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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백제인들이 꿈꾼 미래…동아시아 최대의 사찰터

부활하는 백제왕국(끝)-익산 미륵사지

2015.11.10(화) 23:17:2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미륵신앙을 현실세계에 구현한 3탑3금당의 독특한 가람구조를 지닌 익산 미륵사지. 오른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미륵사지 석탑’이 보인다.

▲ 미륵신앙을 현실세계에 구현한 3탑3금당의 독특한 가람구조를 지닌 익산 미륵사지. 오른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큰 ‘미륵사지 석탑’이 보인다.



익산 미륵사지 석탑
 
목탑 축조방식 그대로
백제인 공예기술 선봬
 
해체과정서 ‘사리장엄’ 발견
9900여점 다양한 유물 출토


익산 미륵산 남쪽 아래에 자리잡은 미륵사는 약 30만㎡에 이르는 너른 절터에 35년에 걸쳐 건설된 백제 최대의 사찰이다.

미륵사의 창건과 관련된 내용은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미륵사 인근 오금산(현재 익산토성과 쌍릉이 위치한 곳)에 홀어머니와 마를 캐며 살던 마동이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이 젊은이는 후에 신라의 선화공주와 혼인을 하고 백제의 왕이 된다. 바로 백제 30대 왕인 무왕(AD. 600~641)이다.

왕이 된 무왕은 왕비와 함께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 신기한 일을 경험한다. 연못에서 세 명의 미륵부처가 나타난 것이다.

미륵부처의 출현에 놀란 왕비는 무왕에게 세 명의 미륵부처를 위한 절을 지어달라고 청한다. 이 청에 의해 만들어진 절이 전·탑·낭무를 갖춘 미륵사다.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과 공예 등 최고의 기술이 발휘되었다. 게다가 신라 진평왕까지 기술자를 보내주어 건축에 힘을 보태었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 불교 건축문화를 대표할 수 있는 문화유적이다. 미륵신앙을 기초로 한 ‘3탑3금당’의 독특한 가람 구조를 지닌 점이 특징이다.

1980년부터 문화재연구소에서 전반적인 발굴조사를 계속하고 있는데 발굴 결과 절터 아래가 벌흙으로 돼있고 가운데 목탑을 두고 동서로 각각 석탑이 있었다.

또 각 탑의 북쪽으로 금당이 하나씩 있고 각기 회랑으로 둘러져 있는 배치인데 이는 충남의 백제건물에서 볼 수 있는 가람배치와는 또 다른 형태로 다른 나라에도 이러한 예는 없다.

미륵사지에는 국보 11호인 익산 미륵사지석탑과 보물 236호 익산 미륵사지 당간지주, 보물 1753호 미륵사지 금동향로, 문화재자료 제143호 석등하대석 등이 있다.

국보 제11호인 미륵사지 석탑은 목탑의 축조방식을 그대로 따라 만든 석탑으로,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는 과정의 뛰어난 공예기술과 백제인의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다.

낮은 기단위에 여러 개의 돌기둥을 세운 탑신을 쌓았으며 기둥은 밑이 넓고 위가 좁아 안정감이 있다. 1층에는 사방으로 출입구를 내었고, 내부의 중앙에는 중심기둥이 탑신전체를 받치고 있다. 탑의 기둥, 벽면, 처마 등의 지붕은 평탄하고 끝에서는 곡선을 이루면서 살짝 위로 들려 부드러운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때문에 미륵사는 백제시대 사찰 건립과 목탑·석탑 축조기술을 보여주는 독보적이고 독특한 증거이자 고대 가람의 실체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은 원래는 사각 형태의 9층이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현재는 6층까지만 남아있다.

1999년 해체 보수정비가 결정되었으며, 2001년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해체조사 및 보수 정비를 추진 중에 있다.

지난 2009년 1월14일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 과정에서 ‘사리장엄’이 발견되면서 미륵사지의 역사적 가치가 빛을 발했다.

사리장엄에서는 금동제 사리외호와 금제사리 내호, 사리봉영기 등 총 9900여점의 다양한 유물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외호 안에 사리내호, 사리내호 안에 유리제 사리병이 들어가 있어 3중첩 방식을 택하고 있다. 사리는 유리병에 봉안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유물들은 백제와 신라, 중국, 일본 등의 고대문화 교류 양상을 새롭게 밝혀주는 불교미술품으로서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백제 미술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운데 금으로 만들어진 사리봉안기(가로 15.5㎝, 세로 10.5㎝)는 백제의 왕비가 재물을 바쳐 이곳에 미륵사를 세우고 사리를 봉해 왕실의 안녕을 기원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미륵사지의 창건 내력을 연구하는 고증학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미륵사지유물전시관(063-290-6799)
/김태신 ktx@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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