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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이야기 1] 대호지면 장정리 “고래처럼 물 뿜는 ‘고래샘’…가뭄에도 끄떡 없었지”

가재와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청정마을 길게 뻗은 마을, 항상 마르지 않는 우물<br>마을 평안과 주민 안녕 위해 세운 ‘장승’

2022.04.15(금) 18:46:51 | 관리자 (이메일주소:yena0808@hanmail.net
               	yena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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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래샘

“장정천 인근에 옹달샘이 하나 있는데 날이 따듯해지면 이곳에서 가재가 나와요. 물이 얼마나 깨끗하냐면 우리 주민들이 이 물을 먹고 살았을 정도니까요. 어렸을 때 이곳에서 다슬기 뿐만 아니라 붕어, 새우도 잡고 놀았어요.”

대호지면 장정리에서는 한여름밤 반딧불이를 볼 수 있고, 손바닥 만한 가재가 서식하는 '청정마을'이다. 지금도 마을회관에서 천을 따라 거닐면 다슬기와 가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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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대여하고 읽을 수 있도록 장정마을문고로 사용된 이발소

대호지면을 들어오는 관문

대호지면 장정리는 다른 지역에서 대호지면을 들어오는 관문이다. 지방도 647호선을 중심으로 양 옆으로 길게 뻗은 장정리는 옛날부터 대호지면 사람들이 정미 천의장으로, 당진 읍내장으로 장을 보러 가던 길목이었다. 

“1960년 대 쯤 제가 17~18살 때, 40여 일 간 키운 돼지 두 마리를 나무지게에 지고 2시간 동안 걸어서 당진 읍내장에 갔어요. 그때 돼지 두 마리를 6000원에 판매했죠. 당시 6000원이면 쌀 한가마니 값이었을텐데, 저는 돼지 판 돈으로 라디오를 하나 샀어요. 이때만 해도 당진시 전체에 TV 있는 집이 2곳이었고, 라디오 있는 사람은 10명도 안됐을 때죠. 라디오를 사서 집에 오는데 기분이 무척 좋았어요. 그때의 행복을 잊을 수가 없어요. 지금은 무엇을 사던 그때만큼 기분이 좋진 않더라고요.”(최규범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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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리 산림계회관을 건립하고 있는 마을 청년들

23개의 자연부락이 있던 마을 

대호지면 장정리는 ‘장정리’라고 이름 지어진 유래가 몇 가지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유래는 길게 뻗은 마을이라고 해서 길 장(長)자를 쓰고, 오래 전부터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어 우물 정(井)자를 더해 장정리라고 불렀다는 이야기다. 장정리에는 장자골, 야차골, 진마루, 점말, 도당골, 우무실 등 23개의 특색 있는 자연부락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에 따르면 장자골은 대호지면 면계가 있는 위쪽 지역으로 옛날에 부자가 살면서 마을을 세워 이름 붙여졌으며, 가루고개는 장정리에서 송전리로 넘어가는 가루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란다.  

빨래터이자 목욕탕으로 활용된 ‘고래샘’

장정리에는 마을의 지명과 관련이 깊은 고래샘이 있다. 장정리는 원래 신라 경덕왕때부터 큰 우물이 있어 정곡이라 불리었다. 장정리에는 마르지 않는 용출수가 나오는 샘이었는데 주민들은 고래가 물을 뿜듯이 물이 잘 난다고 해서 고래샘이라 불렀다. 최 이장은 “고래샘은 물이 마르지 않아 농사를 짓는데 큰 도움이 됐다”며 “당진시가 모두 가물었을 때 이곳은 가뭄도 모르고 농사를 잘 지었다”고 말했다. 또한 김의웅 노인회장은 “내가 조금초등학교 다닐 적에 할머니들 여럿이 고래섬 주변에 앉아 빨래를 했다”며 “밤에는 주민들이 목욕하러 이곳에 오곤 했다”고 말했다. 

“제 기억에 ‘을사년 가뭄’이라고 했었던 때가 있었어요. 당진시가 가물었을 때인데 이곳은 가뭄이 드는 것도 모르고 농사를 지었대요. 제가 어렸을 때만해도 물이 펑펑 솟아 오르는게 보일 정도로 올라왔다니까요. 지금은 농사 짓는 용도로는 쓰이지 않지만 경지 정리할 때 고래샘을 마을의 상징으로 여기고자, 정원으로 조성해 돌도 쌓고 잉어도 키웠어요.”(최규범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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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승백이

30년 전 돌장승으로 재건립

한편 장정리에 내려오는 또 한 가지의 전설이 있다. 입구에 서 있는 장승과 관련한 설이다. 
1886년 마을에 가뭄이 심하고 전염병이 발생해 동네 사람들이 많이 죽었고, 초가집 수십채가 원인 모를 화재로 환난을 당하기도 했다. 그해 어느 날 시주를 봉양받기 위해 찾아온 노승이 부락에 지세가 길고 기울어짐이 급하니 부락의 끝지점에 대장군을 세우면 화를 면할 것이라 이야기 해 주민들이 장승을 세웠다는 이야기다. 이듬해 4월에 정미면 대조리, 승산리 주민들과 함께 장정리 주민들은 장승을 세웠고, 장승을 세우고 난 뒤 마을에 평안이 찾아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김 노인회장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장승이 소멸됐다”며 “1992년 장승을 복원하자는 의견을 모아 돌로 다시 세우고 정월대보름마다 제사를 지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장승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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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정천

벚꽃과 이팝꽃이 장관!

현재 장정리에는 100여 가구에 200명이 살고 있다. 이 마을은 봄에 방문하기 좋은 곳이다. 4월에는 벚꽃이, 5월에는 이팝꽃이 장정천 주변을 흐드러지게 두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벚꽃이 지면 이팝꽃이 피는 이곳이 당진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 이장은 “우리 마을은 경치가 무척 아름답다”며 “이제 곧 마을 곳곳에 꽃이 필텐데 그 모습을 본 사람 모두 반할 정도”라고 말했다. 이어 “1960년 대에 에버랜드에서 정원사로 일했던 분이 퇴직 후 마을에 와서 나무와 꽃을 곳곳에 심었다”며 “그때부터 장정리에는 아름다운 자연이 자랑인 마을이 됐다”고 말했다. 그 주민으로 인해 다른 주민들도 자연스레 조경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예쁘게 정원을 꾸미고 나무를 관리하는 집들이 늘어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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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인터뷰] 최규범 이장, 김의웅 노인회장 

최규범 이장 : 우리 마을의 자랑은 주민들의 인심이 좋고 단합이 잘된다는 것이에요. 우리 마을은 주민 간 다투는 일이 없어요. 어느 마을보다 단합이 잘 되어요. 그래서 제가 자랑을 많이 해요. 앞으로도 마을 주민 간의 끈끈한 정들이 이어지길 바라요.

김의웅 노인회장 :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에는 경로당에 다같이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요즘은 모임을 갖지 못하게 돼 아쉬워요. 장정리 노인들 모두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경로당에서 이전과 같이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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