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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의사의 쾌거를 있게 만든 중요한 숨은 주역 두분

폭탄을 만들어 건넨 왕백수씨와 김홍일 장군을 기리며

2013.08.01(목) 03:08:00이종섭(dslskj55@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선생님, 제 시계와 바꾸시죠. 제 것은 6원을 주고 구입한 것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한 시간 밖에 더 소용이 없습니다."
 두 사람은 시계를 바꿔 찼습니다.
그러자 선생님이라는 분은 목 메인 소리로 말합니다.
 “나중에 지하에서 만납시다”

 매헌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의 대화 내용입니다.

 지난 주말에 예산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갔었습니다. 윤 의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을 먼저 참배하고, 윤의사와 부인이 함께 모셔져 있는 묘지에도 마찬가지로 참배를 한 뒤 윤 의사의 유품등이 전시돼 있는 기념관에 가자 이렇게 두분의 육성을 만들어 관람객들에게 들려주고 있었습니다.
 감동과 감사함이 밀려 왔습니다.

 두분의 이 대화는 윤의사께서 왜놈들을 척살하러 홍코우 공원으로 출발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나눈 이야기입니다. 이제 쓸모가 사라진 시계를 그냥 버리기 아까우셨는지 김구선생께 드리려는 말씀이었던 것이죠.

 오늘 밤 12시가 넘었으니 시간상으로는 이제 8월이 되었네요.
 보름 후면 광복절인 8.15입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장면. 예산의 윤의사 기념관에 있는 미니어처 모형

▲ 윤봉길 의사의 의거 장면. 예산의 윤의사 기념관에 있는 미니어처 모형


 윤봉길 의사께서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의 홍코우 공원에서 열린 일본 국왕의 생일인 천장절 기념식장에 폭탄을 투척하시는 역사적 의거를 하셨습니다. 대한민국 어린아이들부터 노인들까지 다 아는 가슴 통쾌한 의거였습니다.

 그 결과 시라카와 대장은 치명상을 입고 한달후 사망했으며, 일본 해군 3함대 사령관 노무라 역시 오른쪽 눈 실명, 중국주재 일본공사는 오른쪽 다리가 잘렸습니다.

의거 후 윤의사가 체포돼 끌려 가는 장면과 주변 상황

▲ 의거 후 윤의사가 체포돼 끌려 가는 장면과 폭탄이 터진 주변, 그리고 폭탄을 맞아 다친 일본군 상황
 

홍코우 공원 의거의 역사적 의미

▲ 홍코우 공원 의거의 역사적 의미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기념하기 위해 사당과 기념관이 만들어지고 우리는 오늘날까지 항상 윤의사의 뜻과 의거를 기립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서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우리 민족의 가슴에 영원히 아로새겨질 분이십니다. 역사의 주연, 역사의 주인공이시라는 부분에 대해서도 그 어느 누구도 부인할수 없을 것입니다.

윤의사가 거사를 모의하며 오갔던 다원(찻집)

▲ 윤의사가 거사를 모의하며 오갔던 중국의 홍륜다원(찻집)


 저는 이번에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돌아보며 역사의 주연이나 주인공이 아니라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조연 한분에 대해 기사를 쓰고자 합니다.

 또한 우리가 잘 모르는 뒤에 가려진 분들도 알고 보면 참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들인데 너무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는것 같아 죄송한 마음도 듭니다.

 윤봉길 의사는 필자인 본인 말고도 워낙 많은 분들이 뵙고 감사해 하고 자랑스레 여기니 저는 이번에 그 뒤에서 윤의사를 도우신 중요한 한분을 소개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윤봉길 의사께서 홍코우 공원 의거를 성공시킬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중 하나는 강력한 폭탄이었습니다. 실증 사례에서 보았듯이 그 전에 있었던 이봉창의사 의거는 안타깝게도 폭탄의 위력이 약해서 그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 윤의사 의거는 강력한 폭탄 덕분에 대성공을 거둘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윤의사께서는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폭탄을 구해서 의거를 성공시킬수 있었던 것일까요?

 윤의사 기념관에 가서 보신분들중 전시물을 찬찬히 관함하셨다면 이 폭탄을 제조해 주신 분에 대한 내용과 사진을 함께 보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윤의사께 폭탄을 제조해서 건네주신 왕백수씨와 김홍일 장군.

▲ 윤의사께 폭탄을 제조해서 건네주신 왕백수씨와 김홍일 장군.



 기념관에는 윤의사께 폭탄을 재조해 주신 김홍일 장군과 왕백수라는 두분의 사진과 소개 글이 있습니다.

  당시 김구 선생의 간청으로 중국 상해 병공창에서 기술자로 근무중이던 중국인 왕백수(王伯修)씨가 비밀리에 제조한 것이라 합니다. 이를 병공창 병기주임이었던 김홍일(金弘壹. 훗날 대한민국 육군중장) 장군의 주선으로 김구 단장을 거쳐 전달된 것이라 합니다.

윤의사께서 사용하신 물통폭탄과, 자살용으로 들고 간 도시락 폭탄

▲ 윤의사께서 사용하신 물통폭탄과, 자살용으로 들고 간 도시락 폭탄(모두 다 윤의사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모형 유물들입니다.)



  폭탄을 위장하기 위하여 1개는 물통형으로 만들어 알루미늄제 물통 속에 넣고 외부에 흰색 천을 씌우고 가죽끈을 붙여 어깨에 걸메도록 되어 있었다고 하네요.
 우리가 아는 윤봉길 의사의 업적과 의거의 의미, 중요성 같은 것을 놓고 본다면 왕백수씨의 역할은 너무나 크고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 폭탄 하나로 전세계가 놀랐고, 전세계가 대한민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알았으니까요.

 역사에는 항상 영웅이 있고 주인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서 아주 큰 역할을 담당했지만 영웅의 이미지가 워낙 커서 조연급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쾌거를 보는 우리에게 왕백수씨의 역할은 참 크고 중요한 것이었기에 이렇게 뒤늦게나마 윤의사를 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참고로 충청남도와 예산군에 한가지 건의를 드리고자 합니다.

 올해 또는 내년에라도 윤봉길 의사 의거와 관련해 기념행사를 하게 되면 왕백수씨의 직계 후손을 국내로 초청해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해 감사의 인사와 함께 적절한 사의를 표하는건 어떨는지요.

 이것은 참 중요한 일이라 여깁니다. 한번 관심을 가지고 추진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도와준 그런 분들,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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