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대둔산에 다녀왔습니다. 월요일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기에 늦가을 산행 코스로 대둔산 수락계곡과 영주사를 찾아 올해의 마지막 단풍을 구경했습니다. 단풍은 이미 절정을 넘겨서 늦은 감이 있었지만 만추의 계절을 만끽하기에 충분했는데요. 저와 함께 대둔산의 풍경 속으로 한 걸음 들어가 볼까요?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위치한 대둔산 수락계곡은 여러 개의 등산 코스가 있습니다. 저는 제1코스 중에서 가장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승전탑부터 군지구름다리까지의 구간을 걸어 보았습니다. 수락계곡에서 마천대까지 오르는 대부분의 등산객들은 정상을 향해 가느라 승전탑을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안타까운 이유 때문일까요? 대둔산 수락계곡을 찾을 때마다 저는 빼놓지 않고 승전탑을 찾게 됩니다.



대둔산은 6.25전쟁 당시에 빨치산과 치열한 싸움이 펼쳐진 장소로 유명합니다. 전사한 1,376명의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86년에 건립된 승전탑은 충남지역의 대표적인 현충 시설 중 한 곳입니다. 승전탑에서 바라보는 대둔산의 전경도 추천할만하니 여러분도 잊지 마시고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대둔산 수락계곡은 초보자도 부담스럽지 않게 산행을 즐길 수 있도록 인공구조물인 데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이나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도 평지를 걷는 것처럼 수락폭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어느새 꼬깔바위가 보이니 목적지인 군지구름다리도 멀지 않았습니다.



늦가을 산행이라서 단풍이 모두 졌으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기우에 지나지 않았는데요. 장소에 따라 1-2주 정도는 더 단풍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 올해의 단풍을 구경하지 못했다면 서두르시기 바랍니다.



수락폭포부터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경사도가 상당해서 난간을 붙들고 오르내려야 할 정도이지만 다행히 군지구름다리까지는 0.3km의 근거리로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군지구름다리는 규모는 작지만 혼자서 걸어도 출렁거림이 느껴집니다. 여름에 찾았을 때는 등산객이 적어서 마음껏 포즈를 취하며 인증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가을 산행을 즐기러 온 분들이 많아서 순서를 기다려 사진을 찍어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각양각색의 포즈를 구경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였습니다.



군지구름다리에서 낙조대나 마천대까지 가볼까 한참 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하지만 등산화도 신지 않고 물도 챙기지 않았으니 계획 대로 발길을 되돌려야 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을 멋진 풍경들이 채워줬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3시간 남짓 유유자적 걸은 대둔산 수락계곡의 산행을 끝내고 영주사를 찾았습니다. 계백 장군과 황산벌 전투에서 희생된 백제 병사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된 사찰로 미륵불과 오백 나한전 등이 볼거리입니다.



저는 대둔산을 배경으로 우뚝 선 영주사의 미륵불을 볼 때마다 완성도가 좀 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거대한 바위를 이곳까지 옮겨와 미륵불을 새길 거였으면 제대로 만들지 왜 이 정도밖에 못했나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미륵불 앞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중생의 모습을 닮은 미륵불에서 관음보살상이나 비로자나불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 저물어서 어쩌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단풍을 마주한 시간이 주는 교훈이었습니다. 그동안은 오백 나한상 중에서 가장 잘생긴 모습만 찾아보았는데요. 오늘만큼은 못난이 나한상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봤습니다. 부릅뜬 눈으로 책을 붙들고 있는 모습이 저를 닮았습니다.



대둔산의 단풍은 부처가 열반에 들었을 때 슬퍼하는 제자들을 위해 발을 보여준 것처럼 저에게 깨달음의 표상으로 다가왔습니다. 화려한 단풍놀이는 끝났지만 아직 마지막 잎을 떨구지 않고 여러분을 기다리는 나무들이 있습니다. 제가 늦가을 대둔산 수락계곡과 영주사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대둔산 수락계곡: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영주사 :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곡길 73