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같은 겨울 가족 나들이로 딱 좋은 그곳
▲ 아산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영정.
▲ 충남 아산 현충사의 사계절 푸른 소나무 1. `
▲ 충남 아산시 현충사의 사계절 푸른 소나무 2.
▲ 충남 아산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장군 사당.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1592) 당시 노량해전(1598년)에서 전사하자 1706년 지방 유생들의 건의로 다음 해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친필현판을 내려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186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폐됐는데, 일제강점기 후손의 빚으로 고택과 묘소 등이 경매에 넘겨지자 전국에서 2만여 명이 참여해 1만6021원의 성금을 모아 이를 되찾고 남은 돈으로 1932년 현충사를 중건해 영정을 봉안했습니다.
▲ 충남 아산 현충사 충의문 전경.
이후 이순신 장군 성역화에 나선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기존의 본전 대신 콘크리트로 대형 사당을 새롭게 짓고 숙종의 친필현판 대신 자신의 글씨로 현판을 내걸었습니다. 이 때문에 쿠데타로 정통성이 약했던 정권의 정당성에 이순신 장군을 이용했다는 비판이 이어졌고 이른바 ‘박정희 현판’논란이 벌어졌는데 일부에서는 “대통령도 조선시대면 왕과 마찬가지인데 무슨 상관이냐”는 존치론과 “친일행각의 박정희 현판은 철거해야 한다”는 교체론이 맞섰고 문화재청은 2018년 “그 시대의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어 이를 존치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시대적 유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자는 결론인 것 같습니다.
▲ 조선 숙종의 친필현판(위)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현판(아래)
현충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방문객을 맞이해주는 곳은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입니다. 지금은 내부 수리 중으로 아쉽게 모두 이용할 수 없지만, 다행히 아산의 소나무 작가로 유명한 작가 박내후의 초대전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17일까지 현충사 소나무를 주제로 2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박 작가는 그의 그림 인생 40년 가운데 20년을 염치읍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현충사 소나무를 특히 좋아해 작품 소재로 자주 사용했다고 합니다.
▲ 현충사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 전경.
이어 정문 역할을 하는 충무문(忠武門)을 지나며 일자로 곧게 뻗은 현충사 경내가 시작되고 오른편으로 연못과 느티나무 정자가 마중합니다. 느티나무는 우리나라 자생 수종으로 수명이 길고 수형이 단정해 예로부터 마을 입구에서 사람들의 휴식과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는 당산나무가 되었습니다. 현충사 느티나무는 수령 300년에 나무 높이 20m, 둘레 4.8m, 나무갓 넓이는 20m에 달합니다.
▲ 현충사 연못과 느티나무 정자.
느티나무 정자 옆으로는 충무공 이순신과 그의 조카 이완 등 충신 4명과 효자 1명 등 5명의 정려가 있습니다. 원래 마을 입구에 설치되어 있던 것을 경내로 옮긴 것입니다. 이 밖에 충무공이 무과 시험을 보던 시절부터 대대로 종손이 사용했던 고택과 무과 시험을 보던 시절 사용했던 은행나무 활터, 가족들이 사용한 우물(충무정) 등이 남아 있습니다.
▲ 현충사 이순신 집안의 정문(충신 4명, 효자 1명).
현충사 본전으로 향하는 길은 홍살문을 전후로 좌우에 숲으로 소나무가 울창하게 둘려 있습니다. 수령이 높아 많은 나무가 가지를 기둥에 기대고 있지만, 사시사철 푸르른 기상은 변함없이 강건합니다.
▲ 현충사 본전으로 향하는 길의 홍살문과 소나무.
충의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현충사 본전으로 향합니다. 1967년 현충사 성역화로 신축되어 영정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현충사에서 가장 높은 위치로 곡교천을 향해 바라보는 탁 트인 전망이 시원합니다. 멀리 마주 보이는 산은 광덕산으로 장군바위로부터 좌우로 넓게 능선이 펼쳐져 있는데 묘하게 현충사와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장군바위는 누구를 가르치는 걸까요?
▲ 정면에서 바라본 현충사 전경.
▲ 측면에서 바라본 현충사 전경.
▲ 현충사 본전 내부의 임진왜란 기록화 1.
▲ 현충사 본전 내부의 임진왜란 기록화 2.
본전의 참배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옛 현충사를 찾았습니다. 현재의 본전 오른쪽 아래편에 전통 사당에 주로 사용하는 맞배지붕으로 지어져 있습니다. 참고로 신축 사당은 팔작지붕입니다. 팔작지붕은 조선 시대 권위건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지붕 형태로 위계질서가 가장 높다고 생각하여 규모와 관계없이 중심건물은 팔작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당은 규모와 관계없이 맞배지붕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 정면에서 바라본 옛 현충사 전경 1.
▲ 측면에서 바라본 옛 현충사 전경 2.
▲ 현충사 주차장의 이순신 좌우명 비.
▲ 옛 현충사로 향하는 산책로 전경 1.
▲ 옛 현충사로 향하는 산책로 전경 2.
현충사
충남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