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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논산 고건축에서 엿보이는 한옥의 멋과 우수성

2020.11.17(화) 19:06:56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영남지방과 충남지방의 고건축 배치 평면은 확연하게 차이가 보인다. 산지가 많은 전자는 집중적이고 폐쇄적이지만, 평지 지형이 많은 후자는 분산적이고 개방적으로 논산의 '돈암서원'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오늘은 이러한 지역적 건축물의 입지나 배치는 별도로 하고, 충청지역의 서원 중 훼철되지 않은 돈암서원과 노강서원을 비롯한 논산의 종학당과 명재고택을 통해 우리나라 목조건물의 구조적 특징을 엿보고자 한다.
 
종학당
▲종학당(宗學堂),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52호로 지정되었으며 논산시 노성면 병사리에 위치해 있다
 
인조 21년(1643) 윤순거(1596~1668)가 건립한 종학당은 파평윤씨 문중의 자녀와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이 합숙하며 교육을 받던 도장으로, 화재로 학사건물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대에 다시 세워졌다고 한다.
 
노강서원
▲노강서원(魯岡書院)은 2017년 8월 31일에 사적 제540호로 지정되었다
 
'노강서원'은 숙종 원년(1675)에 윤황(尹煌)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김수항 등이 세원 서원이다. 숙종 8년(1682)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윤문거를 추가로 모셨고, 1723년에는 윤선거와 윤증을 추가하여 4인의 위패를 모셨다고 한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毁撤)되지 않고, 창건 이후 현재까지 340여 년 동안 한 번도 자리를 옮겨 짓지 않은 유서 깊은 서원이다. 특히 노강서원 강당은 17세기 말 기호 지역 서원 건축이 지닌 배치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축물로, 2011년 보물 제1746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명재고택
 
▲명재고택(明齋古宅)은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중요민속자료 제190호이다
 
명재고택은 명재 윤증(尹拯)의 호를 딴 양반 가옥이다. 명재 선생은 조선유학사에서 소론의 수장으로, 예학을 정립한 대학자로 평가받는다. '윤증고택'이라고도 불리는 명재고택은 그의 제자들이 스승을 모시고자 지었으나, 선생은 고택 옆 초가에서 기거하신 것으로 전한다.
 
돈암서원▲돈암서원(遯巖書院)은 논산시 연산면 임3길 26-14에 위치해 있다
 
돈암서원은 기호유학의 본산으로 인조 12년(1634)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학문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다. 현종 원년(1660)에 사액을 받았으나, 지대가 낮아 홍수 때마다 물이 들이차 고종 17년(1880), 1.5km 떨어진 곳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고종 3년(186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47곳 중 하나이다.
 
노강서원 외삼문 주춧돌
▲노강서원 외삼문 주춧돌
 
노강서원 사당 주춧돌
▲노강서원 사당 주춧돌
 
나무를 주재료로 쓴 목조 건축물은 물에 취약하다. 2020년 여름처럼 장마철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건물 관리가 힘들어진다. 건물을 지탱하는 나무 기둥은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여 바닥이 물에 잠기지 않도록 주춧돌 위에 세운다. 노강서원의 외삼문을 비롯한 건축물은 높은 단 위에 다시 방수용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우고 있었다. 특히 사당의 경우 추녀 쪽은 기둥에 훼손이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흙으로 구워 만든 기와를 더 올리게 되다 보니 무게를 버텨내기 위함인지 좌우 양옆의 기둥은 가운데 기둥들과 달리 높은 주춧돌 위에 세워져 있었다. 자료에 따르면 추녀의 무게를 이기기 위해 양끝의 기둥과 가운데 기둥의 높이를 달리하기도 한다고 하니, 알면 알수록 건물 기둥을 사수하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종학당 장수루 처마
▲종학당 장수루 처마
 
우리나라 한옥 구조에서 지붕 아래 처마 중 양 끝부분인 추녀는 서까래를 길게 뽑고 끝이 살짝 들려 있다. 학창시절, 사회 수업에서는 햇빛이 집안으로 잘 들게 하기 위해서라고 단순하게 배웠다. 그런데 화제가 됐던 TV 방송과 전문 서적을 통해 알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비에 젖은 기둥의 건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함에 있었다. 추녀는 곡선의 미를 살리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 아니라 가옥의 기둥을 지켜내기 위한 과학적 기술력의 응집체였다.
 
노강서원 처마▲노강서원 강당의 눈썹 처마
 
노강서원의 처마는 일반적인 처마와 달리 이중으로 처마를 내고 있었는데, 이를 '눈썹처마'라고 한단다. 처마의 숙명이니 지붕에 올린 기와의 무게를 견뎌내야 하기도 하고, 세월의 무게도 이겨내야 해서 더욱 견고하게 지어진 것이다. 
 
(종학당) 보인당의 걸쇠
▲종학원 보인당의 걸쇠
 
목조 건물에 살던 조상들은 햇빛의 도움으로 습기를 걷어내기도 했지만, 바람을 잘 이용하기도 했다. 사찰, 서원, 고택 등의 처마 밑에 달린 쇠막대를 '걸쇠'라고 부르는데, 이는 통풍을 목적으로 건물 중간문이나 방문을 위로 들어 올려 고정할 때 사용된다고 한다. 
 
논산고건축에서엿보이는한옥의멋과우수성 1
 
명재고택 내외문
▲명재고택의 내외벽
 
조선시대 고택에는 구조적 특징이 하나 더 보였는데, 건물 안에는 외부인이 안마당을 직접 들여다볼 수 없도록 벽을 두고 있었다. 또한 내외벽은 직접 손님을 맞을 수 없는 집안의 아녀자들이 내외문의 뚫린 밑부분을 통해 손님의 신발 종류와 흙이 묻은 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배려한 장치이기도 하다. 먼 곳에서 찾아와 자고 갈 손님인지 잠시 들렀다 갈 손님인지를 파악해서 차를 낼지 식사를 준비할지 손님 접대법을 달리했다고 한다.

한옥은 흙이나 짚, 나무와 같은 자연친화적인 재료로 집을 짓기에 자주 손을 봐줘야 하고, 늘 곰팡이와 벌레의 습격에 대비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옥의 장점은 현대 건축물이 불러온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병으로 고생한 이들의 경험담으로 방증되고 있다. 소중하게 지켜나갈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임을 논산 여행을 통해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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