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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특제 공주 명물 '비과'를 아시나요?

2021.02.02(화) 09:24:35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방송 패러다임에까지 변화를 초래한 듯하다. 국외 촬영 여건이 수월치 않고, 인파가 몰리는 장소에서 방송 진행이 힘들어지면서 '레트로(복고주의)' 바람이 다시 이는지 주말에 TV 채널을 돌리다 보니 1990년대 춤꾼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Ref, 룰라, 코요테, 듀스, 클론 등의 노래는 지금 들어도 세련된데다 역동적인 안무까지 자동으로 떠오른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시기에 춤 꽤나 춘다는 젊은이들이 서울의 모 유명 클럽에서 실력을 쌓고 겨루며, 한 시대를 풍미하는 가수로 성장하는 드라마틱한 과정 및 에피소드를 전해주고 있었다.
 
이러한 1990년대의 대중문화는 만화가 '김수용'에 의해 1997년 12월~2004년 6월까지 연재되어 전 24권으로 발행되기에 이른다. 만화 '힙합'은 2000년 문화관광부와 일간스포츠 주최의 '오늘의 우리만화' 수상 및 2004년 제7회 부천만화축제 청소년만화상을 수상했다. 백댄서이자 만화가인 김수용은 꾸준히 당시의 청년 힙합 문화를 기록해 두었고, 현재 그가 기록한 영상물과 만화는 훌륭한 '힙합 아카이브'로 평가받고 있다.
 
공주에는 60~90년대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먹거리가 있었다는데, TV를 보고 있자니 그 기록의 부재가 더욱 아쉽기만 했다.

추억의 낭만 147
▲2020년, 옛 공주 상권의 중심지였던 '중동 147'번지에 스토리텔링이 입혀진 안내판이 세워졌다
 
공주시 원도심의 중동 147번지 일대는 일제강점기 공주 갑부 '김갑순'에 의해 사설시장이 개설된 곳이다. 2020년, 공주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중동 147번지 골목 안에 있는 공영주차장 인근에 안내판 하나가 세워졌다. 그곳에는 대략 30~40년 전, 이곳을 대표했던 상점들의 위치와 간략한 소개가 적혀 있다. 지금의 50~70대들이 중동 147번지에서 유소년기나 청년기를 보낸 흔적이 대부분 사라져 아쉬워하던 차에 안내판을 통해 유익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공주시 중동 먹자골목 3길 전경
▲공주시 중동 먹자골목 3길 전경 
 
특제공주명물39비과39를아시나요 1▲제과제빵점 '칠성당'에서 만들어 유명했던 '유과(乳菓)'는 아이들 간식인 계란과자맛이라고 한다
 
중동 147번지는 크게 3개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그중 '먹자골목 3길'은 비화(秘話)가 넘쳐나는 곳이다. 그곳은 동서가구점을 비롯한 가구점이 즐비해서 '가구점 골목'으로 불렸었다. 또 한때는 중식당인 신흥루·신흥원·복산춘·부흥루가 자리해 '중국집 골목'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 골목은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즐겨 찾던 곳으로 그들이 자주 이용하는 점포가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고 한다. 공주의 '아이스께끼' 공장의 시초는 호서극장 인근의 '대통사'로 알려져 있는데, 이후 태극당·칠성당이 이 골목에 들어서며 계보를 잇게 된다. 태극당은 아이스께끼와 찹쌀떡, 일명 '모찌(もち)'로 유명세를 떨쳤고, 칠성당은 아이스께끼와 일본식 '센베이' 등으로 명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이 두 곳은 학생들이 모일 만한 곳이 많지 않던 당시에 미팅 장소로 이용되곤 했단다. 
 
복제과 포장지의 전화번호로 유추하건데,
▲지역번호를 광역화한 것이 1999년 9월 29일이므로 복제과 포장지의 전화번호를 단서로 보면, 그 이전까지는 영업한 것으로 추측된다
 
공주시 큰사거리에 있었던 복제과 자리에는 죽집이 들어서 있다.
▲공주원도심 큰사거리에 있었던 '복제과' 자리에는 죽집이 들어서 있다
 
공영주차장 안내판에 의하면, 먹자골목 3길에는 '복제과'라는 유명한 제과제빵점도 있었다. 그런데 이리저리 수소문하니 인근에서 장사하는 분들도, 70대 연세의 공주토박이 분들도 "먹자골목 3길에 '복제과'가 있었다고?"라며 반문하신다. 대신 공주 큰사거리 코너의 죽(粥)집이 위치한 곳에서 홀쭉하신 영감님과 작고 통통한 마나님이 복제과를 운영했다는 답변을 주셨다. 복제과 주인은 제과점을 접고, 지금의 40~50대들도 기억하는 분식집 '풍미당'을 차린다. 몇 년 성업하다 신도심인 신관동으로 점포를 이전했고, 이후 그마저도 그만두고 대전으로 이사를 했다는 후문이다.
 
풍미당이 사라진 이 건물에는 공주원도심의 마지막 개인 빵집이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베이커리'가 들어선다. 그러나 대형 프렌차이즈인 P사, T사가 인근에 생겨나면서 결국 빵집은 문을 내리고 죽집으로 업종 변경을 하고 만다.
 
옛 복제과 건물의 일부가 헐리고, 공주산성상권사업단에서 2021년 사업을 위해 리모델링 중이다.
▲공주산성상권사업단에서 옛 복제과 인근의 건물을 헐고, 2021년 사업을 위해 리모델링 중이다
 
2020년 연말부터 먹자골목 3길에 있었다는 복제과 인근 건물에 리모델링이 시작됐다. 공주산성상권활성화사업단은 장충당오천평왕족발에서 실내포차 '봉자네'로 간판 상호가 바뀌어 온 이 건물에서 새로운 사업을 하게 된단다. 우연히 공사 현장을 지나다 1t트럭 가득 쏟아져 나온 폐기물 더미에서 옛 복제과 상호가 적힌 포장지를 발견하게 됐다. 공영주차장 안내판에 적힌 대로 먹자골목 3길에 복제과가 자리한 게 맞다는 심증이 굳혀지는 순간이다.
 
유과(乳菓)는 '유가'라는 상표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유과(乳菓)는 '유가'라는 제품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복제과 간판 상품이었던 '비과'는  탈지분유를 넣어 만든 캐러멜이다.
▲복제과 간판 상품은 '비과'라는 캐러멜로 이와 비슷한 맛이 난다는 유가는 탈지분유를 주재료로 하여 만들어졌다
 
복제과의 대표 제품은 이름도 생소한 '비과'란다. 몇몇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의 말씀으로는 비과는 성인 남자 손톱 크기 만한 캐러멜이라고 한다. 한자 병기가 없는데다 검색이 안 되어 애를 먹인 비과는 시중의 마트와 전통시장에서 유사 상품인 '유가'라는 이름으로 팔리고 있었다. 비과의 2배 크기의 캐러멜을 '유과(乳菓)'라고 한다니 절반 크기를 떠올리면 비과가 되는 셈이다.
 
일본에 달걀과 우유를 원재료로 하는 카스텔라에 가까운 유과(乳菓)는 있다. 그러나 칠성당이나 복제과에서 팔던 캐러멜인 유과. 비과와의 연관성은 재료 말고는 찾기 어렵다. 비과는 중국에서도 여전히 팔리고 있다고 하니 이름의 유래를 찾아보면 재미난 연결고리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제공주명물39비과39를아시나요 2
 
공주특제명물을 만들던 '복제과'근제의 마음가짐
▲공주특제명물을 만들던 복제과 근제의 비과를 포장하던 녹말지와 상품 특징이 적힌 포장지
 
먹어본 적이 없으니 맛에 대한 평가는 전달하기 힘들지만, 복제과 비과의 장점은 그 포장지에 적힌 안내문구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시판되는 유가의 원재료는 식물성 크림 탈지분유, 물엿, 설탕, 식물성유지, 마가린 등이다. 물론 이 재료만으로도 충분히 맛있다. 문제는 인체 유해 여부다. 복제과에서 '삼가 만들었다'는 '근제'라는 표현을 써가며 만든 비과는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은 자연 원료라 구입하고 바로 먹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바른 먹거리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작금의 사회 분위기에 부합하는 간식이다. 특히 '특제 공주 명물'이라는 단어는 지역 특산물의 활용처에 많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공주원도심 중동 먹자골목 3길에 있었던 태극당, 칠성당, 복제과를 아는 세대들은 그들만의 문화 공유가 가능한 듯 보인다. 서울 이태원의 클럽 문화가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긋게 되고, 만화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시켰듯 앞으로 중동 먹자골목 3길의 3대 제과점의 소소한 기록들이 잘 모아져 새로운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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