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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부여 능안골 고분군과 장례문화

백제인들의 독특한 매장 문화를 생각하며

2016.02.25(목) 21:40:44 | 진리안에서 (이메일주소:samuelsoo1@naver.com
               	samuelsoo1@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부여에 있는 백제왕릉에서 동쪽으로 2km 지점, 능산리 75-7에는 부여 능안골 고분군이 있습니다. 능산리 고분이 왕릉인 것에 비하여 이곳은 귀족계층의 무덤들이 있습니다. 1994년 부여군 공설 운동장 터닦기 공사 과정에서 백제시대 무덤들이 발견되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백제 고분은 시대에 따라 변천을 보이는데 수도가 옮겨감에 따라서 크게 한성식, 웅진식, 사비식으로 나눌 수 있고, 백제는 백제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춘 고분문화를 영위하였다고 합니다. 백제의 묘제는 특유의 기단식 돌무지무덤, 널·덧널움무덤, 분구 움무덤, 그리고 돌덧널무덤 등을 사용하였고 그 외에 일찍부터 돌방무덤을 조영하는가 하면,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벽돌무덤 축조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백제 고유의 고분문화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나아가 백제의 고분문화는 그 다양성을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분들이 결국에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통일된다는 문화전개의 유연성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백제의 고분문화는 중앙정치세력의 성장과 함께 중앙·지방 가릴 것 없이 주묘제로서 굴식 돌방무덤으로 묘제가 단일화되는데, 이는 고분문화의 변화가 정치·사회 환경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부여의 능안골 고분군에 있는 무덤들도 대부분이 다듬어진 돌로 무덤방 및 입구를 만든 돌방무덤입니다. 그러면 왜 사비 즉 부여가 도읍지였던 사비시기(538-660)의 백제인들은 돌방무덤을 만들게 되었을까요? 백제인들은 초기에는 구능성 평지에 무덤을 조성했는데 중기부터는 산지에 조성하였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굴식 돌방은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으로 간주하여 널길과 문을 달고 사람의 출입이 가능한 돌로 돌로 만든 돌방무덤은 일회성 매장이 아니라 추가장을 하기 위하여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의 장례문화도 많이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매장보다는 화장을 많이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고 있는데,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의 능안골 고분군을 보면서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장례문화를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부여능안골고분군과장례문화 1

부여 능안골 고분군 안내도

▲ 부여 능안골 고분군 안내도

부여능안골고분군과장례문화 2

부여능안골고분군과장례문화 3

 

▲ 능안골 고분군의 한적한 길

부여능안골고분군과장례문화 4

부여 능안골 고분군의 무덤

▲ 부여 능안골 고분군의 무덤

부여능안골고분군과장례문화 5

▲ 쉼이 있는 벤치와 무덤과 함께 어우러진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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