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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의사 생가를 다녀오다

2019.11.22(금) 15:12:56조주부(imjo_@naver.com)

광현당(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

광현당은 매헌 윤봉길 의사가 1908년 6월 21일 부친 윤황, 모친 김원상의 장남으로 태어나 4세까지 살던 집입니다.

의사의 본명은 우의이고, 봉길은 별명이며, 아호는 매헌으로 고려조의 명장 문숙공 윤관 장군의 후예입니다.

이곳은 사방으로 냇물이 둘러 있으므로 의사께서 후일 도중도(한반도 가운데 섬이란 뜻)라 이름하고 왜놈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 하여 이곳에서 온갖 시름을 달래며 독립운동의 앞날을 설계하며 정신수양을 하시던 곳입니다.

‘광현당’의 빛날 ‘광(光)’자는 윤의사의 빛나는 생애를 말함이요, 나타날 ‘현(現)’자는 높고 통달했다는 뜻으로 윤의사의 태어나심을 높이는 집[堂]이라는 뜻입니다.

이번에는 윤 의사가 성장한 집 ‘저한당’을 둘러보았습니다.

저한당은 윤봉길 의사가 4살 때부터 중국으로 망명했던 1930년 이전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이곳은 윤 의사가 오치서숙을 마치고 돌아와 문맹퇴치운동의 일환으로 야학회와 농촌부흥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한 야학방입니다.

저한당(狙韓堂)이란 이름은 ‘한국을 건져내는 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적 제229호인 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에 속해 있으며 이 사적지에는 윤봉길 의사가 4살 때부터 자란 광현당도 함께 있습니다.

윤봉길 의사는 일제시대였던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기념식이 있던 중국 상하이의 홍커우 공원에서 폭탄을 던져 일본군 상하이파견대장 등을 즉사시킨 독립운동가입니다.

국가에서는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1965년에 기념탑을 세우고 1968년에는 충의사를 세웠습니다. 그 뒤를 이어 윤 의사의 생가, 성장가 등을 복원하였고 유물관과 농촌부흥운동을 벌였던 부흥원을 세웠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기리는 윤봉길 의사 의거 기념탑입니다. 기념탑 옆쪽으로는 윤봉길 의사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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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 수정일 : 202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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