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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이야기

공북루에 얽힌 공주갑부 '김갑순' 일화

공주의 금강을 만나다

2012.01.21(토) | 천영환 (이메일주소:chun1000y@gmail.com
               	chun1000y@gmail.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의 다리가 놓이기 전에, 공주를 가로지르는 금강을 건너기 위해서 꼭 지나가야 하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이 바로 ‘공북루’이다.

공북루의 안내판에는 '공북루는 유형문화재 제 37호로써 공산성의 북문으로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남북통로로 이용되었다. 1603년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 터에 다시 지어 공북루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아래는 성으로 통하는 통로이고, 그 위를 마루로 만들어 강가의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는 장소로 이용하였다. 건물 안에는 여러 글과 시 등이 걸려 있어 풍취를 더해 주고 있으며,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루로 평가받고 있다.' 고 적혀 있다.
 

  공북루에얽힌공주갑부김갑순일화 1  
▲ 공북루

공북루는 공산성의 4방에 설치된 문루 중에서 북쪽 문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문을 나서면 나루를 통하여 금강을 건너게 되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나루가 존재하지 않으며, 백제문화제가 열리는 기간에만 설치한다고 한다. 공북루의 마루에 올라서면 공주를 흐르는 금강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지금은 드문드문 강바닥의 모래가 보일 정도로 수심이 얕지만, 예전에는 소금을 나르는 배가 왕래했을 정도로 수심이 깊었다고 한다. 물이 그만큼 잘 흘렀기 때문이다. 또 수질이 깨끗해 그 당시에는 금강물을 그대로 마셨다고 한다. 조금 더 알아보니, 1930년대 후반까지는 물길 기능을 수행했고, 1970년대까지는 물을 그냥 마셔도 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인물은 썩는다고 했던가. 1970년대 후반 대청댐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수위도 낮아지고, 물놀이조차 못할 정도로 오염이 심각해졌다고 한다.

지금은 이런 상황이지만, 공북루는 내륙에서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서 꼭 거쳐야만 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공북루를 지나 나루에서 배를 타고 금강을 건너야만 서울로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사람이 북적북적 했을까.

사람이 그렇게 많이 지나다니고 꼭 이곳을 지나야만 하니 돈에 눈밝은 사람들이 이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우리나라 3대 부자중의 한사람인 공주부자 ‘김갑순’이 여기서 배를 빌려주는 사업(현재로 보자면 배 렌트업)을 했었다고 한다.

 

  공북루에얽힌공주갑부김갑순일화 2  
▲ 공북루에서 금강을 바라본 모습

나중에는 강북과 강남을 잇는 떠있는 배다리를 만들어 그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통행료를 받았다고 한다. 지금의 민자 유료도로인 셈이다.

 그 후에는 여러 다리가 건설되어 나루는 점차 퇴화되어 없어졌지만, 서울과 호남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은 여전했다.

우리나라에 기차가 들어오기 시작해 기찻길이 놓일 쯤에 당시 교통의 중심지였던 공주에 철도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듯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양반들이 지네(기차)가 닭(계룡산)을 뚫고 지나가면 큰일난다고 노발대발 반대하여, 철도가 대전쪽으로 나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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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복루 좌측, 공산정에 올라가는 성벽과 금강의 철교.

공주 사람들의 목마름을 채워주던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하던 곳. 소금을 잔뜩 실은 배가 지나다닐 수 있도록 물길 역할을 하던 곳. 서울로 가기위해선 꼭 지나가야 하는 관문 같은 역할을 하던 곳. 공주부자 ‘김갑순’의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역할을 하던 곳. 그런, 공북루 앞. 금강이...지금은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허전한 느낌이었다.

나또한, 백제의 후예로써,  찬란했던 백제의 역사적 가치를 지금은 느낄 수 없기 때문인지.  내륙의 중심지로서 활기 넘쳤던 삶을 지금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인지.  공북루의 겨울 바람이 더욱 차디차게 느껴졌다.

 

  공북루에얽힌공주갑부김갑순일화 4  
▲ 저 멀리 보이는 공산정

공북루의 차가운 바람을 거슬러 위로 올라가 공산정에 이르렀다.

공산정은 공산성 서북쪽 산무루에 있는 누각으로 이곳에서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금강교(등록문화재 제232호)등 공주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한다. 특히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금강의 낙조와 야경은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고 한다. 공산정은 유신대, 전망대 등으로 불려오다가 2009년 시민들의 공모를 통해서 지금의 공산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 올라 금강을 바라보니, 공북루에서 볼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공북루에서는 회상과 현실의 간극에서 오는 공허함 때문에 금강이 초라해보였다면 공산정에서 바라보는 금강은 자연 그대로의 느낌을 호연지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4대강 공사현장 부분은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봐야한다.)

옛백제의 숨결과 함께 공주 금강의 과거를 느끼고 배울 수 있었던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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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정의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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