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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한국교육에 이바지한 아펜젤러의 흔적

2016.02.23(화) 13:44:59 | 혜영의 느린세상 (이메일주소:auntlee49@naver.com
               	auntlee4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종교와 연관있다 보니 천주교나 기독교와 관련된 곳이 있으면 찾아가보는 편입니다. 아펜젤러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작년에는 서면 마량리에 가우처홀이 준공되었다는 아펜젤러 기념관을 찾아가 보았어요. 서천군은 미국 감리교 선교회에서 한국에 공식적으로 파견했던 선교사인 헨리 게르하르트 아펜젤러 선교사를 기념하여 건물을 지었다고 합니다. 

 

새롭게 지어진 가우처홀

▲ 새롭게 지어진 가우처홀


제가 직접 보았을때 비교적 새건물이었는데도 불구하고 2층은 조금 부실한 편이었습니다. 시공할때 조금 문제가 있었던지 관리 소흘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보게 하더라구요.
 

체험하고 쉴수 있는 공간

▲ 체험하고 쉴수 있는 공간


1층은 까페처럼 운영되고 있고 2층은 오픈된 전시실 같은 느낌입니다. 이날 차를 마시러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펜젤러와 외국인들의 이야기

▲ 아펜젤러와 외국인들의 이야기


이땅에 왔었던 수많은 선교사와 외국인들의 연대기 같은 것이 플랭카드에 인쇄되어 있었습니다. 
1층에는 까페 겸 쉼터와 포토존이 있고 2층은 특별전시실인데요. 감리교 초기 유물들이 위층에 전시되어 있었어요.
 

외국인 자료들

▲ 외국인 자료들


2층에 오니 드디어 아펜젤러라는 사람이 어떻게 생긴 사람이었나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외국인 학자처럼 생겼는데요.
 

가우처 목사

▲ 가우처 목사


가우처 목사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나 읽어봅니다. 1945년 6월 7일 미국에서 태어난 가우처는 한국의 근대 고등교육기관을 세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1885년에 아펜젤러가 한국 선교를 위해 노력할때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세우는데 지원하고 언더우드와 협력해서는 조선기독교대학이 연합대학이 되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하네요. 감리교 한국선교회의 모태는 가우처에서 부터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재정적인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아펜젤러 기념관

▲ 아펜젤러 기념관


옆에 건물로 가면 아펜젤러 순직 기념관이 있습니다. 아이들도 방문하여 그의 흔적을 배우고 들어보고 있었습니다.
 

아펜젤러의 생애

▲ 아펜젤러의 생애


건물의 지하에 내려오면 더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근대 역사의 자료들

▲ 근대 역사의 자료들


꼭 종교적인 것만 있는것이 아니라 조선말과 대한제국 초의 귀한 자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외국인에 대한 자료가 많이 있었습니다.
 

일본군 사진들

▲ 일본군 사진들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설명한 일본군들의 자료입니다.

이런 사진은 어떻게 찍을 수 있었나 궁금합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사진을 찍는 것이 자유롭지 않았을텐데요. 모든 설명이 영어로 깨알같이 쓰여져 있습니다.
 

귀한 자료들

▲ 귀한 자료들


당시에는 성경책도 매우 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초기 성경책이라고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볼품없고 그냥 누가 대충 쓴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영어로 쓰여져 있어서 읽어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44세가 되던해애 전라남도 목포로 가던중에 침몰하여 세상을 떠난 아펜젤러는 대전에 있는 배재대학교를 세우고 구한말 한반도에 기독교를 전파하는데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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