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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예길 동행기] 강효자 발자취, 을문이와 함께 타박타박

2024.06.19(수) 10:50:18 | 놀뫼신문 (이메일주소:nm4800@daum.net
               	nm4800@daum.net)


충효예길동행기강효자발자취을문이와함께타박타박 1



오늘도 칼을 빼든 계백장군은, 백제군사박물관에서 탑정호를 내려다본다. 주변에는 그의 충절을 기리는 충곡서원과 충장사 등이 포진해 있다. 서원이나 사당에서 무신을 모시는 경우는 드문 편인데, 이 일대의 길은 충(忠)으로 넘쳐난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의 논산 충·효·예길

5월 30일 아침 9시, 논산사람들은 충·효·예길을 걸었다.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주관한 이날 걷기행사는 선비회원 발대식으로 마감됐다. 200여 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은 셋으로 갈라져 걸었다. 먼저, 충의길 팀은 집결지에서 출발, 충곡리 길로 접어들어 수락산을 거쳐 군사박물관으로 돌아오는 코스를 걸었다. 

효의길, 예의길 팀은 버스에 올랐다. 예길(禮道)은 돈암서원에서 하차하여 모선재와 양천허씨 정려를 거쳐서 원위치했다. 솔바람길이다. 효길(孝道)은 산노리 효암서원까지 버스로 이동하였고, 기자는 그 차에 탑승하였다. 

국방대가 논산 양촌에 내려오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가 호남고속도로 양촌IC다. 하이패스로 해서 빠져나와 좌회전하다 보면 교차로가 하나 나온다. 국방대를 가든, 탑정저수지를 가든, 거기서 연산쪽으로 우회전을 해야 했다. 그러면 탑정저수지 초입인 병암유원지가 나오는데, 거기가 효길의 최종목적지이다. 조선시대 대표효자 강응정을 기리는 효공원이 거기 있어서다. 

그런데 요즘은 웅천교차로에서 직진하는 코스가 새로 뚫렸다. 호남고속도와 나란히 달리는 2차선 국도인데, 갈마산을 관통하는 길이다. 병암리와 산노리를 거느리는 산이 갈마산이다. 그 갈마산이 고속도로가 나는 바람에 산노리는 1~2로 갈라졌다. 효암서원 안쪽 사당 이름이 갈산사(葛山祠)인 것도 칡 많은 갈마산에 위치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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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표 효자 강응정과 효암서원 

효암서원에 도착한 효팀은, 15분 정도 알묘(고유) 의식을 진행하였다. 서원 뒤쪽에는 커다란 바위가 하나 박혀 있는데, 거기에 누군가가 오래 전 새겨둔 孝자가 희미하다. 효바위, 효암(孝巖)이다.

효팀이 강응정 정려 앞에서 효암서원 이야기를 들은 후 건너간 곳은, 산노리다. “선비들이 늙어서 산에 묻혀 산다”하여 山老里라는데, 보얏티, 가는골(細洞)로 불리는 산노1리다. 고속도로 바로 옆길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한데, 맞은편(=서원 옆길) 뻥 뚫린 갈마산 국도와는 달리 꼬부랑 산길이다. 이 고갯길을 빨딱 넘으면 시내가 나온다. 강 효자가 어머니에게 드리려고 인천장(양촌장)에서 개장국 사가지고 냇가를 건너다 사달이 벌어진다. 상류 쪽에 징검다리가 있는 이른바 화천앞 냇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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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팀은 뚝방길 초입 큰다리 부근에서 지친 다리를 풀었다. 김사현 충청국학진흥부 연구위원이 고전자료까지 대문자로 제시하며 강효자와 을문어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강효자 시리즈는 버전이 다양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설이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라는 점이다. 

“6월 8일 명나라에서 하늘을 살피던 천문관이 천자에게 고하였다. ‘효자성이 조선으로 떨어졌습니다.’이에 사신을 보내어 알아보니, 그날이 바로 효자 강응정이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이에 성종 임금은 강효자 사당을 지어주고 가문에 땅을 하사하였으며, 동네사람들은 을문어를 ‘효자고기’라고 불렀다.”  얼마 전 기자가, 강원기 진주강씨 직계후손에게서 들은 증언이다. 

금계국 융단이 좌우로 도열한 양촌천 뚝방길을 걷고걸어서 도착한 곳은 병암리 유원지 정류장이다. 병암리에는 치마바위와 그 위로 퉁퉁바위가 있는데, 골짜기에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병암(屛巖)이다. 풍광 좋은 냇가쪽으로 병암유원지 조성되었고, 그게 바로 효공원이다. 정류장에서 조금 내려가면 강효자 스토리가 부조처럼 글과 그림으로 병풍 쳐져 있고, 그 밑으로는 강태공과 을문어들이 유유자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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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회원 발대식과 선비의 길

11:30 선비회원 발대식 시작 시간에 맞추어 되돌아왔다. 발대식에서는 6백리 퇴계길을 개척한 퇴계후손, 예산향교 전교 등 전국 각지 선비들이 소개되었다. 논산시 공무원도 상당수 참여하였고 보건소 건강정책팀의 “걷쥬~” 청색조끼도 도드라졌다. 충효예길 걸은 소감을 나누는 시간에, 누군가가 “예전에는 걷는 게 일상이었는데....”라면서 행사로 개최되는 걷기에 대하여 격세지감을 표했다.  

논산도 걷기 열풍이다. 생활속 “걷쥬~”가 여전한 가운데 맨발걷기, 탑정호걷기, 소풍길.... 걷기행사가 그래도 꽤 된다. 이번 한유진에서 주최한 충효예길 걷기는 9월에 있을 전국적 축제 <한국유교문화축전>의 서막이다. 앞으로 한유진이 선봉에 세울 대표 브랜드이기도 하다. 강효자 을문이 캐릭터 등을 효시로 하여 현대인 정서에 부합할 각양각색 효 프로젝트가 출동할 예정이다. 이런 추세라면 충효 순서가 예전대로 효·충·예길로 바뀔지도 모르겠다. 한편 김홍신문학관은 “2023 논산명품길 문화산책”을 마친 후 『길~길~놀뫼길』을 집대성했다. 여기에는 <솔바람길~충효예길>을 비롯하여 6코스가 이야기와 함께 상술되어 있다. 

 

을문아, 뚝방길 따라서 걷자꾸나~

이번 효길을 되짚어보면, 효암서원과 효공원을 품은 갈마산을 한바퀴 쭉 도는 코스였다. 생동감 있는 을문이를 통하여 손에 톡톡 잡히는 효 개념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는 효자상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고프다. 2% 부족증이 도진다.

산길은 호젓함이다. 그럼에도 산길을 걷는 내내 뭔가 이상하고 편치가 않았다. 고속도로를 벗어나서 뚝방길로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자각했다. 우리는 지독한 소음의 터널을 지나왔다는 것을. 그간 우리가 누려온 쾌적함을 반추하는 고마운 시간이기도 했다. 

소음을 견디느라 모든 걸 밀쳐냈던 거 같다. 동네 변두리길에 양어장 물방아가 돌고 버섯농장이 외따로건만, ‘저게 뭐지?’하면서 눈길 주는 이 별로 없는 듯싶었다. 오가는 길 주변에 오디나 보리똥 농익어 있건만 탐내는 사람도 별로였던 거 같다. 대장정 전사들처럼 전진, 또 전진였다. 그 원인 중 하나는, 트레킹을 겸한 행사치고 흙길이 거의 없어서였던 거 같다. 요즘 산길도 거개가 신작로급에서 국도급으로 격상되어 있다. 뚝방길도 시멘트이긴 하지만, 그래도 자유로다. 양쪽이 풀꽃이고 강변의 탁 트인 풍광이 사람의 마음문을 열어주는 모양이다. 순례 보병 중 일부가 대오에서 이탈, 풀꽃들을 접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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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이나 멍때리기, 혹은 도반간 정담이 가능하려면 삼박자 길이 최상급이다. 흙길~ 호젓~ 여유~  이번 효길은 3박자 골고루 약박이었다. 시간에 쫓겨선지 효길 최종목적지인 효공원에는 내려가 보지도 못한 채, 을문이 사는 곳에는 눈길 한 번 주지 못한 채 위화도 회군이 이루어졌다. 

어찌 보면, 효공원이 최종목적지 자격이 있을까도 싶다. 효의 진원지 자격 시비 때문이다. 강효자가 살았고 아직도 그 후손들이 사는 곳은, 산노리나 병암리라기보다 함적리다. 강효자 이야기는 양촌(인천리)에서 시작하여 냇가를 따라오다가 함적리 초입 징검다리에서 끝난다. 별칭이 ‘효자마을’인 함적리가 효의 메카로 자리매김하여야 명실이 상부하지 않을까도 싶다. 

다음번에는 다른 길을 걷고 싶다. 산따라 강따라 순리로, 함적리 징검다리 부근에서 병암리 효공원까지 뚝방길만 쭉 따라서 내려오고 싶다. 혹 알랴, 은색 물고기(銀文魚)가 발랄 튀어오르는 소리를 줄지어 듣게 되는 행운이 따라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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