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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배움에 센스 넘치는 우리 어머님

2012.03.27(화) | 양창숙 (이메일주소:qkdvudrnjs@hanmail.net
               	qkdvudrnjs@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가난한게 죄는 아닙니다. 다만 불편할 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움도 그렇죠. 못배운게 죄는 아니지만 한이 되는 경우는 있는듯 합니다. 배우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일겁니다.
 
작년 가을 추석날 이었습니다.  충남 예산에 계신 시댁에 가서 차례 음식 준비를 하면서 집안 여기저기 왔다갔다 하던중 안방 TV가 있는 장식장 서랍에서 난데없는 중학생 참고서를 발견했습니다. 몇십년전 남편이 공부하던 고서(?)가 아니라 그해 발간된 최신판 중학생 참고서 말이죠. 그것도 한두권이 아니라 과목별로 골고루...

 그때는 명절이기도 해서 바쁜 탓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두달쯤 지나 그 일이 떠올라 남편에게는 시부모님께 사골이라도 좀 고아 드려야겠다며 예산의 시댁으로 득달같이 찾아 갔습니다. 어머님이 주방에 가신 사이 그 서랍을 열어보니 역시나 참고서가 그대로 있더군요. 그리고 놀라운건 두달전보다 학습 진도가 더 나아간 상태였더랬습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며 물었습니다. 어떻게 된건지, 중학생 책을 공부 하시는 분이 아버님이신지 어머님이신지요.  남편은 처음엔 자기도 몰랐다며 반신반의 하다가 내가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자 아마도 어머님이 그러시는것 같다는 추정(?)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초등학교만 간신히 나오신걸로 알고 있다며.

 “여보,. 내가 주말마다 어머님께 가 볼까?”
 남편이 나를 한동안 빤히 바라봤습니다. 정말 어머님이 중학교 과정을 공부 하시는거라면 그래도 그보다 조금 더 배운 젊은 며느리가 가르쳐 드리면 공부에 훨씬 도움이 될것 같아 일종의 ‘가정교사’ 역할을 해드리겠다는 나의 생각에 남편은 고마워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남편은 직업이 운전이니 시간이 여의치 않고, 그나마 나도 직장에 다니며 아이들 키우고 가정 일 하느라 바쁘긴 했지만 어머님이 배움의 한을 풀고 싶어하시는데야 나몰라라 할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주에 당장 시댁에 다시 찾아 갔습니다.

 “얘가 웬일이냐? 또 오게! 애비하고 싸웠냐?”
 어머님의 농담에 나는 “호호호 어머님은... 싸우긴요. 저는 어머님이 좋아서 왔는데요”라며 어머님 팔짱을 끼고 그 TV 장식장 앞으로 가서 서랍을 열어 제꼈죠. 어머님이 화들짝 놀랬습니다. 그리곤 얼굴이 빨개 지시며 무척 부끄러워 하셨습니다.

 “어머님. 놀라지 마세요. 알고 있었걸랑요. 제가 좀 더 빨리 도와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 난... 뭐 그저... 심심풀이로...”
 어머님은 짐짓 딴청을 피우셨지만 그게 아니란걸 다 아는 며느리는 솔직히 말씀 드렸습니다.
 “어머님.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 너무 훌륭하셔요. 그리고 그건 창피한게 아니잖아요. 오늘부터 주말마다 제가 올거예요. 저를 깎듯하게 과외 선생님(?)으로 대우해 주실거죠?”
 “뭐? 뭐라구?... 주말마다 와서 날 갈르쳐 준다구!!”

 어머님의 얼굴에 남북통일보다 더 큰 기쁨의 화색이 돌았습니다. 금세라도 대한독립 만세 삼창이 나올듯한 분위기였죠.

 그렇게 첫날 오전 오후로 나누어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어머님의 기쁨은 물론이고 나 또한 마음이 너무나 날아갈듯 좋았습니다.

 그 날 이후 내가 시댁으로 가서 주말 과외 교사가 되어 공부를 가르켜 드렸습니다. 어머님은 요즘 아이들말로 열공(?)을 했습니다. 늦으신 연세지만 저희 시어머님 공부 센스가 대단하셨습니다. 마치 어린아이들처럼 가르쳐 드린 내용을 스폰지처럼 쭉쭉 빨아들이셨습니다. 정말 의지가 강하면 못할게 없는게 사람의 힘이란걸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열공 몇 달째입니다. 어머니는 당장 중학교 과정을 다 익히고 고입 검정고시를 보고... 등등 그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신게 아닙니다. 그저 그때 못배운 ‘고놈의 공부’가 어떻게 생겨먹은건지, 말로만 듣던 역사니 세계사니, 사회니, 생물이니 하는 과목들이 과연 어떻게 된건지 너무나 알고싶으셨답니다. 

 “얘. 너 혹시 나 공부 가르키며 귀찮지 않니? 재미도 없고...”
 “어머님, 무슨 말씀을요. 저는 어머니가 혹시 나중에 고입 검정고시 치루신다면서 수석 할까봐 걱정인데요. 호호호... ”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요? 천부적으로 머리가 좋으신 우리 어머님, 특별한 욕심 없이 정말 잘 배우시고 익히십니다.

  “어렸을때 가정조사 항목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부모님의 학력이었거덩. 근데 나는 항상 어머니의 학력을 <중졸>이라 썼어. 엄마가 중졸이라고 하셨으니까. 그런데 내가 대학에 갔을때 그게 아니라는걸 알았지. 엄마는 내가 창피할까봐 거짓말 하신거래. 그때 엄마가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 뒤로 나도 마음이 내내 편치 않았어. 근데 이제사 마누라 덕분에 어머님의 눈물을 씻어드릴수 있게 됐네. 고마워 여보”

 남편의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나를 꼬옥 안아주더군요. 정말 배우고 싶어 그 늙으막에 다시 책을 잡으신 어머님. 앞으로 더 공부하시고, 더 많이 배우시도록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머님,  나중에 8순에 대학 가신다고 하시면 어쩌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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