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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서해(西海), 고려와 조선의 유산을 품다

국가유산청의 중심,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충남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1298

2024.06.16(일) 22:38:40 | 나드리 (이메일주소:ouujuu@naver.com
               	ouujuu@naver.com)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새 이름을 얻었다

▲ 문화재청이 새 이름을 얻었다


문화재청이 ‘국가유산청’으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1962년 제정한 문화재보호법 아래 유지되어 온문화재 체계를 국가유산 체계로 전환한다는 것이 새 이름의 의의입니다. 문화재란 용어는 문화(文化)와 재(財)가 합성된 언어입니다. 60년 넘게 사용한 문화재는 물건을 뜻하며 돈으로 가치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무형유산 전승자인 사람과 정이품송 등은 자연유산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문화재에 포함될 수 없었습니다.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새 이름을 알리는 현수막

▲ 태안해양유물전시관에 새 이름을 알리는 현수막


국제 기준인 유네스코 세계유산의 문화유산은 자연유산, 무형유산을 모두 포함하는 상위개념의 “국가유산”이라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형문화재는 ‘문화유산’으로, 무형문화재는 ‘무형유산’으로, 천연기념물 같은 기념물은 ‘자연유산’으로 분류되는 것이지요. 이 세 가지를 통틀어서 ‘국가유산’으로 명칭하고 국가유산을 관리하는 곳을 ‘국가유산청’으로 부르는 것이지요.

태안해양유물전시관 앞에서 바라 본 해무에 갇힌 나래교

▲ 태안해양유물전시관 앞에서 바라 본 해무에 갇힌 나래교


안흥항은 태안반도 서쪽에 위치한 국가어항입니다. 백제시대부터 당나라와 무역을 하면서 안흥항은 무역항구로서 발전했습니다. 지금은 ‘안흥내항’과 ‘안흥외항’으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안흥내항에서 나래교를 건너면, 안흥외항의 신진도입니다. 이곳에 국가유산 중 해양유산을 연구하는 국립해양유산연구소 소속의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서해의 갯벌 속에선 건져낸 조선시대와 고려시대에 이르는 국가유산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안흥외항의 신진도 선착장 모습

▲ 안흥외항의 신진도 선착장 모습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을 지역 어민들은 ‘주꾸미’ 전시관이라고 부리기도 합니다. 2007년 안흥 앞 대섬 근처에서 주꾸미를 잡던 어선에서 고려청자에 주꾸미가 붙어서 올라오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후 태안 앞바다에서 여러 척의 고려시대 고선박과 수만 점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이를 체계적으로 보존·관리·전시하기 위해 2018년 말 문화재청이 건립하였습니다. 지금까지 난파선 8척과 수중문화재 3만 여점을 보존·관리하고 있으며, 2018년 12월 2개 전시실을 부분 개관한 이후 2019년 나머지 전시실의 내부 단장을 끝내고 전면 개관하였습니다.

새롭게 단장 된 로비의 내부 모습

▲ 새롭게 단장 된 로비의 내부 모습
 

소중한 해양 유산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

▲ 소중한 해양 유산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

 

주꾸미가 사랑한 고려청자가 있는 태안해양유물전시관은 월요일이 휴관입니다. 그 외에는 무료로 개방되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 관람이 가능합니다. 2층 로비에는 모유실도 갖추었으며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책도 구비되어 있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새롭게 단장된 로비에는 작은 배 모형이 인기가 좋습니다. 내부관람은 40분 정도 소요되는데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선박 모습의 미니어처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 다양한 선박 모습의 미니어처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타이타닉호의 모습

▲ 타이타닉호의 모습


처음에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를 보려고 갔다가 목간(木簡)과 죽찰(竹札)이 눈에 띄었습니다. 목간과 죽찰에 적힌 한자는 당시 생활에서 사용된 용어를 담고 있습니다. 기존의 문헌자료를 보완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있지요. 처음 태안선에서 발견된 목간과 죽찰은 이후 마도 1, 2, 3, 4호선에서 모두 발견되었습니다.

매병과 죽찰 모습

▲ 매병과 죽찰 모습


나무로 다듬어서 만든 목간과 대나무로 제작된 죽찰(竹札)은 정형화된 형태로 길이 12~40cm, 폭 1.5~4cm 크기입니다. 끝 부분에 ‘><’ 형태의 홈을 내어 끈으로 화물과 쉽게 묶을 수 있도록 하여 화물표로서의 목간의 성격을 잘 드러냅니다.

목간에 대한 안내표

▲ 목간에 대한 안내표


목간에 적힌 글자들은 배, 그리고 배와 함께 발견된 유물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게 보내는 것인지, 무엇을 얼마만큼 보낸 것인지와 같은 정보를 알려줍니다. 오늘 날로 치자면 우리가 이용하는 택배 서비스의 ‘운송장’과 같은 기능을 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지명이나 사람 이름, 운반했던 물건의 명칭과 용도, 도량형의 단위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관계까지 그 시대 생활상과 관련된 자세한 사항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나주광흥창이라고 적힌 목간(나주에서 서울 마포항으로 운송함을 의미 함)

▲ 나주광흥창이라고 적힌 목간(나주에서 서울 마포항으로 운송함을 의미 함)


2007년 주꾸미와 함께 올라온 청자의 출처를 찾기 위해서 수중을 수색하다가 거대한 배의 형태를 발견했습니다. 그 배의 이름을 ‘태안선’이라고 명명했지요. 태안선은 고려시대 1131년에 침몰되었는데요, 그 시기를 알 수 있었던 것은 목간에 적힌 ‘辛亥’銘木簡‘을 보고 ‘신해년’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도1호선의 모형

▲ 마도1호선의 모형


마도1호선의 내부 모습

▲ 마도1호선의 내부 모습


태안선에서 발견된 또 다른 목간에서는 출항지와 목적지는 물론, 수신자와 발신자의 개인정보까지 적혀있어서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입니다. 목간의 앞면에는 ‘耽津縣在京隊正仁守戶付砂器壹  탐진현에서 개경에 있는 대정 인수 집에 붙임 도자기 한 (꾸러미)’, 뒷면에는 ‘次知載船長 배에 싣는 것을 맡아함 장 수결’의 글씨가 적혀있습니다. ‘탐진현’은 지금의 전남 강진입니다.

다양한 고려시대 유산들

▲ 다양한 고려시대 유산들 


태안선의 목간에서 발견된 한자를 풀어보면, 태안선은 전남 강진에서 수도 개경으로 향하던 선박입니다. 수신자 이름인 인수는 고려 시대 하급 무반인 대정(隊正) 직에 있던 인물이고, 목간은 지방 향리 우두머리인 호장(戶長)이 작성한 것이죠. 이 목간의 형태는 길이 30.5cm 너비는 2.2cm입니다. 요즘 학생들이 사용하는 30cm 자의 길이인데 폭이 좁습니다.

입구에 해양 유산을 찾는 모형이 서 있다

▲ 입구에 해양 유산을 찾는 모형이 서 있다

 
현재 태안선과 마도 1호선, 마도 2호선, 마도 3호선, 마도 4호선이 발견된 목간과 죽찰을 보다가 특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독 마도 3호선에 고려시대 무신정권의 유물들이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신윤화가 적힌 죽찰 앞면에는 ‘辛允和侍郞宅上 신윤화 시랑 댁에 올림“, 뒷면에는 ’生鮑?一缸 전복 젓갈 한 항아리‘ 적혀 있습니다. ’ 신윤화‘는 원종(1260년) 시대의 정 4품 관직의 장군입니다. 김영공이 적힌 죽찰의 앞면에는 ’事審金令公主宅上 사심 김 영공님 댁에 올림‘, 뒷면에는 ’生□合伍缸玄 홍합젓갈 생□ 합쳐서 5 항아리 현례‘라는 한자가 적혀있습니다.

고려와 조선시대 선박이 발견 된 해상로

▲ 고려와 조선시대 선박이 발견 된 해상로 


영공은 제왕(諸王)에게만 쓰던 극존칭입니다. 앞서 살펴본 마도 3호선 죽찰에 등장하는 신윤화와 유천우가 활동하던 시기에 영공으로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김준(金俊)이 유력합니다. 김준은 1265년 해양후(海陽侯)에 봉해지기 때문에 영공이라는 호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김준(金俊)’은 천민출신으로 1258년에 ‘최의’를 살해하여 60여 년 간 이어진 최 씨의 무신정권을 끝냈습니다. 이 죽찰로 마도 3호선은 1265년에서 1268년 김준이 죽은 시기 사이에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습니다.

마도3호선에는 값비싼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 마도3호선에는 값비싼 물건들이 많이 있었다


양잠리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취두

▲ 양잠리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취두 


‘국가유산청’이란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은 국가의 책임감이 더해졌다는 것입니다. 유산(遺産)은 ‘앞 세대가 물려준 사물 또는 문화’의 사전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유산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부터 시작되는 것이지요. 국가유산청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고조선시대부터 삼국시대 그리고 조선시대까지 국가의 유산들을 재정비하고 잃어버린 유산들을 다시 되찾아야 하는 막중한 임무가 있기 때문이지요.

태안해양유물전시관 건물의 모습

▲ 태안해양유물전시관 건물의 모습



태안해양유물전시관
충남 태안군 근흥면 신진도리 산 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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