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합검색 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화면컨트롤메뉴
인쇄하기

지역신문뉴스

탈출구 없는 막막한 벼랑끝 인생

큰 아들 의문의 죽음, 둘째 아들 행불, 남편과 딸은 병들고…삶의 무게는 ‘천근만근’

2013.06.03(월) 11:57:40 | 충남시사신문 (이메일주소:yasa3250@empas.com
               	yasa3250@empas.com)

수 십 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한영숙씨. 큰 아들은 죽고, 둘째 아들은 행방불명되고, 셋째 아들은 해외입양, 막내딸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어 소설로도 표현하기 힘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 수 십 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려온 한영숙씨. 큰 아들은 죽고, 둘째 아들은 행방불명되고, 셋째 아들은 해외입양, 막내딸은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어 소설로도 표현하기 힘든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


이보다 기구한 삶이 어디에 있을까.

한영숙(58, 아산시 방축동)씨는 18살 되던 해 지인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유복자로 태어난 남편은 가난한 10남매 집안의 막내였다. 시집가던 첫 해부터 한영숙씨는 남편의 큰형님을 시부모님처럼 모시고 살았다. 한영숙씨는 집안의 모든 일을 도맡아 하면서 이혼한 시누이의 자식들까지 돌보는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결혼하고 보니 당시 23살의 남편은 병역기피자로 수배상태였다. 큰 형님이 동생을 군대에도 보내지 않고 돈벌이를 시키기 위해 병역통지서를 빼돌렸던 것이다. 남편이 뼈빠지게 일해 받아온 월급은 한영숙씨의 손에는 단 한 푼도 쥐어지지 않고 형제 중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시집살이보다 고통스러운 것은 남편의 주사였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형제들로부터 분가를 하게 된다. 평소 말 수가 적은 남편은 술만 마시면 돌변해 온 가족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고, 날이 갈수록 폭행 정도가 심해졌다. 심지어 엄마를 때리는 모습을 참지 못해 말리던 둘째 아들의 허리에 술병을 깨뜨려 찌르는 패륜까지 저질렀다.

가정폭력 일삼던 남편, 지금은 식물인간

그러던 남편이 어느 날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쓰러졌다. 주변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며 그만 편하게 보내자고 말했다. 그러나 한영숙씨는 남편을 대학병원까지 데려가 살려냈다. 이것이 잘 한 일인지 모르지만 그때는 막연하게 그래야 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선택은 없는 살림에 경제적 압박뿐만 아니라 큰 짐으로 돌아왔다. 남편을 살리고 나니 수입한 푼 없는 한영숙씨에게 청구된 병원비는 900만원이 넘었다. 남편이 입원중인 천안 그린필 요양병원에서는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병원비 500만원을 절감해 주었다. 그러나 나머지 400만원은 그대로 빚으로 남아 있다.

한영숙씨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남편의 유일한 보호자가 됐다.  

첫째 아들은 의문의 죽음

첫째 아들은 누구보다 성실했다. 집을 뛰쳐나가 천안역 인근에서 노숙자로 전전하던 남편을 찾아내 여인숙에 모시고 흩어진 가족을 불러 모아 살림을 차려줬다.

택시운전과 막일을 해가며 동생들을 학교에 보냈고, 가족들을 위해 생활비를 벌어 보내줬다.

한영숙씨에게는 가장 위안이 되는 든든한 아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믿고 의지하던 큰 아들은 타살로 의심되는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정확한 사인도 규명하지 못한 채 아들과 이별했다. 더 이상 한영숙씨가 기댈 수 있는 아들도, 생활비를 보태주던 아들도 사라진 것이다.

둘째 아들은 행방불명

둘째 아들은 남편에게 매맞는 엄마를 보호하려고 아버지에게 저항하다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허리를 찔렸다. 그때 둘째 아들은 몸에 난 상처보다 더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언제부턴가 둘째 아들은 남편보다 더 난폭하게 돌변해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특히 자신의 여동생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끔찍한 폭행을 가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은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연락이 두절됐다. 한영숙씨와 딸에게는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언제 다시 나타나 가족에게 잔인하고 끔찍한 폭력을 휘두를지 몰라 조마조마 하다. 둘째 아들 역시 한영숙와 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다.

셋째 아들은 해외입양

한영숙씨에게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낳자마자 홀트아동복지회에 해외입양을 맡겼다. 지금은 어찌 살고 있는지 궁금하기는 하지만 일찌감치 만나려는 생각은 접었다. 셋째 아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건 지금 자신의 존재는 아들에게 부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딸은 혼자 둘 수 없는 정신질환

건강한 모습으로 전자회사에 다니던 딸도 어느 날 갑자기 간질로 쓰러져, 단 한순간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됐다.

▲ 건강한 모습으로 전자회사에 다니던 딸도 어느 날 갑자기 간질로 쓰러져, 단 한순간도 보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가 됐다.


마지막으로 딸 이야기는 꺼내기도 전부터 속이 먹먹해 온다. 딸은 남편이 병들기 전 천안역 인근 여인숙 단칸방에 살 때부터 큰 아들이 학비와 교통비, 용돈까지 주며 뒷바라지를 해줬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치고 전자회사에 취직해 제법 돈벌이 하며 정상적인 생활을 하며 꿈을 키웠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잠자던 딸의 몸이 뻣뻣해지고 입에서는 피가 흘렀다. 구급차를 불러 응급실로 달려갔는데 병원에서는 간질이라고 진단했다. 딸은 그날 이후 잦은 발작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의사소통마저도 불가능해졌다. 누군가 옆에서 보살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딸이 이렇게 된 이유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니 딸은 전자회사에 근무할 때 방진복을 입고 2교대로 일했으며, 기계장치가 폭발하는 등 근무환경의 어려움을 토로했었다고 한다. 친가나 외가 어디에도 간질환자가 없었던 점으로 미뤄 근무환경 탓으로 의심하고 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지만…

살림이랄 것도 없는 세간이 종이상자에 담겨 벽면 한편에 쌓여 있다.

▲ 살림이랄 것도 없는 세간이 종이상자에 담겨 벽면 한편에 쌓여 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숨 돌릴 새도 없이 정신없이 살아왔다.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한영숙씨는 현실로부터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갈 곳이 없다. 삶의 무게는 천근만근 이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한다.

현재 한영숙씨는 환기도 되지 않고 곰팡이 냄새로 퀴퀴한 방에 딸과 단 둘이 살고 있다. 이렇게 허름한 집이지만 월세는 26만원이다. 29만원의 기초생활비를 받아 방값을 내면 3만원이 남는다.

일용직, 파출부, 식당 허드렛일 등 돈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하고 싶지만 정신나간 서른 한 살의 딸이 그를 자유롭게 놔주지 않는다. 딸이 언제 다시 발작을 일으킬지 몰라 불안해서 단 한나절도 집을 비우기가 어렵다.

한영숙씨는 이 벼랑 끝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요즘은 수 십 년간 남편에게 매 맞은 후유증까지 골병으로 남아 그녀를 괴롭히고 있다.
도움주실 분: 041) 537-3217(아산시 온양4동)
 

충남시사신문님의 다른 기사 보기

[충남시사신문님의 SNS]
댓글 작성 폼

댓글작성

충남넷 카카오톡 네이버

* 충청남도 홈페이지 또는 SNS사이트에 로그인 후 작성이 가능합니다.

불건전 댓글에 대해서 사전통보없이 관리자에 의해 삭제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