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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하얀 눈으로 설국이 된 맹사성 고택의 매력

600년 국내 최고(最古) 살림집과 쌍행수의 조화

충남 아산시 배방읍 중리 300

2024.01.24(수) 09:56:36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돌담으로 감싼 고불 맹사성 고택 전경.
▲ 돌담으로 감싼 고불 맹사성 고택 전경.

무려 600년의 세월을 지켜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맹사성고택. 아담한 한옥이지만, 마당에는 오랜 세월 서로를 의지하는 쌍행수의 자태가 마치 호위무사처럼 압도적입니다. 짙은 겨울 하늘색 아래 나만의 한적한 산책을 위해 찾은 고택은 ‘차분함’ 그 자체였습니다. 

맹사성 고택의 소나무. 마치 선비의 기상처럼 한겨울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 맹사성 고택의 소나무. 마치 선비의 기상처럼 한겨울 푸르름을 잃지 않고 있다.
 
충남 아산시 신창면 고불 맹사성고택은 갑작스레 한파에 폭설까지 내리면서 주변을 단번에 흰 눈을 소복하게 덮은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매력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고택의 입구에는 수령 300년을 넘긴 회화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맹사성 고택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아주는 수령 300여 년의 회화나무.
▲ 맹사성 고택 입구에서 방문객을 맞아주는 수령 300여 년의 회화나무.

문화 해설사 집을 거쳐 솟을대문과 마주하면 수북이 내린 눈을 이고 있는 구불구불 소나무가 매력적입니다. 대문채를 들어서면 문간채 좌우로 길게 돌담이 둘러쳐 있습니다. 고택의 마당으로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선비의 굳건한 기상을 상징하듯 마주 보며 서 있습니다. 봄에는 연두빛에서 여름 초록으로, 가을에는 사방을 노랗게 물들었다가 한겨울 앙상한 가지만이 겨울바람에 휘청이지만, 아직도 매년 은행을 5가마니씩 수확한다고 합니다.
 
맹사성 고택의 솟을대문과 어우러진 소나무.
▲ 맹사성 고택의 솟을대문과 어우러진 소나무.

이 쌍행수는 맹사성이 살림집 마당에 1380년께 직접 심어 수령이 650년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돌로 단을 만들어 지역 인사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장소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공자가 꽃 피는 봄이면 살구나무 아래 단을 만들고 제자들과 수업했던 곳을 ‘행단(杏壇)’이라 했는데 맹사성은 은행나무로 행단을 만들어 후학을 기르고 학문을 논했습니다.
 
맹사성이 직접 심고 행단을 만든 쌍행수.
▲ 맹사성이 직접 심고 행단을 만든 쌍행수.

이곳에서는 특히 우리나라 최초의 연시조인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가 탄생한 곳입니다.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국문학적으로 의미가 깊고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에 영향을 준 작품입니다. 이 시조의 배경은 맹사성 고택이 있는 아산시 배방읍 ‘새실마을’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풍경을 이어 지었는데 이 가운데 겨울 표현한 동사(冬詞)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호에 겨월이 드니 눈 기? 자히 남다
삿갓 빗기 쓰고 누역으로 오슬 삼아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역군은 이샷다.
 
청백리로 공직의 사표인 맹사성은 70세 이상 노신하의 퇴직을 만류하기 위해 왕 앞에서도 의자에 앉거나 지팡이를 짚을 수 있도록 하사하던 ‘궤장’을 받기도 했는데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세종 대왕께서는 모든 국정을 중단하고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직접 문상했을 정도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맹사성 고택의 계단식 돌담.
▲ 맹사성 고택의 계단식 돌담.
   
맹사성 고택은 안채 넓이가 20여 평(坪) 남짓합니다. 요즘 국민주택아파트 실평수가 25.7평(84㎡)이니 조선 시대 최장수 좌의정의 집으로서는 소박하기만 합니다. 사랑채도 별도로 없는 구조인데 크고 작은 자연석을 다듬어 기단을 만들어 여백을 채웠습니다.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맹사성 고택.
▲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맹사성 고택 전경 1.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맹사성 고택 전경 2.
▲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맹사성 고택 전경 2.

본채의 평면구조는 ‘工’자형으로 정면이 네 칸 측면이 세 칸입니다. 이 집은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로 려말선초(麗末鮮初) 민가 연구에 소중한 자료입니다. 두 칸의 대청마루에는 넉살 무늬 문을 설치하고 도리에 등자쇠를 달았습니다. 마루 문짝은 한 칸만 사람이 드나들고 나머지는 창문의 개념입니다. 겨울이면 모두 내려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고, 반대로 여름이면 모두 들어 올려 등자쇠로 고정해 시원한 개방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고택 규모에 비해 비교적 큰 창문에 제각각 크기조차 달라 다양한 풍경을 연출합니다.
 
고려말과 조선초 민가형태를 잘 보존한 맹사성 고택.
▲ 고려말과 조선초 민가형태를 잘 보존한 맹사성 고택.
 
고택 오른쪽 뒤에는 맹사성과 그의 부친 맹희도, 조부 맹유 등 신창 맹씨 선조 3대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가 있습니다. 맹희도와 맹유는 ‘조선 개국’을 반대하는 ‘두문동 72현’이라고 합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의리를 지키려는 고려 선비 72명이 출사를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나오지 않고 세상과 인연을 끊어 ‘두문불출(杜門不出)’의 고사성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매년 10월 10일 맹사성 탄생일을 맞춰 숭모제가 열리고 있습니다.
 
맹사성과 그의 부친, 조부를 모신 세덕사 전경.
▲ 맹사성과 그의 부친, 조부를 모신 세덕사 전경.
 
고택의 협문(뒷문)을 통해 7~8분 오솔길을 걷노라면 맹사성과 황희 등 삼정승이 각각 3그루씩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고 정자를 지어 국사를 논하거나 시문을 지었다는 구괴정이 나옵니다. 현재는 오랜 세월에 세 그루만 지주목을 기대어 남아 있습니다. 정자에는 삼상당(三上堂)과 구괴정(九槐亭)의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맹사성 고택의 구괴정으로 향하는 협문.
▲ 맹사성 고택의 구괴정으로 향하는 협문.
 
맞은편 기념관에는 옥피리 등 맹사성이 즐겨 사용하던 유물을 모아 전시하고 있습니다. 기념공원에는 맹사성이 외출할 때 타고 다니던 검은 소 등에서 피리를 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음악에 능통했던 맹사성은 피리를 특히 잘 불었다고 하는데 외출할 때는 소를 타고 피리를 불고 다녔다고 합니다.
 
고불 맹사성 기념관 전경.
▲ 고불 맹사성 기념관 전경.

추운 겨울이지만 우리 한옥의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느끼며 운치 있는 산책을 즐기고 싶다면 고불 맹사성 고택을 추천해 드립니다. 자연석 돌담에 둘러싸인 고택을 배경으로 인생샷을 남기는 것도 잊지 마세요.


맹사성고택
충남 아산시 행단길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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