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문화

신민부, 성동사관학교 출신 독립군 보유

청산리전투 100주년·김좌진장군 서거 90주년 기획 ⑭북만주 독립운동단체를 통합해 신민부를 창립하다

2020.09.16(수) 00:04:06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ktx@korea.kr
               	ktx@korea.kr)

성동사관학교 터(목릉현 소추풍, 출처 독립기념관)

▲ 성동사관학교 터(목릉현 소추풍, 출처 독립기념관)



김좌진, 독립운동단체 통합 주력
만주지역 대표 독립운동조직
성동사관학교 설립·군구제시행

 
김좌진은 1920년 10월청산리 대첩 후 북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주력했다.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은 남만주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남만주 독립운동단체들은 1924년 12월 정의부를 조직했다.

김좌진은 정의부가 조직되는 것을 보고 곧바로 북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 통합에 착수했다. 통합운동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김좌진뿐만 아니라 북만주지역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통합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좌진은 대한독립군단 대표로 통합을 추진했고, 그결과 1925년3월 북만주 영안현(寧安縣)에서 신민부가 창립되었다. 신민부가 창립되면서 참의부ㆍ정의부와 함께 1920년대 만주지역의대표적 독립운동 조직인 3부가 성립되었다.

신민부는 북만주지역 최고의 독립운동단체였다. 신민부는 ‘일제를 제거하고 완전한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적으로 조직되었으며 한인사회의 산업과 교육을 진흥하고 이를 기반으로 장기적인 항일투쟁을 벌이고자했다.

신민부는 행정ㆍ입법ㆍ사법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중앙집행위원회(행정)ㆍ참의원(입법)ㆍ검사원(사법)체제로 창립되었다. 중앙집행위원회는 민사ㆍ군사ㆍ참모ㆍ외교ㆍ법무ㆍ경리ㆍ교육ㆍ선전ㆍ연락ㆍ실업부 등을 두었다.

신민부는 집단지도체제로 출범했다. 집행위원들을 중심으로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민주적인 논의과정을거쳐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원로들로 참의원을 조직해 상징성을 높이고 검사원을 통해서 중앙집행위원회를 견제하고자 했다.

김좌진은 군사부위원장으로신민부 군정활동의 총사령관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김좌진은 신민부 참여 후에도 독립군 양성에 주력했다. 독립군 없이 일제와 무장투쟁을 벌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좌진의 항일투쟁의 최종목적은 전쟁을 통한 독립의 달성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이래 독립군 양성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겼다.

이를위해 김좌진은 군사강습소를 세워 전문적인 독립군 지휘관 양성계획을 수립했다. 이러한 계획은 곧바로 성동사관학교설립으로 이어졌고 1년에 2기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김좌진은 17세 이상 40세 미만의 남성들을 대상을 군구제(軍區制)도 시행했다. 군구제는 평소에 생업에 종사하며 군사훈련을 받고 유사시에 독립군에 편입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지속해서 독립군을 보충하는 방법이었다. 김좌진의 이러한 노력으로 신민부는 성동사관학교 출신들을 중심으로 정예의 독립군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성우 충남대학교 충청문화연구소 연구원


 

도정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제4유형
본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4유형: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