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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미소(7) 탈출

청효 표윤명 소설

2014.03.19(수) 10:25:37도정신문(deun127@korea.kr)

미소(7) 탈출 사진

“저는 저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저들은 모르지만요.”
그제야 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기회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그날 늦은 밤, 한 떼의 무리들이 다시 배를 몰아 들이닥쳤던 것이다. 포로들은 다시 밖으로 나갔고 짐을 날랐다.

검은 어둠 속에 횃불이 밝혀져 있고 가량선보다도 큰 상선이 두 척이나 포구에 정박해 있었다. 대규모 상단을 탈취해 왔던 것이다. 포로들도 많았다. 바다도적들은 예상치 못한 노획에 기분이 들떠 희희낙락 했다. 포로들에 대한 주의도 느슨해졌다.

“오늘이 좋은 날인 것 같소.”
긴장한 화문의 얼굴이 단에게로 향했다. 단도 고개를 끄덕였다. 만난 지 하루도 안됐지만 단은 화문을 믿기로 했다. 어차피 모험이 아니면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나 백제로 돌아가야만 한다. 연을 만나야 한다는 조급함이 화문을 더욱 굳게 믿게 했던 것이다.

어둠 속에 횃불이 날름거리는 가운데 군데군데 불빛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었다. 화문은 고개를 돌린 채 혼잣말로 중얼거리듯이 단에게 말을 걸었다. 

“어둑한 곳에서 급히 용변을 보는 척 하고는 빠집시다. 함께 하면 들킬 염려가 있으니 내가 먼저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도록 하시오.”
단은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침묵을 지켰다.

뱃전에는 많은 짐이 쌓여 있었다. 화문은 서너 명이 함께 들고 가는 짐에 얼른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눈치를 보며 산채로 향했다.

화문은 불빛이 미치지 않는 어둑한 곳에 이르자 다급히 아랫배를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바위 옆 어두운 곳으로 종종거리며 뛰어갔다. 사람들은 킬킬거리며 화문을 쳐다보았다. 화문은 그 자리에서 바지춤을 내리고는 볼일을 보듯 주저앉았다. 포로들은 무어라 지껄이며 화문을 향해 연신 웃음을 날려댔다.

포로들이 멀어져가자 화문은 얼른 바위를 넘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멀리서 화문의 이런 모습을 본 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단은 배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배가 아픈 듯 얼굴도 찌푸려댔다.

단은 몇 번 더 짐을 날랐다. 그리고는 기회를 보다 화문과 같이 배를 움켜쥐고는 옆으로 빠졌다. 사람들은 왜 그러냐는 듯 단을 쳐다보았다. 단은 배를 움켜쥔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먼저 가라고 손짓을 해댔다. 좀 쉬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듯이 말이다. 그러자 포로들은 들고 있던 짐이 무거웠던지 길을 재촉해 갔다.

포로들이 멀어져가고 뒤 이어 오는 포로들이 가까워지기 전에 단은 재빨리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그리고는 주위를 둘러보다가는 숲으로 슬며시 스며들었다.

숲에 이르자 화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둘은 기회만 엿보았다. 얼마지 않아 짐이 정리되고 포구는 어둠에 휩싸였다. 다행히 단과 화문이 사라진 것을 아직까지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무런 소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다.

“저 앞에 작은 배가 있소. 따라 오시오.”
화문은 단을 이끌고 어둠을 뚫었다. 다행히 바위가 두 사람을 가려주었다. 요란스레 지껄여대고 있는 파도소리가 돕기도 했다.
“저 쪽에는 포구를 감시하는 도적이 항상 지키고 있소이다. 소리 내지 말고 접근해야 하오.”
단은 화문만을 믿고 그의 뒤를 바짝 따랐다.

두 사람은 발자국 소리를 죽여 가며 포구의 옆으로 접근했다. 어둠 속에 화문이 말한 초소가 얼핏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경계가 허술했다. 들뜬 기분에 모두들 술을 마시고 있는 모양이었다. 가끔 호탕한 웃음소리가 파도소리를 가르고 날아들기도 했다. 단은 온 몸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화문은 정박해 있던 작은 배를 바닷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는 잽싸게 배에 올라탔다. 단도 뒤따랐다. 파도가 철썩이며 두 사람을 적셨다. 뒤 이어 화문과 단은 노를 젓기 시작했다. 다행히 파도소리가 노 젓는 소리를 묻어버렸다. 배는 서서히 포구를 떠나갔다. 무엇이 그리도 좋은 지 껄껄거리는 웃음소리가 도적들의 초소에서 연신 들려왔다. 잠시 뒤, 그 웃음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다. 시커먼 바다 위에 철썩거리며 노 젓는 소리만이 단과 화문의 귀를 울려댔다.
동녘이 푸르스름하게 물드는가 싶더니 곧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해무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이 밝아오는 걸 보면 뭍에 가까이 왔을 겁니다.”
화문이 말문을 열었다. 단도 노를 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웬 안개가 이렇게 끼어대는지.”
단이 중얼거리자 화문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안개가 낀다는 것은 곧 뭍이 가깝다는 얘깁니다. 어디 가서 일단 요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화문의 말을 듣고 보니 그제야 단은 배가 고프다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너무 긴장해 있던 탓에 배고픈 것마저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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