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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600년 맹씨 고택을 지켜온 황금빛 쌍행수

짧지만 나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패스트힐링에 적격

2023.11.14(화) 09:51:33 | 장군바라기 (이메일주소:hao0219@hanmail.net
               	hao0219@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600여 년 맹씨고택을 지켜온 행단의 쌍행수.

▲ 600여 년 맹씨고택을 지켜온 행단의 쌍행수.


어느 시인은 인생을 꼭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했습니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면 그만입니다. 추풍에 흩어지는 은행잎을 모을 필요도 없습니다. 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은행잎을 바라보는 순간을 즐기고 만족하면 그만입니다.

맹씨행단 돌담.

▲ 맹씨행단 돌담 아래서 올려다본 쌍행수. 

 

짧지만 나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패스트힐링(Fast Healing).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더라도 가까운 곳을 찾아 휴식을 취하고 사색을 즐기는 일상의 치유제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살림집 맹씨 고택을 600여 년간 사이좋게 마주 보며 지키는 쌍행수에서 흩날리는 황금빛 은행잎과 마주하고 왔습니다.

 

맹씨행단돌담길 .

▲ 만추의 바람에 은행잎을 흩뿌리는 맹씨행단 돌담길 .


아산시 신창면 고불 맹사성 고택인 맹씨행단의 만추는 쌍행수의 자태가 압도적입니다. 맹사성이 직접 심었다는 이 은행나무 두 그루는 봄이면 연둣빛이 여름에는 초록으로, 가을에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으로 고택을 감싸는데 한창때보다는 적지만 아직도 은행 5가마니씩을 넉넉히 수확한다고 합니다.

 

맹씨행단 뒷 동산에서 바라본 쌍행수의 모습.

▲ 맹씨행단 뒷 동산에서 바라본 쌍행수의 모습.

 

조선 시대 청백리로 이름 높은 맹사성은 마당에 은행을 심고는 돌로 단을 만들어 지역의 인사들과 학문을 논하며 후학을 가르쳤다고 합니다. 중국의 공자가 봄이면 살구나무 아래에서 단을 만들고 제자들과 야외수업을 벌이는 곳을 행단(杏壇)’이라 한 것처럼 맹사성도 은행나무 아래 행단을 만든 것입니다.
 

맹사성 고택의 입구에 심어진 나무에서 고택의 분위기

▲ 맹사성 고택의 입구.

 

우리나라 행단은 맹씨행단이 대표적입니다. 서울 명륜동 성균관에도 400여 년의 행단이 있지만 한참 뒤집니다. 중국의 살구나무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은행나무로 바뀌었는지 정확한 유래가 전해지지는 않지만, 서화에서 행단을 살구나무로 표현하면서도 실제로는 은행나무를 사용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행단(杏壇)은 공자가 은행나무 단에서 제자를 가르쳤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고 설명해 살구나무와 차이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한자의 ()’은 살구나무와 은행나무가 공동으로 사용합니다.

 

맹사성 고택의 뒷동산 소나무 숲.

▲ 맹사성 고택의 뒷동산 소나무 숲.


맹씨행단은 원래 고려말 명장인 최영 장군이 직접 지어 손주사위인 맹사성에게 물려줬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민가(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러 차례 대수선을 거쳤지만, 600여 년을 이어오며 그 역사적 가치가 높아 사적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맹사설고택 전경.

▲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맹사성 고택 전경.


맹사성 고택의 솟을 대문.

▲ 맹사성 고택의 솟을 대문.


기둥에 들보를 얹고 지붕을 구성하는 고려 시대 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당시 살림집에서 흔히 사용했던 건축양식이라고 하는데 현재 민가에는 유일하게 남아 있습니다. 마루대공 아래에 꽃을 엎은 모양의 복화반 방식도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입니다.
 

기둥에 들보를 앉는 고려시대 양식의 살림집.

▲ 기둥에 들보를 앉는 고려시대 양식의 살림집.

 

대청마루 문짝은 한 칸만 사람이 드나들고 나머지는 창문의 개념입니다. 겨울이면 창문을 모두 내려 실내 공간으로 사용하고, 여름이면 모두 들어 올려 시원하게 개방공간으로 활용합니다. 마당 뒤쪽으로는 흙과 기와를 층층이 쌓아 올린 굴뚝 2개가 있습니다.

 

대청마루의 공간을 활용하는 들개문

▲ 대청마루의 공간을 개방감있게 활용하는 들개문.


창문

▲ 들개문은 여름이면 천정으로 고정 시켜 공간을 넓게 사용한다. 


고택의 오른쪽으로는 맹사성과 그의 부친 맹희도, 조부 맹유의 위패를 모신 세덕사가 있습니다. 맹사성의 부친과 조부는 조선 개국을 반대하는 두문동 72이라고 합니다. 고려의 멸망하자 고려 태학의 72명이 출사를 거부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곳에서는 매년 1010일 고불 맹사성 탄생일을 기념하는 숭모제 향이 열립니다.
 

맹사성고 부친 조부 등 3대의 위패가 모셔진 세덕사.

▲ 맹사성고 부친 조부 등 3대의 위패가 모셔진 세덕사. 


맹씨행단 맞은편으로 고불 맹사성기념관과 기념공원도 재미있습니다
. 공원의 동상은 맹사성이 외출할 때 타고 다니던 검은 소 등에서 피리를 부는 모습입니다. 음악에도 능통했던 맹사성은 피리를 잘 불었는데 손님들이 마을에 들어서면서 옥 피리 소리를 듣고 집에 있는지를 알았다고 합니다. 맹사성이 타고 다니던 검은 소는 집을 잃은 것을 가족처럼 돌봤는데 그가 세상을 떠나자 사흘을 먹지 않고 울면서 따라 죽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맹사성의 묘 아래에 검은 소 무덤을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검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

▲ 검은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맹사성 동상.

 

동지를 지나며 늦여름에서 초겨울로 갑작스레 널뛰기한 계절에 은행잎은 이제 자기의 역할을 마치고 빙그르르 나선을 그리며 바람과 함께 흩날립니다. 바람이 불어 흩날리는 은행잎을 바라보며 순간을 즐깁니다. 이번 가을은 또 이렇게 지나갑니다.


아산맹씨행단
충남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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