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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래도 봄이다

2020.03.19(목) 07:10:52 | 설산 (이메일주소:ds3keb@naver.com
               	ds3keb@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산성 성벽 길을 걸으며, 바람이 전해주는 옛이야기를 들으며
 
작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는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지난달 20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는 온통 일상생활이 멈춘 것 같은 나날들을 이어오고 있다.
 
이로 인해 직장에도 영향을 받아 출근하지 못한 채 집안에서 보내는 나날이 늘어간다. 남녘에는 매화와 산수유가 한창이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엊그제 춘분을 지나면서도 지방자치단체들에서 보내는 추가 확진자 관련 문자를 보며 그들의 동선을 살펴보고, TV에 넘쳐나는 관련 뉴스에서 ‘확진’·‘격리’·‘폐쇄’라는 단어에 예민해진다.
 
처음에는 그동안 읽지 못한 책을 보며 그럭저럭 보낼 만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좀이 쑤셔 오고, 볕이 좋은 날이면 창밖으로 눈길이 자꾸 간다. 그러다 확진자 수가 조금 줄어드는 기미가 보이는 날, 봄이 어디만큼이나 왔나 확인하러 가까운 공주로 향한다. 
 
공주 하면 내게 우선 떠오르는 건 백제와 무령왕릉, 송산리 고분, 금강, 공산성, 곰나루, 정안 밤, 마곡사 이런 것들이다. 이들 중에 공산성과 송산리고분군은 부여, 익산의 백제유적과 묶어 2015년에 우리나라에서 열두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아무래도 공주 여행은 유홍준 교수가 '별스러운 사람들 차지거나 또는 중년과 노년의 부부가 호젓하게 여행할 때 좋은 곳'이라고 표현한 공산성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휴일을 맞아 많은 차로 붐볐을 공산성 주차장에는 여유가 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노란 산수유 사이로 가파른 언덕 위 성곽을 걷는 사람에게서 세상이 아무리 혼란하더라도 지금 이 길을 걷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듯한 '별스러운 사람'의 완고함이 멀리서도 느껴진다.
  
주차장에서 본 공산성
▲주차장에서 본 공산성
 
서쪽 문에 해당하는 금서루로 오르는 입구에 세계문화 문화유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서 있고, 정승을 지냈거나, 도순찰사 또는 이 고장을 잘 다스렸던 목사, 관찰사 등 관리들의 공덕비와 송덕비가 나란히 서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표지석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표지석
 
금서루에서 성안으로 들어가 성벽에 올라 진남루로 향한다. 성벽에서 내려다보니 지형의 경사가 심해 성벽을 높게 쌓지 않더라도 훌륭한 요새 역할을 충분히 했을 것 같다.

이 공산성은 백제가 고구려 장수왕의 남하 정책으로 475년에 한성에서 웅진(공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16년까지 64년간 백제의 왕성이었다고 한다.
 
성벽 가까이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아찔하다. 턱이 없어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위험할 것 같다. 그렇게 걸어 공터 위 얕은 구릉 위에 세워놓은 쌍수정이라 부르는 정자의 안내판을 보니 조선 후기에 지어진 건축물인 모양이다.
 
쌍수정
▲쌍수정
 
산성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있는 느티나무 두 그루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조선 16대 왕이던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에 왔다가 난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서 정자를 짓고 '쌍수정(雙樹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쌍수정 아래 공터에 왕궁터라는 푯말이 붙어 있고 줄이 처져 있는 것을 보니, 규모가 그다지 커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에 왕궁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굵은 벚나무들이 즐비하다. 바이러스로 세상은 북새통이더라도 약 보름 후면 이곳은 온통 하얀 벚꽃이 가득할 것 같다.
 
공산성의 둘레는 2660m로 영동루·금서루·진남루·공북루라 부르는 사대문이 있고, 성의 안쪽 성안마을에서 2015년에 대규모 저수시설·도로·배수지·건물지·갑옷과 각종 무기류 등이 발굴되어 왕족들과 귀족, 그리고 일부 선택받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이 확인되었던 모양이다.
 
진남루
▲진남루
 
영동루
▲영동루
 
임류각에 오르자 금강이 보이고, 강 건너에 공주의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조금만 더 가면 청벽대교가 버티고 서 있을 것이고, 하늘과 바람과 구름이 아름다운 이런 날에는 지는 해도 황홀할 텐데,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가슴이 뛰기 시작하고 시간을 계산해 본다. 그러다가 삼각대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순간 구멍난 공에 바람이 빠지듯 허탈해진다.
 
광복루에서 강변 가까이 붙어 있는 만하루까지 경사가 급한 길을 내려오면 유홍준 교수가 공산성에서 백제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으로 계단을 쌓아 올린 절묘한 석축구조 만하정의 연못이라고 했던 연지를 볼 수 있다. 만하정 앞으로 강이 흐르는데, 건물 뒤편에 굳이 연못을 조성한 것은 집수지 기능을 위해서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인다.
 
만하루
▲만하루
 
만하루
▲공북루
 
이곳에서 다시 북문에 해당하는 공북루를 거쳐 경사가 급한 성벽길을 따라 걸으면 공산정이 나타난다. 공산정에서 뒤를 돌아다 보면 물결처럼 퍼진 산그리메 사이로 흐르는 금강과 금강 위에 놓인 다리도 아름답다.
 
공산성 길
▲공산성 길
 
공산정 오르는 길
▲공산정 오르는 길
 
공산정
▲공산정
  
이때, 금서루에서 올라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생각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강물 위에 놓인 다리도 없었고, 강 건너 현대식 건물들이 없었을 자연의 풍광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그 누구도 이곳에 서서 이런 광경에 감탄하지 않았으려나 싶다.
 
공산정에서 본 금강
▲공산정에서 본 금강
 
공산정에서 본 공주 도심
▲공산정에서 본 공주 도심
 
유홍준 교수는 공산성에 겨울날 눈이 덮였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이곳에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굵은 벚나무에 하얀 벚꽃이 피어나는 날에도, 그 벚꽃이 속절없이 떨어져 내리는 날에도, 노랗고 빨간 나뭇잎이 떨어져 쌓이는 날에도, 이 산성이 눈 속에 적막한 날에도….

한옥마을과 곰나루 그리고 강변의 봄 풍경
 
곰나루 가는 길에 들른 공주한옥마을은 공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로 처마 끝에 청사초롱이 달린, 잘 지어진 한옥들이 모여 있다. 이곳 어느 집 뒤뜰에 홍매화가 피어 있다. 꽃이 피어난 지 여러 날이 지났는지 색이 바랬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 꽃도 막 피기 시작한 꽃이 색이 곱고 향도 진한데, 홍매화는 봄에 피어나는 다른 여느 꽃보다도 빨리 색이 바래고 시들어 버리는 것 같다.
  
한옥마을 관리소
▲한옥마을 관리소
 
한옥마을 한옥
▲한옥마을 한옥
 
한옥마을 홍매화
▲한옥마을 홍매화
 
이곳의 한옥은 장작으로 불을 피워 구들장을 데우는 전통 난방 방식을 고수하는지 아궁이가 있고, 그 아궁이에 장작이 놓여 있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이런 것들이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끌지 않을까 싶다. 특히, 높다란 회색 콘크리트 건물에 갇혀 휴대폰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과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보낸 특별한 날은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오래 남게 될 것 같다.
 
한옥마을 산수유
▲한옥마을 산수유
 
물안개가 굵은 소나무 사이를 휘감던 솔밭의 소나무 사진을 보고 와보고 싶었던 곰나루 솔밭에는 파란 하늘만큼이나 맑은 바람이 분다.
 
고마나루 곰사당
▲고마나루 곰사당
 
이 솔밭에는 설화에 내려오는 곰을 모신 사당이 있다. 1972년 곰 돌조각이 출토된 자리에 사당을 지어 곰을 모시고 ‘웅신단’이라는 이름을 붙인 모양이다. ‘공주’라는 이 지역의 명칭도 ‘웅주(熊州)’라고 하여 ‘곰주’라고도 불렸는데 고려 초에 전국 지명을 한자식으로 바꾸면서 ‘공주’라고 고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유홍준, 창작과 비평사) 중에서
 
키 큰 소나무 아래 직사각형의 낮은 기와 담을 둘러친 소박한 규모의 사당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다’

이 숲에 가득한 소나무에서 떨어져 내린 누런 솔잎이 깔려 푹신한 솔밭길을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가슴을 한껏 펴고 걷는 행복을 아는가. 요즘처럼 아주 우울한 소식들이 지속될 때 몇 걸음 이 길을 행보하면 모두 사그라들 것 같다.
  
고마나루 소나무
▲고마나루 소나무
 
갈대밭으로 난 길을 따라 강변의 모래톱으로 갔다. 이 강물은 전라북도 장수군 신무산에서 발원하여 무주와 진안, 그리고 금산과 영동, 옥천, 보은, 청주, 대전, 세종을 거쳐 이곳까지 흘러왔을 것이다. 그리고 청양, 논산, 부여, 서천, 익산을 지나 392km의 대장정을 마치고 서해로 흘러 들어갈 것이다. 나는 이 강가에 한참을 서서 어느 가수의 노랫말처럼 '강물 속으론 또 강물이 흐르'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주로 모래로 이루어져 양분이라고 없을 것 같은 강변에도 파란 풀들이 돋아나고 그 속에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추운 겨울을 버텨낸 냉이가 있다. 이를 그냥 넘길 리 없는 아내는 한참을 쪼그리고 앉아 냉이를 캔다
 
솔밭길을 되돌아 나와 강변을 따라 걷다 보니 강변 둔치에 우드볼 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고, 라운딩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드 볼과 요즘 나이 드신 분들이 많이 한다는 파크 골프와 같은 것인지 모르지만, 꽤 긴 코스 곳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공을 굴린다.
 
우드 볼 하는 사람들
▲우드볼 하는 시민들
 
또 이 길가에는 대청댐에서 금강하구둑까지 146km 달리는 '금강 자전거길'이 있고 1구간 공주보 인증 스탬프를 찍는, 런던의 공중전화 부스를 닮은 빨간 부스가 있다. 이렇게 하늘이 맑고 구름이 좋은 날 자전거를 타고 이 길을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금강 자전거길 인증 부스
▲금강 자전거길 인증 부스

철거 결정과 농민들의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았던 공주보는 수문을 올려 물을 빼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곧 농사철이 시작되고 갈수기인데, 이렇게 물을 흘려보내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주말농장이라도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물의 소중함을 안다.
 
공주보
▲공주보
 
되돌아오는 길 강가에 버드나무에 물이 올라 새잎이 나기 시작하고. 매화도 산수유도 꽃을 피우고, 그리 머지않아 벚꽃 소식도 올라올 텐데, 부디, 이 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우리는 아무 거리낌없이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을 보며 손을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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