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사는이야기

현재와 과거의 교육이 공존하는 신창향교

2016.03.19(토) 23:14:21 | 탱자시대 (이메일주소:soohwalove@hanmail.net
               	soohwalove@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1


오늘 소개해 드릴 곳은 아산시 신창면에 위치한 신창향교입니다. 작은 향교가 뭐 대수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신창향교는 다른 향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신창향교는 신창초등학교 안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시대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와 지금의 교육기관인 초등학교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2


신창향교는 고종 9년인 1872년에 세워졌습니다. 아시는바와 같이 향교는 유학자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를 올리는 제향 공간임과 동시에 지방 유학자들이 수학을 하는 교육 공간이었습니다. 지금도 향교에서의 제향은 꾸준히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예전 향교의 기능이었던 교육의 기능은 옆에 있는 신창초등학교에서 대신 하고 있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3


신창초등학교는 무려 1910년도에 세워진 학교로서 신창공립보통학교로 시작되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습니다. 100주년 기념탑 아래에는 교가와 교훈이 적혀 있었는데요  "꿈과 희망, 사랑이 가득한 학교" 라고 적힌 교훈에서 신창초등학교의 교육 철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4

신창향교는 신창초등학교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보통 향교 입구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통인데 신창향교는 특이하게도 계단을 올라서서 좌측에 마치 일반 살림집과 같은 형태로 입구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안내판이 계단에서 좀 떨어진 위치 경사지에 자리잡고 있어 안내를 읽기에 무척이나 불편하였는데요 이러한 점은 개선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5


안내판에는 신창향교의 연혁 등 다양한 정보가 적혀 있었습니다. 조금 설명해 드리자면 신창향교는 조선 숙종 때 지어졌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확인이 어려운 상황이며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고종 9년인 1872년, 인근 도고산에 있었던 절을 옮겨지어 향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신창향교는 현재 충청남도 기념물 11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6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7


방문 당시 향교 문이 걸려있어 담장 너머로만 안쪽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신창향교는 입구를 들어서면 동재와 서재, 명륜당이 보이며 정면의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이 눈에 들어오는 공간구성을 볼 수 있습니다. 내삼문 앞에는 여러 비석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가까이 갈 수 없어 그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8


신창향교에서는 매년 2회, 춘계와 추계대제가 열립니다. 글을 쓰면서 신창향교에 대해 검색을 해보니 지난 3월 16일에 춘계대제가 열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날 지역의 유림을 비롯한 주요 관계자들 그리고 신창초등학교 학생들이 참석하여 제향을 올렸다고 하는데요 그 일정을 미리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홍보하는 것 역시 무척이나 중요한 것일 텐데요 앞으로는 대제가 언제 열리는지 등을 안내하는 활동이 펼쳐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9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 그리고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정면 다섯칸, 측면 세칸의 맞배 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기둥 상부는 날개모양의 익공형태로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곳 대성전에서 열린 제향 모습이 무척이나 궁금했는데요 가을에 또 한번 제향이 열린다고 하니 그때는 꼭 날을 맞춰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10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11


주름살처럼 움푹 패인 기둥에서는 세월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 기둥을 바라보고 만져보았던 초등학교의 어린이들은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도 있을 것이고 이제 갓 1학년으로 입학한 아이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이들의 추억이 스쳐간 곳이 바로 이곳 신창향교일 것 입니다. 백오십여년의 세월을 버텨준 기둥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는데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삼백년, 사백년 너끈히 버텨주기를 바랬습니다.
 

현재와과거의교육이공존하는신창향교 12


초등학교 입구를 나와 대로변으로 나오니 또 하나의 특별해 보이는 비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로 척화비인데요 아시다시피 척화비는 흥선대원군이 서양사람들을 배척하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신미양요 이후인 1871년 4월을 기해 전국 요소에 세웠다고 합니다. 충남에 위치한 척화비 위치를 조사해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촌마을에 있는 작은 향교지만 거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뭍혀 있을 것 입니다. 이러한 글을 통해 지역에 있는 문화재들이 보다 널리 알려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탱자시대님의 다른 기사 보기

[탱자시대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