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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국과 무역이 활발했던섬

충청이 품은 섬 이야기 (29)태안 신진도

2020.11.26(목) 13:53:39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태안 신진도 전경

▲ 태안 신진도 전경



신진대교 개통 안흥-신진도 연결
섬 개발되고 관광객 늘며 ‘활기’

 
섬의 전체 면적은1.43㎢이며, 해안선길이 7㎞, 최고 높이 132m, 인구는 480가구 950명이다.

고려 성종 시절에는 해안을 수비하기위한 관청인 ‘만호청’을 설치하면서부터 신진도에 주민들이 살기시작했다고 했다. 원래는섬이었으나 지금은 신진대교라는 다리로 인해 섬의 지위에서 벗어났다. 안흥~신진도를 연결하는 신진대교는지난 1995년에 개통되었다.

신진도는 어업 전진기지이며 주말에는 관광객과 낚시객들이 붐빈다. 신진대교 개통 이후 섬이 개발되면서 숙박과 음식점이 활기를 띄고 인구가 증가가 많았다. ‘신진도(新津島)’라는 이름의유래는 ‘새나루’에서 시작된다. 오래전육지 사람과 섬사람이 오가면서 나루를 하나 만들었는데 ‘새나루’라 불렀다. 신진(新津)은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신진도가 개발되기 이전에 안흥항은 태안군 일대에서 가장 큰 항구였다. 안흥항은 고려와 조선 왕조 시절에 번성한 항구로, 중국의 산동 반도와 가까워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안흥항 바로 앞 신진도에 지금도 중국 성인 퉁씨가 많이 가주하는것을 보아도 중국사람들의 많이 드나들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왕조를 건국한 태조 이성계는 이 안흥 항구를 이용하는 명나라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얻기 위해 성을 쌓고, 성 안에는 호화스러운 집들을 지었다고 한다. 명나라 사신들은 안흥 항구를 보고 “이성계가 나라를 다스리더니 조선이란 나라가 참 잘 사는 나라가 되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과시와 홍보용으로 세워진 안흥성은 조선 오백년 동안에 일시적인 영화를 누렸으나 갑오년의 동학혁명 때에 대부분 망가져 버렸고 네 개의 문도 다 무너졌으며 집들 또한대부분 헐어졌다.

이제 안흥항은 신진도가 연륙되면서 관광객들이 이곳 안흥과 신진도를 많이 찾는다.

신진도는 사계절 내내 낚시꾼들이 몰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신진도 주변은 넙치와 우럭, 광어 등이많이 잡히고 갯바위 낚시를 통해서는 놀래미, 고등어 등을 낚을 수 있다. 근해에서 조금 더 나가면갈치, 넙치와 우럭이 많이 잡힌다. 갯바위에서는 감성돔(봄)·숭어(여름)·우럭·백조기(가을) 등이 많이낚인다.

수도권과 가까워 금요일이 되면이곳을 찾는 관광객들과 낚시꾼들이 많다. 신진도는 안흥과 연륙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부담 없이 가 볼만한 곳이다.
/이재언 목포과학대 섬해양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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