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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산책하면서 백제 역사를 공부하는 공주 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모형무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송산리고분군 전시관

2021.01.29(금) 13:57:50 | 유리향 (이메일주소:dried12@naver.com
               	dried1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젊은 시절 공주를 찾았을 때는 직접 무령왕릉 내부로 들어가서 투명한 차단창 너머에 있는 무덤의 모습을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산책하면서백제역사를공부하는공주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1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일반관람객의 출입을 막아 놓은 대신에 똑같은 크기와 구조로 모형전시관을 만들어 백제시대 무덤들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꾸며 놓았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소수의 사람들들만이 방문하기 때문에 입장료를 받고 있지 않았습니다.
 
산책하면서백제역사를공부하는공주송산리고분군무령왕릉 2
 
사적 제13호로 지정된 송산리고분군은 공주시 금성동 일대 정지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발 75m 정도의 낮은 구릉에 웅진 백제시대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들 수십여 기가 발견되거나 발굴되고 있습니다. 고분들 가운데 주인이 밝혀진 무령왕릉에서 수많은 국보와 보물이 쏟아져 나와 당시의 모습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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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 모형전시관 내부에 들어서니 송산리고분군 발굴 및 보존 관리 연표가 상세히 게시되어 있었습니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곳에 백제 왕릉이 있으나 어느 왕의 것인지 알지 못한다고 기록돼 있어 왕릉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
 
일제강점기인 1927년에 일본인 가루베 지온이라는 사람에 의하여 송산리고분군의 위치가 확인되고 수년 간에 걸쳐 발굴과 조사 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해요. 그런데 발굴이라기보다는 거의 도굴 수준이어서 무덤이 파괴되고 유물들이 일본으로 무단 반출되어서 원형을 복원하기 쉽지 않다고 하니 안타깝기 짝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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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송산리 5호분 모형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무덤 입구가 매우 낮아서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들어갔지만 머리를 부딪치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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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분은 송산리고분에서 발견된 대표적인 굴식돌방무덤이라고 해요. 깬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송산리 5호분은 1932년 송산리고분군 관람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미 일본인에 의해서 도굴이 된 뒤라서 유물은 많이 출토되지 못했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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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분은 5호분과는 달리 벽돌로 정교하게 쌓아 놓았군요. 송산리 6호분은 무령왕릉 이전에 발견된 백제 최초의 벽돌무덤이며,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 벽화무덤이라고 해요. 5호분과 마찬가지로 1932년 고분군 정화작업 중 발견되었는데, 구조로 보아 왕릉이나 무령왕 친모의 능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 주인을 아직 밝히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송산리 고분군 대부분은 도굴이 되어서 그 원형이나 주인을 알 수 없지만, 무령왕릉은 도굴되지 않고 원형이 보존되어서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무령왕릉은 1971년 배수로 공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되었는데, 무덤이 통째로 지하에 있었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도굴과 일제강점기의 약탈을 견딜 수 있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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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이 발견되기 이전까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무령왕이 지금과 같이 유명해진 것은 바로 이 무덤이 발견된 이후라고 합니다. 무령왕은 백제 제25대 왕으로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졌던 백제를 안정시킨 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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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분이 무령왕의 것으로 확인된 것은 바로 이 묘지석이 무덤 안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지석에는 무령왕을 '영동대장군백제사마왕(寧東大將軍百濟斯麻王)'으로 적고 있으며, 그가 62세 때인 계묘년(癸卯年) 오월병술삭칠일(五月丙戌朔七日)에 죽었고, 2년 뒤인 525년 을사년(乙巳年) 팔월계유삭십이일(八月癸酉朔十二日)에 대묘에 안장했다고 기록돼 있다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무령왕'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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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당시 무령왕릉의 모습을 복원해 놓은 모습입니다. 입구에 무덤을 지키는 석수인 진묘수가 자리하고 왕과 왕비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묘지석이 두 개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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썩지 않고 남아서 흩어져 있는 목관의 일부와 왕과 왕비가 누워 있던 자리에 각종 유물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습니다. 발견된 유물 중에서 무려 12점이나 국보로 지정될 정도로 백제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출토된 유물들은 대부분 국보와 보물 등으로 지정되어 공주국립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제 직접 송산리고분군으로 발길을 옮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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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 앞에는 세계유산 백제역사 유적지구 송산리고분군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송산리고분군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유적지구로 선정되어 공산성 마곡사와 함께 공주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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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만한 곡선으로 봉긋 솟아 있는 봉분 두 개 중 왼쪽이 6호분이고 오른쪽이 5호분입니다. 고분군 모형전시관에서 본 바로 그 무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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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의 입구입니다. 지금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지만, 옛날에는 직접 들어갈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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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4개의 봉분이 나란히 있는데, 오른쪽부터 1·2·3·4호분입니다. 허물어져 형태를 알 수 없던 것을 복원하여 봉분을 만들어 놓은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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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분군을 한 바퀴 돌아서 내려오는 길에 추정고분 31이라는 팻말을 발견하였습니다. 송산리고분군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이렇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허물어지고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도굴꾼들과 일본인 등에 의하여 무참히 파헤쳐지고 유물이 무단 반출되고 말았지요. 앞으로는 더 철저한 발굴 작업과 고증을 통하여 잊혀진 웅진 백제시대의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거진 숲길을 따라 송산리고분군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정신과 육체 건강에 참 좋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이곳에서 정지산유적지와 공주국립박물관에 이르는 숲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따스한 봄이 오고 코로나19가 물러가면 웅진 백제시대의 찬란했던 문화를 느끼며 세계유산 송산리고분군 주변을 거니는 것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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