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군에는 두개의 로터리가 존재한다. 로터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을 하자면, 교통이 복잡한 사거리 같은 곳에 신호등이 아니라 우선 차량의 자율을 통한 교통정리를 위해서 만들어놓은 원형의 교차로이다.
부여는 옛 백제의 도읍지였기때문에, 도로의 정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다. 특히 로터리를 두개나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래의 지도를 보면 A 와 B 두개의 로터리가 존재한다.
A는 부여소방서가 있는 방면이고, B는 부여군청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다. 이 각 로터리 가운데에는 각각의 상징물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에 관해서 부여에 살고 있는 사람들 또한 오해를 많이 하고 있어 그 진실을 알리고자 한다.
먼저, A로터리 한 가운데에는 어떤 왕이 앉아있는 동상을 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왕이 의자에 앉아있다는 극히 단순한 사실만 가지고 의자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여기에 있는 동상은 백제의 26대 국왕인 성왕의 동상이다. 수많은 백제의 왕중에서 굳이 성왕을 세운 이유는 바로 성왕이 백제의 도읍을 사비(지금의 부여)로 천도했기 때문이다.
성왕은 538년 봄에 수도를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라 하였다. 불교를 진흥했으며 중국의 남조와 활발하게 교류하여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기도 했다. 고구려의 내정이 불안한 틈을 타서 한강 유역을 부분적으로 수복했다. (물론 나중에 신라에게 다시 뺏기긴 했지만) 이러한 업적을 가진 성왕을 부여 로터리에 세워 백제인의 긍지를 갖도록 하고자함이 아니었나 싶다. 군에 따르면, 백제의 왕도 이미지 부각을 위해 동상 4.3m, 좌대 3m, 기단 0.7m의 크기로 백제 26대 성왕(聖王) 동상을 건립했다고 한다. 앞으로는 의자왕으로 오해하는 일이 없기를 빈다.
▲ 성왕 상 |
다음으로 B 로터리의 한가운데 있는 동상은 다들 잘알고있는 계백장군의 동상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 지금의 계백장군 동상이 처음 세워졌던 계백장군 동상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계백장군 동상은 1966년 당시 김종필 국회의원과 지역의 문화인들을 중심으로 백제의 혼을 되살리려는 취지로 건립되었다. 당시 백제중학교의 미술교사 였던 조각가 고 윤석창 선생과 지역의 문화인들을 중심으로 계백장군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제작되었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이었고, 지금같이 인터넷은 물론 전화도 제대로 없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앨범속에 계백장군 동상을 만들기위해서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불철주야 연구에 연구를 거듭했던 흔적을 발견할수 있다. 이는 단순한 동상이 아니라, 백제의 혼을 되살리려 했던 큰 가치가 담겨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현재의 계백장군 동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