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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백제 부흥군의 최후의 항전지 임존성과 대련사

흑치상지, 복신, 승려 도침... 교과서속 그 인물들이 활약했던 임존성에서...

2014.07.31(목) 23:17:32 | 이선화 (이메일주소:skhfdsj22@hanmail.net
               	skhfdsj22@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며칠전 충남넷에 한 도민리포터께서 부여 궁남지 옆에 자리잡고 있는 백제오천결사대 충혼탑과 부소산의 삼충사를 취재해서 기사를 쓰셨더군요.
최근에 궁남지에서 연꽃축제도 열렸었기에 무척 공감 가는 기사였습니다.
 
백제 후손으로서 필자도 나당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것은 참으로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임존성 산자락 아래에서

▲ 임존성 산자락 아래에서


백제부흥군의최후의항전지임존성과대련사 1


백제부흥군의최후의항전지임존성과대련사 2


백제멸망을 전후로 한 또다른 중요한 유적이 두곳 있습니다. 예산의 임존성과 대련사입니다.

임존성은 예산군 대흥면과 광시면, 금마면 등 3개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봉수산의 정상부에 구축된 석축성이죠. 성의 형태는 산 정상부를 둘러싼 테뫼식 산성으로 현재 사적 제90호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임존성 바로 아래 산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고찰 대련사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백제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었다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백제를 수복하기 위해 싸웠던 부흥군의 일원이었던 승려 도침이 있었던 절입니다.
백제부흥운동을 이끌었던 임존성과 대련사는 그래서 비운의 백제역사를 말할 때 결코 떼어놓을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임존성 우측 측벽. 오른쪽 저 너머 산 아래에 대련사가 자리잡고 있죠.

▲ 임존성 우측 측벽. 오른쪽 저 너머 산 아래에 대련사가 자리잡고 있죠.


백제부흥군의최후의항전지임존성과대련사 3


오른쪽 이 능선만 곧장  내려가면 약 300m지점 중간에 대련사가 있습니다

▲ 오른쪽 이 능선만 곧장 내려가면 약 300m지점 중간에 대련사가 있습니다


임존성을 품고 있는 봉수산은 산세가 험하고 예당 저수지, 삽교, 예당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지형으로서 외적이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운 산세를 하고 있으며 주로 북쪽 곡창지 방어를 목적으로 구축된 산성입니다.
당나라 소정방 군대도 신라 김유신 군대도 지세가 험해 이기지 못하고(삼국사기) 퇴각해야 했던 성입니다.

지난 세월을 설워라도 하듯... 들꽃 한송이가...

▲ 지난 세월을 설워라도 하듯... 들꽃 한송이가...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 무릎을 꿇은 660년, 흑치상지와 의자왕의 사촌 복신, 승려 도침이 백제 유민을 이끌고 모여 3년 반에 걸쳐 결사항전을 벌였던 곳입니다. 즉 백제부흥운동을 주도했던 은거지이자 전략적 기지였다고 할까요.
그러나 결말은 허무했습니다. 복신, 도침, 풍왕자의 대립과 유혈극, 흑치상지의 당나라 투항에 이은 역공으로 성은 함락(663년)돼 백제 부흥운동은 끝나버리죠.
 

견고하게 쌓은 성곽

▲ 견고하게 쌓은 성곽


성 중간중간에 만들어진 수구문

▲ 성 중간중간에 만들어진 수구문


백제부흥군의최후의항전지임존성과대련사 4


또한 훗날 후삼국시대에는 고려 태조 왕건과 견훤이 이 곳에서 전투를 벌였다고도 전해지는 유서깊은 곳입니다.
 
현재 복원된 임존성에는 성문터와 성문 밑으로 개울물이 흐르게 하던 수구문, 그리고 우물터가 남아있습니다.
 

성곽 돌틈에 삐죽 내민 들풀

▲ 성곽 돌틈에 삐죽 내민 들풀


전체적으로 성의 외벽은 석축으로 하고 내벽은 토석과 혼축으로 구축되어 있으며, 성의 안쪽으로는 7∼8m 정도의 내호가 돌려져 있습니다. 성의 정상부에는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어 건물지가 자리했을 것으로 생각되며, 남벽쪽으로도 넓은 평지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곳에는 백제시대의 토기편과 와편 등이 출토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당시의 성곽 모형을 여러모로 고증해 새로 축성을 했기 때문에 성곽에 쓰인 돌은 옛 스러운 느낌은 나지 않습니다. 다만 백제 후손으로서 성곽에 올라 찬란했던 웅진과 사비의 1400년전 문화대국 백제의 융성함을 추억할 뿐입니다.
 

임존성과 불과 300~400m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대련사. 의각, 도참선사가 창건한 사찰.

▲ 임존성과 불과 300~400m정도 떨어진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대련사. 의각, 도참선사가 창건한 사찰.


 

 

임존성 답사를 마치고 동쪽으로 길을 잡아 내려오면 백제 멸망 당시 나당연합군과 싸우다 전사한 병사들을 기리기 위해 의각, 도참선사가 창건한 사찰이 하나 있는데 이곳이 바로 대련사입니다.
 
이 절이 대련사라고 불리게 된 이유는 절집의 위쪽에 위치한 임존성 안에 연못과 우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큰 연꽃이 핀데서 연유한다고 한다고 합니다.
 
대련사에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에는 수령 600된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1400년전의 백제멸망, 그리고 오래된 고목...
그냥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대련사 본전인 극락전

▲ 대련사 본전인 극락전


문살 사이로 본 극락전 안 부처님상

▲ 문살 사이로 본 극락전 안 부처님상


요사채

▲ 요사채


산신각

▲ 산신각


3층탑

▲ 3층탑


대련사 극락전은(문화재자료 제177호)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식건물이고 삼층석탑이 있는데 이게 겉모양은 4층에 가깝더군요.
그리고 현존 건물로는 극락전과 노전, 산신각, 요사채가 있습니다.
 

대련사 경내 수령 600년의 고목

▲ 대련사 경내 수령 600년의 고목


대련사 경내를 둘러 본후 멀리 보이는 예산군 대흥면 마을 아래쪽을 굽어 보다가 다시 600년 수령의 고목 아래서 잠시나마 오래전 지난날의 세월을 더듬어 봅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싸우다 쓰러져간 이름도 모를 수많은 영혼들. 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대련사, 그리고 바로 위 임존성에서 마지막까지 백제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들.
그래서 그 느낌이 더 아릿하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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