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교는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해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유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받들며 유학을 가르쳐 인재를 양성하고 지방의 민풍과 예속을 순화하는 곳으로 제향과 교육의 두 가지 기능을 담당하는 교육기관입니다. 예를 들어 성균관이 대학에 해당하는 중앙의 최고 교육기관이라면 향교는 초등교육기관이라 할 서당을 마친 유생들이 중등교육을 받는 지방 최고의 교육기관입니다.
조선은 양반을 정점으로 하는 신분제 사회였기 때문에 향교의 교생 자격 또한 양반이 절대우위에 있었지만 원칙적으로 평민 이상의 신분이면 누구나 교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단 교생이 되면 신분에 관계없이 교생에게 주어지는 특전과 혜택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곳, 온양향교는 지난 1997년 충남기념물 제115호로 지정된 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된 관학교육기관으로 원래 아산시 법곡동에 있었는데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가 161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다시 세웠다고 합니다.
홍살문을 따라 들어가면 향교의 입구 왼쪽에는 하마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외삼문을 지나 온양향교의 내부 구조를 살펴보면 향교의 전형적인 형태로 외삼문의 정면으로 교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었던 명륜당과 그 뒤쪽으로는 제사를 올리는 곳인 대성전이 위치해 있습니다. 그리고 명륜당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교생들의 기숙사로 쓰였던 동재와 서재가 마련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온양향교에서는 겨울방학 기간동안 관내 초, 중, 고학생 190명을 대상으로 온양향교의 유림회관에서 충, 효, 예 교실을 개강해 청소년들이 갖춰야 할 나라사랑 정신과 효행심, 예절교육, 생활한자교육 및 특강 등 현장학습을 통해 인성교육이 함양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고 합니다. 온양향교가 과거의 교육기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다 현 세대에 맞게 다가가는 모습이 참 의미있게 느껴졌습니다.
온양향교 내로 들어가서 좀 더 향교 내를 돌아보고 싶었지만 외삼문이 잠겨 있어 담 너머로 밖에 볼 수 없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관람객들도 온양향교를 찾아 왔다가 다시 돌아가는 모습이 종종 보였기에 충남의 기념물인 향교를 잘 관리하는 것은 좋지만 향교를 찾은 이들이 잘 관람할 수 있도록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