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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광복의 횃불 이동녕선생을 만나다

2013.06.17(월) 20:03:28 | 이석구 (이메일주소:hsklske239@naver.com
               	hsklske239@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이동녕선생 생가

▲기념관


 

이동녕선생 생가

▲ 이동녕선생 생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몸 바치신 이동녕선생의 생가와 기념관이 충남 천안 목천 동리에 있다.
 
기념관에서는 이동녕선생의 숭고한 사상과 참된 생애를 만나 볼 수 있다.
 
이동녕선생(李東寧 1869-1940)은 호는 석오(石吾)이며 독립운동가로 천안 목천에서 의성 군수를 지낸 이병옥님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항일운동, 계몽운동,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다.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 투쟁을 벌이다가 투옥되었다. 출감 후 북간도 용정으로 망명하여 우리나라 최초 민족교육기관인 서전의숙(書甸義塾)을 설립하여 독립운동 인재를 양성하였다.
 
1907년 귀국 후 안창호 김구 등과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여 국권회복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3.1운동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주역으로 의정원 초대 의장이 되어 국호, 임시헌법, 관제제정, 민주공화정부 수립을 선포하였다.
국무총리, 주석 등의 중책을 계속 역임하여 실질적인  임시정부를 이끌었다.
 
1940년 72세 때 급성폐렴으로 광복의 영광을 못 본 채 중국 기강에서 서거하였다.
광복 후 유해는 효창공원에 안장되었다.
 
일평생을 오직 조국 광복을 위해서 일신을 기꺼이 희생하신 이동녕선생의 거룩한 위업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동녕선생 기념관을 찾아오는 길은 충남 천안역이나 버스 터미널에서 목천 독립기념관 앞까지 12㎞쯤 가서 독립기념관 앞을 통과하여 목천읍내를 지나 1㎞쯤 가면 나온다.
 
기념관 앞산의 왜가리 서식처에서 왜가리 떼를 볼 수 있다.
 
참고 : 국사백과사전 , 석오 이동녕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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