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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선언문 배포 주역 옥파 선생의 서울 발자취 따라 나선 태안주민들

소리짓발전소 주관… 공모로 모집된 40여명 서울 종로구 수송공원 등 탐방

2019.07.09(화) 11:28:14 | 주간태안신문 (이메일주소:east334@hanmail.net
               	east334@hanmail.net)

천도교중앙 대교당서는 옥파의 성주 이씨 손 이동초씨 만나 의미 더해

옥파 이종일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서울 종로구 수송공원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태안주민들.

▲ 옥파 이종일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서울 종로구 수송공원에서 단체사진을 촬영하고 있는 태안주민들.


 

“(현재 천도교중앙 대교당 앞에 세워진 머릿돌인) 독립선언문 배부터를 이종일 할아버님의 집터로 바꿔야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한 번 정해진 이름을 바꾸려하지 않는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소리짓발전소(총감독 서승희)가 문화재청의 공모사업으로 선정된 ‘생생문화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옥파 이종일 선생의 흔적을 찾아 나선 태안주민들이 뜻깊은 인연을 만났다.

소리짓발전소는 태안문화원과 함께 옥파 이종일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한 여정을 프로그램화 한 ‘태안 명예독립열사가 떠나는 옥파 이종일 선생 서울 행적지 탐방’을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수송공원 일원과 옥파 선생이 사장을 맡아 운영하던 천도교 산하의 인쇄소 ‘보성사’가 자리 잡았던 조계사, 그리고 의암 손병희 선생과 함께 독립선언서 인쇄와 3.1운동의 기폭제를 제공한 독립운동의 전당인 ‘천도교중앙 대교당’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또한, 옥파 선생과 유관순 열사 등 수많은 독립애국지사들을 악랄히 고문하고 사형시킨 억압과 공포의 상징인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되짚어보고 함양하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옥파 이종일 선생의 서울 집터로 추정되는 천도교중앙 대교당에서는 이종일 선생의 성주 이씨 집안 자손이면서 서산군 당시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린 의원의 친손자인 이동초씨를 만나 옥파 선생의 업적과 서울에서의 선양사업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들으며 뜻깊은 일정을 소화하기도 했다.

옥파 선생에 남다른 행적을 되짚은 이동초 씨는 현재 천도교중앙 대교당에 근무 중이다. 이씨는 “옥파 이종일 선생에 대한 서울 선양사업회는 이병도 박사가 초대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옥파 문집 발간과 수송공원에 동상을 설립하는 등 선양사업을 펼쳤지만 중간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중단하게 됐고, 태안에 기념사업회가 이어받아 선양사업을 이어감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씨는 또한 독립선언서 배부터라고 적힌 천도교중앙 대교당 앞 머릿돌을 옥파 이종일 선생 집터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머릿돌을 바꿀 수 없다면 최소한 머릿돌 내에 옥파 선생 집터를 알 수 있는 문구를 새겨 넣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 한편으로 탐방단은 서대문형무소에서 뜻깊은 태안의 인연을 만났다. 근흥면 출신이라고 밝힌 해설사다. 해설사는 옥파 선생과 연계해 서대문형무소의 악랄함을 세부적으로 설명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독립운동가 중 400명 정도가 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그는 “이종일 선생이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15번에 잠들어 계신데, 묘비에 태생이 경기도 포천으로 되어 있었다”고 전제한 뒤 “옥파 선생의 기록에 닷개로 되어 있어 출생지를 못 찾다가 지금은 원북면 반계리로 고쳐져 있다”면서 “이종일 선생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아 안타까웠는데, 정부에서 훈장을 수여하고 비를 세워주면서 알려지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3.1운동이 끼친 영향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만들게 됐는데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한 이종일 선생이 지대한 역할을 했고,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분인 이종일 선생이 우리고장 출신이라는데 상당히 뿌듯하다”면서 “애국지사 218분이 국립현충원에 모셔져 있는데 가서 보면 느낌이 다르다. 15번째로 모셔져 있다. 꼭 가봐야 한다”고 당부했다.
 
한편, 소리짓발전소의 이번 ‘생생문화제’ 프로그램에는 태안 명예독립열사를 비롯해 문화관광해설사, 태안문화원, 태안예총, 태안향토문화연구소 관계자들이 참가해 옥파 선생의 서울 행적지를 탐방하며 옥파 선생의 애국애족정신을 배웠다.

소리짓발전소는 이번 프로그램과 관련해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독립선언문을 인쇄하고 제국신문을 창간하기도 하였던 태안 출신의 독립운동가 옥파 이종일 선생의 독립운동 행적지를 태안 지역민을 대상으로 탐방하는 프로그램”이라고 소개하면서 “이종일 선생의 독립에 대한 열정과 운동가의 행장을 지역민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고 탐방 취지를 설명했다.

소리짓발전소 서승희 총감독은 “2017년에 처음으로 옥파 선생 생가지를 갔었는데, 관광객도 심지어 지역주민들도 옥파 선생에 대해 잘 모르는 현실에 알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고, 2년째 문화재청의 집중프로그램에 선정돼 생생문화제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내년에도 문화재청의 집중프로그램에 선정이 되면 지속가능한 옥파 문화제로 발전시키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소리짓발전소는 오는 10월 3일 원북면 반계리의 옥파 선생 생가지에서 ‘생가 음악회’를 열어 생생문화제 프로그램을 이어나가며 옥파 선생의 선양사업에 힘을 보탠다. 

[인터뷰] ‘독립선언문 배부터’를 ‘옥파 이종일 선생 집터’로 바꿔야

다음은 옥파 이종일 선생의 성주 이씨 집안 자손이면서 서산군 당시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인 의원의 친손자인 이동초씨와 가진 일문일답.

옥파 이종일 선생의 성주 이씨 집안 손자이면서 서산군 당시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인 의원의 친손자인 이동초씨가 독립선언서 배부터를 옥파 이종일 선생 집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옥파 이종일 선생의 성주 이씨 집안 손자이면서 서산군 당시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인 의원의 친손자인 이동초씨가 독립선언서 배부터를 옥파 이종일 선생 집터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옥파 선생과는 어떤 관계인가
-집안(성주 이씨) 할아버지다. 제헌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인 의원의 친손자다.

 

☞ 옥파 선생의 기념사업회가 현재 태안에서 활발히 선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에도 선양사업회가 있었는데, 사업을 중단하게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해달라.
-서울 선양사업회가 이병도 박사가 초대 회장으로 추대돼 선양사업을 추진했다. 천도교 대교당 내에 기념사업회가 있었다. 서울 선양사업회에서는 옥파 선생 문집 발간과 동상 설립을 했다. 선양사업회에서 한 일은 그게 전부고, 중간에 문제가 생겨 서울에서의 선양사업은 중단됐다. 태안에서 선양사업이 잘 추진되고 있어 다행이다.

☞ 옥파 선생이 말년에 아사 당했다는 게 사실인가
-옥파 선생은 구급단을 만들 정도로 강경파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한 뒤 서대문 밖에 관상대가 있는 곳에서 1925년 8월 여름에 아사했다. 당시 이종인 국회의원이 장례위원장을 맡았다.

☞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현재 천도교중앙 대교당 앞에 있는 머릿돌에 ‘독립선언문 배부터’라고 적혀 있는데, 사실은 이종일 선생이 살던 서울 집터 자리다. 머릿돌을 이종일 집터로 바꿔야 한다. 노력을 해봤지만 쉽지 않았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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