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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인류 사냥의 기원, 한눈에 보다

공주시 석장리박물관의 '사냥혁명' 전시회, 아이들과 꼭 가보세요

2020.11.12(목) 16:56:53 | 점생이 (이메일주소:uiweyoi39@hanmail.net
               	uiweyoi3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인류는 처음부터 사냥할 줄 알았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초기 인류는 키가 100cm 정도였고, 사고능력이 발달하지 않아 단순한 찍개 정도만 제작 가능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냥꾼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맹수의 사냥감이 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인류가 선사시대에 사냥을 당하던 존재에서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우리가 오늘날 스마트폰을 발명해 쓰는 것보다 훨씬 더 엄청난 혁명이었다. 왜냐하면 동물과 비슷한 존재 중 하나였던 사람은 사냥을 하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공주 석장리박물관의 선사인류 미니어처
▲공주 석장리박물관의 선사인류 미니어처
 
인류사냥의기원한눈에보다 1
 
박물관 앞으로 유유히 금강이 흐른다.
▲박물관 앞으로 유유히 금강이 흐른다
 
선사인류의 동물사냥 미니어처
▲선사인류의 동물사냥 미니어처 동상
 
공주시 석장리박물관에서는 지난 7월에 개막해 내년 2월까지 선보이는 ‘사냥혁명’ 특별전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구석기인들의 진화를 재촉한 것이 사냥임에 주목하고 그들이 남긴 사냥도구를 통해 구석기시대를 쉽고 재미있게 배우도록 기획됐다.
  
전시는 '인간, 사냥, 혁명적 삶의 변화'를 주제어로 구석기시대 초기인류의 삶, 육식의 시작과 사냥도구의 발명, 능숙한 사냥꾼으로 진화하는 과정 등으로 구분해 사냥과 관련된 도구와 동물뼈, 그리고 사냥이 현대의 문화가 되는 과정을 전시하고 있다.
 
전시유물은 국립공주박물관 등 전국 9개소의 소장기관에서 대여했으며, 단양 수양개 출토의 슴베찌르개, 독일 쉐닝겐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 나무창(복원) 등 약 200여 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다. 유물 이외에도 구석기시대 사냥 모습 벽화를 재현한 애니메이션, 구석기시대 인류의 사냥 생활을 담은 홀로그램, 구석기시대 나무창을 직접 들고 사진 촬영할 수 있는 포토존까지 마련돼 있다.
  
사냥혁명 전시실
▲사냥혁명 전시실
 
선사인류의 두개골
▲선사인류의 두개골
 
선사인류의 두개골에서 나온 뇌의 모형
▲선사인류의 두개골에서 나온 뇌의 모형
 
구석기인이 만든 예술품
▲구석기인이 만든 예술품
 
선사인류의 예술품 만들기 기원 소개
▲선사인류의 예술품 만들기 기원 소개
 
170만년 전 즈음의 초기 구석기 인류는 풀을 뜯거나 동물의 뼈, 단단한 견과류 등 딱딱한 물체를 깨뜨릴 수 있는 찍개를 사용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필요에 의해 땅을 판다고 했을 때 사람의 손만으로는 땅을 파기 어렵다. 그때 사용된 것도 찍개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찍개 외에도 던져서 무언가를 맞히기 위해 팔맷돌도 사용하였다.
  
우리가 흔히 ‘구석기시대의 석기’라고 하면 주먹도끼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주먹도끼는 찍개보다 정형화된 형태를 지녔고, 이는 석기 제작이 능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먹도끼는 특히 인류가 주먹 만한 크기로 다듬은 공 모양의 석기로, 원심력과 부심력을 이용해 짐승을 잡거나 찌르는 면과 찍는 면을 가지고 있는 만능 석기다. 이것을 이용해 사냥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보다 예리하고 뾰족한 찌르개를 이용해 동물을 살생하는데 사용하였다고 한다. 또한 뭉툭하던 기존의 석기와 달리 날카롭게 제작한 찌르개도 이용하기 시작한다.
 
매머드 치아의 모형
▲매머드 이빨 모형

아시아코끼리 치아의 모형. 치아가 어른 주먹보다 크다.
▲아시아코끼리 이빨 모형, 치아가 어른 주먹보다 크다

여러 동물들의 치아와 뼈. 들소 아래턱, 뿔양치아. 매머드 치아
▲여러 동물들의 이빨과 뼈, 들소 아래턱, 뿔양치아, 매머드 이빨 등

또 다른 전시실
▲또 다른 전시실
 
유럽 지역에서 발견된 부싯돌
▲유럽 지역에서 발견된 부싯돌
 
종류별 쓰임새별 다양한 석기들.
▲종류별·쓰임새별 다양한 석기들
 
석기를 만들어 쓰는 과정에서 선사인들도 종류에 맞게 구분해서 제작한 것 같다.
▲석기를 만들어 쓰는 과정에서 선사인들도 종류에 맞게 구분해서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중기 구석기시대 인류는 날카로운 찌르개를 이용하여 동물을 살생할 수 있게 됐고, 불을 이용하여 도구와 생활을 발전시키며 진보한 사냥기술과 더욱 안정된 환경을 확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에는 돌에 나무나 다른 도구를 연결하여 새로운 무기(슴베찌르개)를 만들 정도로 인류의 인지 능력이 향상됐다고 한다. 석기로 해체된 흔적이 남은 동물의 뼈를 통해 구석기 인류가 고기를 섭취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구석기 인류는 사냥으로 고기뿐만 아니라 동물의 뼈도 얻을 수 있었는데, 단단한 동물의 뼈를 이용하여 다시 사냥도구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시관에서는 사슴의 뿔과 멧돼지 머리뼈도 볼 수 있다. 인류는 이렇게 동물의 머리뼈와 가죽을 둘러쓰고 동물의 근처까지 다가간 뒤 사냥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의 총이나, 적어도 그 이전에 발명된 활이 있기 전에는 최소한의 도구로 사냥을 해야 했기 때문에 동물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 이런 위장기술도 발달했을 것이다.
 
그 후에 구석기인들은 동물에 접근하지 않고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사냥감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석기가 아닌 나무로 사냥 도구를 만들게 되었고, 초기에는 쫓아가서 찌르는 것이 전부였다면, 나무창을 던지는 과정을 거쳐 그 후에는 활을 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또 이렇게 사냥을 통해 짐승을 포획한 후에는 동물의 뼈를 석기로 다시 가공하기 위해 뼈 도구나 작살 등을 개발하게 되었다.
 
다양한 종류의 석기들
▲다양한 종류의 석기들
 
선사인류가 석기를 이용해 바윗돌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선사인류가 석기를 이용해 바윗돌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선사인류의 움막 주거생활.
▲선사인류의 움막 주거생활.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해체하고 있다.
▲사냥으로 잡은 동물을 해체하고 있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의 발자국 화석 모형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발자국 화석 모형

인류가 사냥을 한 것은 당연히 먹거리 확보가 이유였고, 먹거리 중에서도 단백질이 필요해서였다. 사냥을 하기 전에는 다른 동물이 남긴 것을 섭취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사냥을 시작하면서 생활방식이 바뀌고 단백질 섭취가 늘어나면서 인류의 뇌도 더 발달하기 시작해 진화 과정에서 훨씬 빠른 속도를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래서 사냥이야말로 지금까지 인간이 성취한 가장 성공적이며 지속적인 적응이라고 볼 수 있다.
  
거대한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쫓기는 등 '당하기만' 하던 인류가 그 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부터 본격적인 '자연의 지배자'로 등극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지점의 결정적인 포인트는 동물을 효율적으로 사냥하고 죽이기 위해 인류가 두뇌를 쓰기 시작했고, 그것은 '도구'를 만들어 쓰는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그 도구가 또 진화해 나중에는 창과 활의 발명으로 이어지고, 오늘날 총으로 결과된 것이다.
  
전시는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어서 구석기시대 인류의 생생한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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