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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연재소설] 미소(8) 함정

청효 표윤명 소설

2014.03.25(화) 13:46:12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미소8함정 1


그때, 흩어지는 안개 사이로 흐릿한 갈대가 한 폭의 그림처럼 눈에 들어왔다. 때늦은 기러기들이 화들짝 놀라 날아올랐다.

“드디어 뭍이요.”
화문의 반가움에 단도 고개를 끄덕여 거들었다. 이제야 지옥의 아가리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짧은 한 숨도 뱉어냈다.

갯가에 배를 댄 두 사람은 갈대숲으로 숨어들었다. 서걱거리는 마른 갈대가 연신 두 사람을 할퀴어댔다.

질척거리는 갈대숲을 한 동안 헤치고 나가자 서서히 안개가 걷혀들었다. 그제야 시야가 밝아지며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이 눈에 들어왔다. 푸른 하늘도 머리 위로 떠올랐다. 단은 화문의 뒤를 바짝 쫓았다.

“어디로 가시는지요?”
궁금한 단이 참지 못하고 묻자 화문의 대답이 거친 숨소리에 묻어나왔다.

“어딘가 인가가 있을 겁니다. 우선 인가를 찾아봅시다.”
가끔씩 여기저기에서 날아올라대는 새들로 단과 화문은 화들짝 놀라곤 했다. 단은 왠지 불안하기만 했다.

한 참을 갈대밭에서 헤맨 끝에 겨우 작은 모옥 한 채를 찾아냈다. 갈대밭 끝 언덕 아래 쓰러질 듯 서 있는 모옥 한 채를 발견했던 것이다. 단과 화문은 반가움에 허겁지겁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제야 질척거리는 갯벌을 벗어나 흙을 밟을 수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이 그렇게도 가뿐할 수가 없었다.

따스한 봄바람이 이제 완연했다. 이름 모를 들꽃들이 갯둑에 그 수수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백제 땅에도 한참 이럴 것이다.

화문은 모옥 앞에서 무어라 불러댔다. 주인을 불러대는 모양이었다. 그러자 안에서 깔끔한 차림의 아낙이 나왔다. 화문은 아낙과 연신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단은 그저 옆에서 듣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표정으로 보아 그리 나빠 보이지만은 않았다. 이어 화문이 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잠시 들어가 요기나 하고 가지요.”
화문의 웃는 얼굴에 단은 마음이 놓였다. 아낙을 따라 안으로 들자 단출한 실내가 아늑하게 반겼다. 곧이어 아낙이 먹을 것을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화문과 무어라 주고받고는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밖으로 나가기 무섭게 화문은 재빨리 먹을 것을 갈무리했다. 그리고는 단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내뺏다. 단은 어리둥절한 채로 화문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함정이요. 빨리 갑시다.”
다급한 화문의 말에 단은 또 다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화문을 따라 갈대숲으로 다시 뛰어들었다. 이어 모옥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다도적들과 내통하고 있는 끄나풀이었소.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스치는 갈대 소리에 화문의 다급한 목소리가 서걱거려댔다. 단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또 다시 바다도적이라니? 밤새 가슴 졸이며 그리도 고생을 했건만 아직도 그들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현실에 눈앞이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멀리 갈대가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도적들이 뒤쫓는 소리인 모양이었다. 화문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는 바람같이 갈대숲을 헤쳤다. 단은 고개를 쳐 박은 채 정신없이 검은 갯벌만을 내려다보며 화문의 뒤를 바짝 쫓았다. 멀리서 두런거리는 소리에 고함치는 소리도 간간히 묻혀 들려왔다. 화가 난 도적들이 발악을 해대는 모양이었다. 단의 가슴은 두려움과 공포로 연신 방망이질을 해댔다. 화문은 잘도 달렸다. 갈대 사이를 이리저리 헤치며 쏜살같이 앞으로 나아갔다.

도적들의 소리가 잠잠해지자 화문은 숨을 고르며 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그제야 단을 돌아다보았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잘 익은 가을 홍시만 같았다. 헉헉거리느라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었다. 보기에 딱할 뿐만 아니라 가엽기까지 했다.

“큰일 날 뻔 했소. 하마터면 저들의 단칼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 뻔 했소이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단의 물음에 화문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먹을 것을 꺼냈다.

“이런 외딴 곳에 여인이 혼자 머물고 있다는 것에 우선 의심을 했소이다. 게다가 여인의 옷차림이라든지 안의 치장들이 다 쓰러져가는 집에 비해 단출하기는 했지만 너무 어울리지 않았소이다.”
그제야 단도 생각을 해 보니 그럴 듯 했다. 화문의 세심한 살핌이 예사롭지 않음에 단은 화문을 다시 쳐다보았다.

“게다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인의 말투가 보통 여인네들의 말투가 아니었소. 왠지 여염집 아낙네와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지요.”
말을 하면서 화문은 먹을 것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단은 자기도 모르게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것을 어쩌지 못했다.

“이것도 큰일 날 것이오.”
말을 마친 화문은 만두와 전병을 갯바닥에 그대로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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