항은 아담하다. 천혜의 자연항구로 조선시대 서해의 해군사령부가 있을 정도로 번성하여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은 오천과 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러다 필요한 곳에 방파제를 쌓아 항만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발달한 근대에는 이렇게 만을 따라 내륙 깊숙이 있는 들어와 있는 것이 오히려 더 큰 항구도시로 발전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오늘날 오천은 한가한 풍경들이 남아 있는 아름다운 자연 포구로,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애써 찾아오고 있는지도 모른다.
 
전망대에서 본 오천항
▲전망대에서 본 오천항
 
오전에는 맑고 푸르던 하늘이 오후 들면서 구름이 많이 껴 제대로 된 노을을 볼 수 있으려나 우려를 하면서 전망대를 내려와 소성삼거리에서 천북면 학성리를 잇는 보령방조제 인도를 따라 걷는다. 그러는 사이 잠깐 구름 사이로 내민 설핏한 해가 그려낸 노을을 배경으로 한 영보정이 뚜렷하다. 바다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하늘과 바다를 물들이는 노을을 보고 싶었는데, 오늘은 여기까지만 보여줄 모양이다.
 
방조제에서 본 영보정
▲방조제에서 본 영보정
 
방조제에서 본 영보정과 오천항
▲방조제에서 본 영보정과 오천항
 
방조제에서 본 오천항
▲방조제에서 본 오천항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이나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나 마을에 좋은 감정이 생기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대단한 풍경이 아니더라도 정감이 가는 마을이 있는데, 볼거리 많고, 이야깃거리가 많은 이 아름다운 오천을 나는 아무래도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충청수영청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661-1 
 
보령방조제
-충남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이 기사 작성에 보령시청 홈페이지(https://www.brcn.go.kr/tour.do)와 네이버 지식백과를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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