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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구순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번씩 보따리를 싸신다

어머니를 배웅하며 12 - 어떤 치매

2012.07.22(일) 23:26:17 | 오명희 (이메일주소:omh1229@hanmail.net
               	omh122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구순의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보따리를 싸신다. 당신의 옷가지며 소지품 등을 보자기와 가방 가득 꾸려놓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치신다. 이제는 당신이 평생 살아온 보금자리도 먼 기억 속으로 사라진 듯, 집에 데려다 달라면서 생떼를 쓰곤 하신다. 그리고는 이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주문처럼 외우고서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코를 드르릉 골면서 곧바로 잠이 드시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얼마 전엔 퇴근 후 남편과 함께 어머니 방에 들어서고는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평소 말끔하게 정리 정돈되어 있던 방이 마치 쓰레기장처럼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남편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이동변기에 물티슈며 화장지를 몽땅 풀어놓았던 것이다. 휴지통까지 여기저기 쏟아놓아 방안은 온통 쓰레기장이 되어 있었다.

언제나 간식 통에 넣어 두었던 아이스 팩을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당신의 이불 속에 깊숙이 감춰놓았다. 그리고는 하얀 두루마리 화장지를 몽땅 풀어 홑이불처럼 뒤집어쓰고 있는 게 아닌가. 요즘 부쩍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일들이 무수히 벌어지고 있다. 지금껏 맏며느리로 어언 31년간을 어머니와 함께 해오며 묵묵히 앞만 보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이런 내 삶이 정녕 옳은 것인지 스스로 자문을 던져보기도 한다.

아마도 어머니의 병시중을 도맡아 하는 남편이 가장 힘들 것이다. 나는 출퇴근 전후에나 함께하지만 그 외 시간은 순전히 남편의 몫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모가 있기에 존재하지만 잊고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런데 남편은 장남이라는 이유로 모든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런 내색 없이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묵묵히 해내고 있으니, 감사할 뿐이다.

어머니의 병시중을 한지도 어느새 6년째다. 이따금 주위 분들은 시설에 모시지 왜 사서 고생을 하느냐고도 한다. 그런데 맏이의 입장으로선 그 변화가 쉽지 않다. 작년 3월, 어머니를 노인병원에서 모셔오기까지 나는 무려 한 달간을 심한 불면증으로 시달려야만 했다. 어언 1년 남짓 꿈만 같았던 우리 가족만의 삶이 또다시 과거로 향해야 할 생각에, 내심 부담이 컸던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정리하고자 남편과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는 서둘러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왔다. 그러다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아서였다. 그때는 어머니의 건강도 많이 안 좋아, 남편에게 앞으로 6개월 후면 돌아가신다는 마음가짐으로 모셔 보자고 했는데, 벌써 1년을 훌쩍 넘어 반 년째가 되어간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지금에 처한 난관을 꿋꿋하게 헤쳐 나가면 우리 가족에게도 머지않아 봄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승리의 여신처럼 가슴 뭉클한 날들이 올 것만 같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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