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덕산향교 전교기록·생전사진도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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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향교 서재에 걸린 성주록 선생의 사진. ⓒ 무한정보신문 |
매헌 윤봉길 의사 스승인 매곡 성주록 선생의 구체적인 행적이 새롭게 밝혀졌다.
그가 7년 동안 덕산향교 최고 어른인 ‘직원(直員, 현 전교)’이었다는 기록과 함께 생전사진이 나와 생애와 활동 등을 연구할 수 있는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매곡 선생은 조선학자 성삼문의 후손으로 충남 예산군 덕산면 둔2리에서 글방 오치서숙을 운영하며, 덕산공립보통학교를 자퇴한 뒤 찾아온 윤 의사에게 1921~1925년 한학, 한시, 사서삼경 등을 가르쳤다.
덕산향교에 따르면 향교의 총책임자(도유사(都有司), 직원(直員), 전교(典校))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덕산향교지 역대임원록 가운데 59쪽 직원록에서 ‘성주록, 계유, 갑술, 을해, 병자, 정축, 무인, 기묘, 1933년, 창녕인’이라는 기록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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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산향교지 역대임원록에 성주록 선생의 기록이 있다. ⓒ 무한정보신문 |
그가 1933년 계유년부터 1939년 기묘년까지 9대 직원이었다는 내용이다. 또 ‘9대 직원 성주록’이라고 적힌 흑백사진이 유생이 거처하며 공부하는 서재(西齋) 벽면을 채운 ‘역대전교사진’ 중 첫 번째로 걸려 있다.
이병우 장의는 “예부터 향교의 가장 어른을 도유사라고 불렀다. 직원은 1910년부터 쓰인 단어로, 일제강점기 향교의 가치와 도유사의 의미를 격하시킨 것”이라며 “광복 이후 1948년부터는 전교로 고쳐 부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주록 선생이 덕산향교 직원을 지냈다는 사실은 당시 지역에서 존경받는 선비였으며, 지식인들의 우두머리로서 학식과 리더십을 겸비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라며 “윤 의사를 상해로 향하게 하는데 성주록 선생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 지역사회가 연구해야 할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