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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충절의 사표(師表),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우 '모덕사'를 찾다

2020.06.26(금) 04:38:12 | 엥선생 깡언니 (이메일주소:jhp1969@naver.com
               	jhp196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비대면 여행지로 적당한 곳을 찾다가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둘러보면 좋을 만한 청양의 '모덕사(慕德祠)'에 다녀오게 되었다.

1914년 충청남도 청양군 목면 나분동길 12에 건립된 모덕사는 면암선생의 위패가 봉안된 사당으로 고종황제의 밀지 가운데 '간우공극 모경숙덕(艱虞孔棘 慕卿宿德, 나라일이 어지러움에 경의 높은 덕을 사모하노라)'의 문구 중 사모할 '모(慕)'자와 큰 '덕(德)'자를 취하여 현액한 곳이다.

충절의 사표(師表),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우 '모덕사'를 찾다 1
 
모덕사 내외부 전경
▲모덕사 내·외부 전경
 
모덕사는 사우인 모덕사 외에도 성충사,중화당, 대의관, 춘추각, 고택 등의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면암 최익현(勉庵 崔益鉉,1833~1906) 선생의 동상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의 동상
 
시멘트동상 이전 후,칠갑산도립공원에 다시 만들어 세워진 면암 선생의 동상
▲시멘트 동상의 모덕사 이전 후 2013년 5월 칠갑산도립공원에 다시 모신 청동제 면암 최익현 선생 동상

모덕사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찾은 곳은 가장 눈에 띄는 면암 선생의 동상이었다. 이 동상은 1973년에 선생의 충의를 기리고 애국사상을 마음에 새기고자 청양군민들이 모금하여 칠갑산도립공원에 건립했던 것인데, 2013년 4월에 면암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모덕사로 이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몇 점 안 되는 높이 4m의 진귀한 시멘트 동상이라고 전한다.
 
대의관(유물전시관)▲대의관(유물전시관)은 1997년 건립되었다
 
즐함
▲즐함(빗상자)
 
다음으로 발길을 옮긴 곳은 면암선생의 유품을 전시한 대의관이었다. 고종의 밀지와 '최익현 압송도'를 비롯하여 교지, 관복 등 총 128점이 전시된 곳이다. '최익현 압송도'는 2019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49호로 지정 고시된 역사기록화다.

1895년 명성왕후시해사건(을미사변) 이후 새로이 조직된 김홍집 내각에서 백성들에게 상투를 자르도록 내린 명령에 면암 선생이 불복하여 올린 상소문 가운데 '내 머리를 잘라도 이 머리털은 자를 수 없다(吾頭可斷 此髮不可斷)'는 명문을 떠올리니 그 많은 유품 중에 잘 관리된 '즐함(빗상자)'에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춘추각
▲춘추각은 1985년 건립되었다

대의관 모퉁이를 돌자 춘추각이 보였다. 춘추각은 면암선생이 탐독한 서책 4,023권과 서찰 1.974점이 보관된 장서각이자 제사 집기 등을 보관하는 제기실 성격의 건물이다. 
   중화당
▲중화당 전경
 
1900년 4월, 면암 선생이 경기도 포천에서 '호서 정산(현 청양군 목면 송암리 장구동)'으로 이사하여 기거하셨던 고택을 '중화당'이라 한다. 일본에 의해 가택연금 중에 계셨던 선생은 1906년 2월, 구국의 의지로 왜헌병의 감시를 피해 이곳을 떠나게 된다.
 
중화당 왼편에는 사철나무가, 오른편에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다. 특히 빠알간 꽃을 피운다는 배롱나무는 이곳과 무척이나 잘 어울릴 듯하여 '방문 시기를 좀 늦출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전라북도 정읍의 무성서원
▲전라북도 정읍시 칠보면 원촌 1길 44-12에 위치한 '무성서원' 전경
 
면암선생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이듬해인 1906년 6월 4일에 제자인 낙안군수 임병찬과 함께 일본의 침략에 항거하기 위해 태인(정읍의 옛 지명)의 무성서원에서 호남의병을 창의하게 된다. 봉기는 열흘 동안 이어지나 관군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고, 전라도 순창에서 체포된 면암선생은 서울로 끌려와 일본군 헌병사령부에서 3년형을 선고받는다. 선생은 부산을 거쳐 대마도로 압송되어 대마도 유배지에서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소를 작성하고 단식으로 항거하다1906년 11월 17일, 향년 74세로 순국하게 된다.
 
1906년 11월 21일에 선생의 유해가 환국되고, 선생의 묘는 1907년 4월 1일에 논산 노성 월오동면 지경리 무동산 기슭 국도에 가매장된다. 2년 여 동안 참배객이 끊이지 않자 일본은 예산군 대흥면 봉수산(현 예산군 광시면 관음리)에 강제 이장을 시킨다. 1962,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
 
모덕사 외삼문 
충절의 사표(師表),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우 '모덕사'를 찾다 2
▲모덕사 외삼문과 편액
 
1914년 건립된 모덕사는 면암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 사당이다. 1984년 5월 17일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지정된 이곳에서 매년 음력 9월 16일, 모덕회 주관으로 향사하고 있다고 한다.
 
성충사 전경
▲성충사 입구 전경
 
성충대의의사비
▲성충대의의사비는 의병활동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영당
▲성충사(영당)
 
1989년 건립된 '성충사(영당)'는 면암선생의 영정이 모셔진 영당이다. 매년 양력 4월 13일, 청양군 주관으로 제향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충절의 사표(師表),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우 '모덕사'를 찾다 3
      충절의 사표(師表),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우 '모덕사'를 찾다 4
▲표준영정 모사본과 윤보선 대통령이 내린 시호  
 
모덕사 영당에 봉안된 면암 최익현 선생 영정은 전 정산군수 채용신이 그린 73세(1905년)의 진영을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인 이종상 화백이 모사하여 1989년 4월 13일에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면암선생의 영정은 2014년 9월 1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231호로 지정되었다.  
  
충절의 사표(師表), 면암 최익현 선생의 사우 '모덕사'를 찾다 5
  
연못 너머에서 바라본 모덕사 전경
▲연못 너머에서 바라본 모덕사 전경
 
청양군에서는 면암선생의 순국 100주년(2007년)에 즈음하여 전국 각지에 산재한 사우와 유적에 대한 자료를 수집·조사한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충청남도를 비롯하여 충청북도,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제주도와  일본에까지 면암선생의 발자취가 남아 있지 않은 곳이 없다.
 
1946년, 김구 선생은 모덕사에서 임정요원 환국 고유추모제를 봉행했다고 전하는데, 김구 선생 외에도 면암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덕사를 방문하는 유명 인사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홍살문을 따라 움직이다 우연히 연못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모덕사의 아름다움에 절로 긴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물이 차지 않았음에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이곳은 봄에 꽃 피고, 가을에 단풍 들고, 겨울에 눈 내리면 더욱더 절경이라고 한다. 잠시 가뭄에 마른 연못 저편의 모덕사를 바라보고 있자니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난세에 구국의 일념으로 노구를 이끌고 의병활동의 선봉에 섰던 면암 최익현 선생과 같은 꽃보다 아름다운 선조들의 희생으로 누리는 평화로운 일상에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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