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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역사

금강가에 자리잡은 수북정 부풍사 부산서원 충남 부여 여행

2023.04.28(금) 21:15:43 | 마패 (이메일주소:faron@hanmail.net
               	faron@hanmail.net)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백마강이라고도 불리는 금강이 부여읍을 흘러내려 부여읍내에서 규암면소재지로 이어지는 백제교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자리잡은 수북정은 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목사를 지낸 김흥국(1557∼1623)이 부여에 낙향하여 살면서 지은 정자로 정자의 명칭은 김흥국의 호를 따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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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정은 1987년5월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수북정이라는 문화재로 지정되었는데 지붕은 팔작지붕을 올린 기와목조건축물로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며져서 눈길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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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정 아래쪽에 있는 자온대는 백제시대 왕이 왕흥사에 행차할 때 이 바위에서 배를 타고 건너곤 했는데 왕이 이곳에 올 때 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구들돌이라 명명했다고 하고 그후 한자어로 표현하면서 스스로 온돌이 된다고 해서 자온대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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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부여 읍내와 규암면을 이어주던 나룻배가 오가던 수북정 인근은 1968년 백제교가 개통되면서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졌지만, 나루터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상권이 와해되어 유람선이 떠다니다가 유람선 이용도 뜸해지면서 수북정은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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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정이 자리잡고 있는 규암리는 사비성을 휘감아 도는 반월성과 백마강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도 볼수 있는 지역에 조성된 마을로 부여에 백제가 천도 하였을 때는 평범한 촌락이었으나 여러 갈래로 드나드는 길이 이곳에 모여 나룻배로 건너야 했던 중심지로 식당과 여곽이 번성하던 동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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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말기 나당연합군이 사비를 침략했을 때는 전쟁터의 중심에 자리 잡았고 사비성이 점령된 후에는 백제부흥군의 요충지로 이용되었으며 부풍사라는 사당이 자리잡고 있고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초삼일 자온당산제를 지내며 백제 왕도를 찾아가기 위한 규암나루와 규암시장이 번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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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정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0호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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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북정에서 서쪽으로 625번 지방도로를 따라 400m를 가면 나오는 부풍사는 2006년12월29일 부여군 향토유적 제86호로 지정된 유적으로 김유신, 김일손, 김우항 3위를 모신 사당으로 전통적인 사우건축기법을 잘보여 주고 있어 보존적 가치가 높고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추향대제를 올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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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사에 모셔진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후손으로 할아버지가 신라에 귀순하면서 진골로 태어나 진평왕부터 문무왕까지 80년에 동안 신라 5대왕을 모시면서 서라벌 귀족들의 반란을 제압하고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복속시키는데 일조하여 통일신라의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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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사에 모셔진 김일손은 조선 초기인 성종17년인 1486년 문과 과거에서 2등으로 합격하여 승문원에서 관리를 시작하였고 홍문관 승정원 사간원 사헌부 등 언관의 길을 걸었고 사초에 세조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기사를 적어서 연산군에 의해 무오사화의 주적으로 거열형으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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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사에 모셔진 김우향은 조선후기 관리로 1669년(현종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1675년(숙종 1) 유생들과 함께 자의대비 복상 문제로 송시열이 유배된 사유가 부당하다는 상소를 올렸고, 1712년 과거시험 관련 송사가 일어나자 소론으로서 자신이 속한 소론을 두둔하지 않고 엄정하게 사실을 규명해 소론으로부터 배척을 받기도 하였지만 우의정에 올랐고, 1716년 내의도제조, ·판중추부사를 역임하고, 1721년(경종 1) 영중추부사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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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사
부여군 향토유적 제86호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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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풍사에서 금강을 따라 북쪽으로 1.8km를 가면 금강을 내려다 보는 언덕에 자리잡은 부산서원이 나오는데 1719년(숙종 45)에 창건된 서원으로 조선중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의 대가인 김집(1574~1656)과 백강 이경여(1585~1657)를 배향하기 위하여 지방 유림의 공론을 모아 창건되었고 창건된 해에 '부산'이라는 현판을 사액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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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생의 아들로 한양에서 태어난 김집은 1591년(선조 24년) 진사시에 2등으로 합격하였으나 광해군의 정치에 반대하던 중 서숙부 2명이 칠서의 옥에 연루되어 죽자 아버지를 모시고 선대의 고향인 충청남도 연산으로 낙향하였다가 인조반정 후 부여현감 등을 역임하였고 사후 188년 고종 20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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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원에 배향된 이경여는 1601년(선조 34) 사마시를 거쳐, 1609년(광해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었으나 광해군의 실정 때문에 사직하여 낙향하였고 인조반정 직후 수찬직에 등용되어 계속 승차하여 영의정에 올랐고 사은사로 청나라를 다녀 오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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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서원의 복설을 위하여 1970년대 “부산서원 복설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삼문과 설단을 하였으며 1977년 충의사 건물을 완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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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원 앞에는 부여동매라고 불리는 매화나무가 천연기념물 '부여의 동매'로 지정되었다가 가치 상실로 해제되고 충남문화재자료 제122호로 지정되었는데, 백강 이경여 선생이 중국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매화나무 3그루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지나 2그루는 죽고 나머지 한 그루마저 일제시대 말기 불에 타 죽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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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부산서원 앞에 자라고 있는 동매는 죽은 나무 뿌리에서 싹이 나 자란 것으로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50년 정도로 추청되고 있는데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관계를 알려주는 나무로 향토문화연구의 자료로서 가치가 있어 문화재자료로 지정하여 보호하기 위하여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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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서원이 자리잡은 진변리는 홍수로 뗘내려 왔다는 부산의 전설이 전해오는 마을로 부산은 신선이 날아다니며 일산과 오산의 신선과 어울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산으로 백제말기까지 영산으로 신성시 하던 지역으로 조선 명신 백강 이경여가 은거한 곳으로 금강을 오고가는 백강 나루터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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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암 부산서원
소재지 : 충남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 산 3-3
지정번호 : 향토문화유산 제128호
문의처 : 문화재과(041-830-2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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