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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표상’ 유관순 가족의 생생한 순국 기록

2014.03.07(금) 18:48:18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유관순 가족 순국 기록   올해 3·1운동 제95주년을 맞이하여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3·1운동 피살자 645명 명부의 원문. 1953년 대한민국 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해 11월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됐다. 사진 위는 원문의 유관순 열사 일가족의 순국 사례, 아래는 한글 가로쓰기로 옮긴 것이다.

▲ 유관순 가족 순국 기록 올해 3·1운동 제95주년을 맞이하여 국가기록원이 홈페이지를 통해 일반에 공개한 3·1운동 피살자 645명 명부의 원문. 1953년 대한민국 정부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해 11월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발견됐다. 사진 위는 원문의 유관순 열사 일가족의 순국 사례, 아래는 한글 가로쓰기로 옮긴 것이다.


 
피살자 명부 원문 일반 공개
유 열사 등 645명 살해 기록
 
최초 발견…사료 가치 높아
독립유공자 선정에도 도움

 
 
이 기사에 언급된 유관순 열사 일가족의 한자명과 생몰연도 등 인적 사항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을 인용한 것으로, 피살자 명부의 기록과 서로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편집자 주>
 
 
3·1운동 당시 유관순 열사와 그 가족의 피살 기록을 담은 원문 자료가 공개돼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안전행정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올해 3·1운동 제95주년을 맞이하여 1953년 우리나라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 등재자 645명에 대한 원문 이미지를 지난달 말 온라인으로 공개했다.

이 명부에는 특히 유관순(柳寬順, 1902~1920, 건국훈장 독립장) 열사와 그녀의 아버지 유중권(柳重權, 1863~1919, 건국훈장 애국장) 선생, 어머니 이소제(李少悌, 1875~1919, 건국훈장 애국장, 명부에 ‘이씨’로 기록) 여사 등 일가족이 3·1운동에 참여했다가 감옥과 만세 현장에서 일제(日帝)에 의해 각각 살해된 사실도 낱낱이 기록되어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유관순 열사는 “3·1독립운동 만세로 인하야 왜병에게 피검(被檢)되어 옥중(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타살당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순국 일시는 단기 4255년(서기 1922년) 4월 8일, 순국 당시 연령은 17세이다.

또 아버지 유중권 선생과 어머니 이소제 여사에 대해서는 기미년(己未年, 1919년) 3월 1일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 만세 현장에서 “3·1독립운동 만세로 인하야 총살당함”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명부에 등재된 인원은 당초 630명으로 알려졌으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최종적으로 15명 늘어난 645명으로 집계되었다. 이는 다른 명부에 3·1운동 피살자가 일부 포함되었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지역별로는 경남이 185명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경기(서울·인천 포함) 177명, 충남 68명, 경북 47명, 충북 37명, 강원 30명, 전남 26명의 순이며 명부에 등재된 주소지가 북한이나 만주 등 국외 지역인 경우도 있었다.  

이 명부는 지난해 11월 국가기록원이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발견하여 일부를 처음 공개한 바 있고, 이후 내용에 대한 정밀 분석을 거쳐 이번에 원본을 일반 국민에게 공개한 것이다.

명부는 1952년 12월 15일 열린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가 전국적으로 조사해 작성했으며,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 외에 ‘일본 진재(震災, 관동대지진)시 피살자 명부’(1권),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도 포함되어 있다.

명부 원본은 이미 학계 전문가들 사이에서 그동안 3·1 운동과 관련하여 발견된 적이 없는 중요한 사료(史料)로 평가되고 있다.

그 동안 국내·외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최초의 피살자 명부이기 때문이다.

특히 각 도와 군, 읍·면별로 성명, 나이, 주소는 물론 순국 일시와 장소, 순국 당시 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향후 독립유공자 선정에도 크게 도움이 될 전망이다.

순국 상황에는 총살부터 옥사(獄死), 칼로 타살·도살, 구타 사망, 고문 치사 등 피살 방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참혹함을 엿볼 수 있다. 

그동안 3·1운동 당시 순국한 분 중에서 공식적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숫자는 현재까지 총 391명에 불과한 바, 지금까지는 어떠한 명부도 발견되지 않아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실제로 충청도의 경우 지난해 11월 최초 공개 당시 총 100명 가운데 31명만 기존에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고, 69명은 공개 자료를 통해 추가로 확인되었다. 군별로는 천안군은 29명 중 16명이, 예산군은 10명 중 7명이 새롭게 발견되었다.

명부 원문은 국가기록원 홈페이지(www.archives.go.kr)에서 열람할 수 있다.
●국가기록원 특수기록관리과(경기 성남) 031-750-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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