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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건 사람 마음

충남의 재발견 (27) 공주 갑사

2013.11.05(화) 14:51:10 | 도정신문 (이메일주소:deun127@korea.kr
               	deun127@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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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둘러싼 만추(晩秋)의 절경
다양한 먹거리에 산책·등산도 좋아


아차 싶었다. 27일경 계룡산의 단풍이 절정에 달할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를 듣고 찾은 갑사였지만, 푸른 잎들은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피어 있었다. 월급날 맛있는 야식을 들고 퇴근한다던 아버지가 술만 잔뜩 취해 돌아온 것에 절망한 아이 같이, 마음 한구석에 골이 났다. ‘춘마곡추갑사’로 불릴 만큼 가을 절경이 뛰어난 곳에서 단풍의 비경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게 서운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러한 불평이 괜한 투정에 가까운 것임을 깨달았다. 사실 갑사를 둘러싼 계곡의 상당 부분은 이미 붉은빛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다만 절정이 아니었을 뿐이다. 가만히 살피면 이미 노란색으로 탈색한 녀석들도 꽤 많았고, 떨어진 낙엽은 사람들의 발길에 나뒹굴었다. 멀리서 산머리를 조망해 보면 붉고 푸른 색감이 조화롭게 연출된다. 한 치의 틈도 없이 푸른 배경 사이에 붉은빛들이 점묘법으로 묘사된 듯 강렬한 인상을 전한다.

마음을 기울이면 절정의 가을이 아닌 과정의 가을이 보인다. 천천히 오래두고 보아야 아름답다는 말처럼, 갑사의 가을도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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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냄새로 정겨운 풍경

월요일 오전이라 한가할 것으로 생각했던 갑사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고 대형 버스도 여러 대 주차돼 있었다. 갑사로 향하는 길에는 많은 이들이 오갔다. 가을 마중을 나온 사람들로 갑사에 활기가 넘쳤다. 사람의 활기는 상인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일이다. 갑사 입구에는 은행과 밤 등을 연탄불에 구워 파는 할머니들로 장사진을 이뤘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통해 온몸으로 퍼졌다. 참지 못하고 5000원에 군밤 한 봉지를 손에 넣었다. 그렇게 갑사 산책은 담백한 맛과 함께 시작했다.

갑사로 오르는 길 내내 젊은 연인과 중년 부부, 단체 관광객들로 붐볐다. 추풍에 떨어지는 잎사귀와 같이 이들은 저마다의 사정에 따라 길을 걷고 흩어졌다.

덩굴처럼 대웅전에 마음을 기대다

갑사 입구에서 대웅전까지는 1.2km로 가벼운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오르는 길은 벽돌로 포장된 곳과 자연탐방로로 갈라진다. 연인과 함께라면 한적하게 뻗은 포장길로, 아이가 있다면 탐방로를 추천한다. 탐방로에는 산과 동물을 주제로 한 도감을 비롯해 나무와 새의 종류를 알아맞히는 시설물까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 그러나 혼자 걷거나 인적이 드문 날이면 탐방로를 피해가기를 권한다.

아날로그의 비애랄까, 공간의 적막함 가운데 시간에 풍화되고 빛바래진 시설물들이 주는 분위기는 어쩔 수 없이 세월에 소멸돼야 하는 몸뚱어리의 처량함을 자극한다. 이날 걸은 탐방로가 꼭 그러했다.

탐방로 출구는 곧바로 사천왕문으로 이어진다. 사천왕문에 도달하면 공간의 질료가 다소 무거워지는 느낌이 든다. 찰나(刹那)의 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기 두려운 탓이다.

우리나라의 사찰 대부분은 일주문, 사천왕문(금강문), 해탈문(불이문) 등 세 개의 문이 있다. 일주문은 부처의 땅에 나아가기 전 번뇌를 놓고 맑은 일심(一心)을 갖추라는 의미다. 사천왕문은 네 명의 사천왕이 지키고 있어 깨달음을 얻지 못하거나 불심이 없다면 통과할 수 없다. 어찌 됐던 해탈이건 가을이건, 분명한 것은 세상사에서 무엇이 된다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일이다.

사천왕문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바로 대웅전에 달한다. 대웅전 아래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와 소박한 형식의 오두막 풍경은 보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이 사실은 육체의 눈이 마음의 작용에 깊게 관여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눈부시게 맑고 아름다운 가을 날, 갑사의 풍광에 눈이 먼 사람들은 다들 부처의 마음을 품는 법이다.

작은 계단을 오르면 대웅전이 펼쳐진다. 대웅전에는 사람들의 염원이 가득하다. 등산복을 차려입은 한 무리의 중년 여인들이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린다. 엄숙함을 넘어 비장함을 느낄 정도로 진지한 기도다. 무엇을 그리 비는 것일까. 조금 전 탐방로에서 읽은 덩굴이 떠올랐다. 혼자 설 수 없는 덩굴같이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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벅차야 모습을 드러내는 금잔디고개

대웅전을 지나 갑사 뒤편으로 나가면 본격적인 산행 코스가 시작한다. 여러 갈래 길 중 2.3km 거리의 금잔디고개를 선택했다. 금잔디고개는 갑사에서 동학사로 넘어가는 산마루 격이다. 금잔디고개로 향하는 길옆에는 계곡이 벗 삼아 이어진다. 계곡 물은 매우 맑아 뛰어들고 싶은 욕구마저 일게 한다. 고개에 오르는 중간에는 용문폭포가 나온다. 용문폭포는 그 규모가 소박하다. 구름 한 점 없는 광활한 하늘에 홀로 떠 있는 비행기의 적막함처럼, 넓적한 돌들에 둘러싸여 고요히 흐른다. 나이아가라 폭포같이 압도적인 규모는 없지만, 주위 사물들을 침범하지 않고 온전히 보존하는 형식으로 흐르는 모습이 무척 단아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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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폭포를 지나고부터는 다소 숨이 거칠어진다. 그래도 고도가 높아질수록 더 붉어지는 단풍 때문에 기분은 상쾌하다. 그러나 금잔디고개에 오르기 전 500m지점부터는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안내표지판에도 이 구간은 ‘어려움’으로 표시 돼 있는데, 직접 오르면 그 이유를 알 게 된다. 다행인 것은 오래된 건전지처럼 인내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금잔디고개에 오르게 된다.

금잔디고개는 생각보다 무척 아담하고 남루하다. 금잔디는 없었고 헬기장과 몇 개의 벤치가 놓여 있다. 한 쪽 구석에는 평상이 놓여 있는데 여기서 짐을 풀고 잠시 누우면 피로가 싹 가신다.

/박재현 gaemi2@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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