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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항일 우국지사 최익현 선생의 묘소와 재실

예산군 광시면에 모신 강직한 선비의 혼

2020.10.11(일) 19:04:46 | 유리향 (이메일주소:dried12@naver.com
               	dried12@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예산여행으로 봉수산 임존성을 돌아보고 집으로 향하는 중이었습니다.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를 지나는 중 '최익현 선생 묘'라고 써져 있는 표지판이 도로변에 설치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비가 솔솔 내리기는 하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지요. 얼마 전 남편과 청양군 여행 중에 최익현 선생의 사당인 모덕사에 들른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묘소는 바로 이곳 예산에 있군요. 그러고 보니 최익현 선생과 충청도는 인연이 깊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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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가 누렇게 익어 황금벌판을 이루고 도로변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우뚝 솟은 홍살문이 최익현 선생의 묘소로 인도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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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살문은 궁전이나 관아·능·묘·원 등의 앞에 세운 문으로 온통 붉은 색으로 칠이 되어 있는데, 이는 악귀를 물리치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해요. 홍살문을 들어서면 양옆으로 은행나무가 줄을 지어 서 있어서 단풍이 들면 참 아름다울 것 같단 생각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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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선생 묘 입구에는 '최익현선생춘추대의비(崔益鉉先生春秋大義碑)'가 세워져 있습니다.
 
최익현 선생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대원군의 잘못을 지적하는 상소와 일본과의 통상조약, 단발령 등을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다 제주도와 흑산도에 유배되기도 하였지요.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자 태안과 순창에서 의병을 모집하여 항일운동을 벌이다가 잡히어 일본의 대마도에서 순절하였습니다.
 
그런데, 최익현 선생의 사당이 충청남도 청양에 있고, 그의 묘소가 예산에 있는 것으로 보아 충청도와도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익현 선생의 고향은 경기도 포천이지만, 활동은 충청도와 전라도에서 주로 하신 것 같습니다. 특히 최익현 선생은 청양에 거주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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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선생의 재실입니다. 재실이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하지요. 선생의 묘는 1907년 충청남도 논산시노성면의 국도변에 마련하였는데 참배객이 끊이지 않자 일제의 명령으로 1910년 이곳 예산군 광시면으로 이장되었다 합니다. 최익현 선생의 재실은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할 때 민가를 매입하여 사용한 것이라고 해요. 누군가 이곳에 거주하며 관리를 하고 있는 듯 보였지요. 이 재실은 조선 후기의 건축사적 가치가 높아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415호로 지정·보호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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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선생재실은 살림집을 매입하여 재실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건물의 배치는 조선시대 전통가옥의 배치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ㄱ’자형의 안채와 ‘-’자형의 사랑채가 안마당을 중심으로 하여 ‘ㄷ’자 형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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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선생의 묘는 재실 바로 왼쪽 위에 옹벽을 쌓아 산기슭에 평편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돌계단을 따라 올라갈 수 있습니다.
 
최익현 선생은 대원군의 실정과 누적된 적폐를 바로 잡으려다 기득권층의 반발로 제주도로 유배되었습니다. 유배에서 풀려난 지 1년도 안된 1876년 도끼를 들고 궁궐 앞에 서 병자수호조약을 반대하는 격렬한 상소를 올리다 또 다시 흑산도로 또 3년 간의 유배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1905년 일제가 을사보호조약을 강요하여 우리의 외교권을 박탈하자 74세의 나이로 전북 순창에서 약 4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관군과 일본군에 맞서 싸웠지만 결국 일본군에 의하여 체포되어 대마도로 압송되었지요. 그 후 왜놈이 주는 밥은 먹지 않겠다고 단식투쟁을 하다가 결국 한많은 생을 마감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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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봉분 앞에는 상석이 놓여 있으며, 묘의 왼쪽에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양옆에는 높이 1m 정도의 석주가 1개씩 세워져 있는데, 그의 위대한 업적에 비해서는 뭔가 좀 아쉬운 느낌이 들 정도로 평범하게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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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의 앞에 놓여 있는 아담한 크기의 상석입니다. 상석이란 돌로 된 제상을 말하는 것으로 이곳에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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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 뒤에서 재실을 내려다 봅니다. 앞에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고 낮은 산에는 안개가 피어올라 멋진 광경을 연출하는 것을 보니 명당자리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익현 선생은 강직한 유학자이고 선비이자 정치가이며 일제에 맞서 싸운 우국지사입니다. 수차례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제자들을 기르며 애국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그분의 유적지는 그의 활동 무대만큼이나 넓어서 전국에 걸쳐 있는 것 같습니다. 경기도 포천 최익현 선생의 생가지, 제주도에 면암 최익현 선생 유배길, 전라남도 신안군 흑산면 유허비, 충청남도 청양 모덕사, 예산의 묘소와 재실, 전라북도 순창객사 등 그분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들을 탐방하는 것도 의미있는 여행길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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