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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정책

농촌은 아름다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

마을 이야기가 담긴 벽화 재능봉사하는 박현 화백

2012.07.24(화) 09:43:48 | 사람사는세상 (이메일주소:leehappyday@hanmail.net
               	leehappyday@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공생공소' 저온저장고 벽화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현 화백

▲'공생공소' 저온저장고 벽화앞에서 포즈를 취한 박현 화백

 

흔히 ‘시골’하면 떠올리는 것이 ‘맑은 공기’입니다. 그런데 이것에서 더 나아가 ‘우리 농촌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년 전 충남 태안으로 귀촌한 후 우리 농촌에 공공미술의 개념을 심어 마을 환경 개선을 추구하는 박 현(51) 화백 입니다.

박 화백은 현재 공공미술 관련 정보를 취합하고 전파하는 ‘박엔드윤 공공미술연구소’를 운영하면서, 재능기부의 일환으로 농촌마을 벽화 그리기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미 세계 최대 벽화로 기네스등재를 추진중인 태안희망벽화를 그려낸 화려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우리 농촌마을에서 공공미술을 펼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공주의 한 로컬푸드 마을기업에서 벽화재능기부를 마친 박화백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0년전 귀촌후 농촌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게됐다는 박 화백.

▲10년전 귀촌후 농촌 공공미술에 관심을 갖게됐다는 박 화백.

-이름이 두 개라고요?

“네. 본명은 박병철인에, 현명하게 살아보자는 생각으로 화가 이름은 박현 입니다.”

-만나면 이 질문을 가장 먼저 하고 싶었어요. 왜 농촌마을을 찾아다니며 벽화를 그리나요? 다른 많은 사람들도 궁금하게 생각해요.

“10여 년 전 충남 태안으로 귀촌했어요. 귀촌을 하고 보니 우리나라 농촌에서 공공미술이라는 것이 너무 약하더군요. 당시 도시에는 공공미술의 개념이 많이 생겨났거든요. 그런데 시골에는 여기에 대해 전문가도 없었고, 누구하나 나서서 이야기하는 사람도 없었죠. 그래서 귀촌 후 2년 여를 여기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면 귀촌 후 첫 작품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태안에 온 후 첫 작품을 그린 곳은 다름아닌 전봇대에요. 전봇대에 전단지들을 많이 붙이잖아요. 태안군청 담당자가 고민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전봇대에 그림을 그려 놓으면 사람들이 좀 덜할까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데 마침 본드가 잘 안붙는 페인트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2006년에 전봇대 100여 개에 태안의 상징인 해당화랑 다른 꽃 등을 그렸어요. 그것을 계기로 태안 상하수도사업소 건물 벽에 태안의 사계를 그렸고, 그렇게 지역 공공미술 활동이 확대됐죠.”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를 추진중인 그림이 있다고 하던데요?

“2009년 이원방조제 벽에 그린 ‘태안희망벽화’에요. 2007년 태안 원유 유출사고에 대한 희망을 그린거죠. 높이 7m에 길이가 2.7㎞, 면적은 2만 ㎡에요. 실제 가보면 끝이 안보이죠. 9개월 동안 연 5000명이 참여했어요. 그리고 그 벽화에는 6만 7000개의 사람 손자국이 있어요. 태안의 회복과 희망을 꿈꾸는 당시 피해복구 자원봉사자와 태안군민 등의 핸드페인트에요.”

봉사자, 마을 주민과 함께 작업한 아산 내이랑마을 벽화.

▲봉사자, 마을 주민과 함께 작업한 아산 내이랑마을 벽화.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요?

“충남 아산 내이랑마을 벽화에요. 이 마을에 있는 높이 5m, 길이가 80m나 되는 고물상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죠. 당시 정보화마을 담당이었던 김금숙 선생님과 우문현답 조남준 씨가 함께 했죠.”

-어떤 면에서 기억에 남는거죠?

“가장 확실한 것은 그 마을 사람들의 생각이에요. 내이랑마을은 농촌에서 도시화로 진행되는 묘한 상태의 마을이죠. 그런데 주민들이 마을에 있는 고물상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자기들 마을의 일부분이기에 안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거에요. 그래서인지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마을주민과 나, 자원봉사자들까지도 의식공유가 확실하게 잘됐어요. 그래서 더욱 보람되고 아주 의미 있는 일이었죠. 특히 이 작업을 계기로 김금숙 선생님이 우리 충남 농촌 마을 발전에 보석같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올해는 농촌마을 벽화그리기를 얼마나 추진하고 있나요?

“올해부터 농림수산식품부의 스마일재능뱅크의 재능기부를 통해 본격적인 농촌마을 벽화 그리기를 하고 있어요. 지난 5월 충남 서산 차리마을을 시작으로 영화 ‘웰컴투동막골’로 유명한 강원도 평창마을 등 올해 총 35개 마을에 벽화를 그려요. 1년 중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때가 5월부터 11월까지 약 32주라고 하면 1주일에 하나씩은 무조건 해야죠.”

-그러면 무척이나 바쁜 일정 아닌가요?

“맞아요. 벽화 그리기는 다른 재능기부와 다르게 반드시 사전 작업을 거쳐야 합니다. 그 마을의 정서나 전설, 특산물 같은 기본 조사는 물론, 주민들이 어떤 그림을 원하는지, 작업 조건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사전에 파악해야 하죠. 그것을 토대로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주민들과 상의를 한 후에야 본격적인 그리기를 할 수 있어요. 그래도 재능기부 자원봉사자 덕분에 바쁘지만 잘 하고는 있어요.”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 벽화를 그리지요

▲ 마을의 이야기를 담아 벽화를 그린다는 박 화백. 올해 35개 마을에 재능기부한다.

-농촌 벽화 그리기를 하면서 생각한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면요?

“그림을 그리는 제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 농촌은 문화예술에 대한 기초가 너무 없어요. 지금 신경쓰지 않으면 나중엔 고치려고 해도 고쳐지지 않게되죠.”

-다소 어려운 얘기일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요?

“요즘 농촌에 많이 지어지는 집이며 창고의 자재 색깔을 보세요. 베이지색 아니면 회색이죠. 주변의 환경과 너무 안맞는 색이에요. 이런 것은 정부에서 디자인 시안과 모델을 만들어주면 훗날 훨씬 좋아질텐데요. 유럽은 이런 것이 전통적으로 상당히 잘 되어 있어요. 우리가 외국 농촌 멋있다고만 말하면서 왜 우리나라는 그렇게 못하냐는 것이지요. 이런 인식을 국민들과 공유해야 해요.”

-왜 그런가요?

“어느 사이 우리 농촌의 건축물에서 전통이나 철학이 사라졌어요. 지붕 색깔이 빨강이나 파랑 아니면 우레탄 색이죠. 주변의 환경 색채와 전혀 안맞아요. 이런 것을 해결할 전문가 집단의 조언이 필요해요. 농촌이 소득을 높이고 방문객 늘리려고 하는데, 그럴려면 환경이 같이 가야 합니다. 이것이 안되면 앞으로 우리 농촌은 과거 우리가 급작스런 도시화에서 겪었던 문제를 똑같이 겪을 수 있어요.”

올해는 벽화그리기 재능기부에 전념할 거예요

▲ 올해는 벽화그리기 재능기부 다음엔 마을개선 환경사업을 폭넓게 하고 싶다고.

-앞으로의 계획은요?

“시골이 ‘좋다’ 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한 농촌마을 환경 개선에 밑거름이 되고 싶어요. 내 다음 세대에서라도 농촌에 변화가 되는 씨앗의 역할을 하는 거죠. 특히 올해는 벽화 그리기 재능 기부에 전념할거에요. 그리고 다음엔 마을 환경 개선 사업을 더 폭넓게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 우리 농촌마을 여기저기를 가로지르는 교량의 콘크리트 교각들을 그림으로 바꾸는 것이요. 내후년부터 할 예정이에요.”

-꿈이 있다면요?

“태안희망벽화 그리기 이후 태안에서 세계 최초 벽화 비엔날레를 열고 싶어요. 시도는 해봤는데 지자체나 기관 등과 협의가 안되어 ‘아직 시기가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있죠. 그래도 꿈은 버리지 않고 있어요.”

일주일에 하나 꼴로 마을 벽화를 그리느라 눈코 뜰 새 없는 박 화백에게는 또 다른 일이 있습니다. 지난 2007년 태안을 검은 바다로 만든 서해안 원유 유출사고 피해모임의 이원면 사무국장 역할입니다. 그는 현재 오는 12월 대전지방법원 서산지원에서 열릴 유류피해 대상 기각자에 대한 사정 재판(유류피해 선주 책임제한 절차 개시신청)을 준비하기 위해 주민들의 의견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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